크레이지 군단 1~4권, 후루야 미노루 지음,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내 생활의 모든 사상의 원류는 후루야 미노루다.
만화가를 지망하는 오타쿠 기계과 친구와 더불어 에로계의 공고 본좌라 불리는 화공과 친구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에 한 발 담그고 있는 공고의 붉은별 전기과 나 이렇게 세 명을 주축으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써클이 형성되었다. 이름하여 '바보파'
전태일 평전에서 전태일 열사가 활동했던 써클의 이름이 '바보파'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는 그런 심오한 의미의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여름이 지나고 대토론이 벌어졌다. 우리는 공고생이기 때문에 놀고 다녀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공부하지 않아도 시험은 잘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써클 동료들을 설득해 겨울 중간고사를 집중 공부를 했었다.
서로 밤을 새가며 토론도 하고 교과서에 밑줄을 치며 우리는 공고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를 했다. 공고는 참 좋았던 점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페이지에 문제가 다 나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공부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써클 소속은 서로 과가 틀려 시험 범위는 틀리기 때문에 각기 과별로 범위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공부를 했다. 공고는 공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기에 공부하면 눈에 확 띈다. 우리가 공부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아이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야, 쟤네 공부한다.'
교과서를 피고 있었지만 속으로 그런 아이들의 기대와 칭찬어린 얘기를 들으며 뭔가 훌륭한 사람이 된 듯하여 미소가 자꾸 났다. 그리고 반드시 이번에 우리 전기과에서 대반란을 일으키고야 말겠다는 강한 각오를 품었다.
시험 날, 우리들은 사색이 되었다. 시험 범위를 잘못 파악한 내 오류로 시험 범위가 아닌 페이지만 공부를 지나치게 열심히 한 것이다.
전날 밤새서 눈이 빨개진 우리는 너무 황당한 마음에 서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던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 안 가고 가출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고 우리 성적이 밝혀지자, 반 친구들은 파안대소했다. 나 때문에 같이 시험을 망친 써클 친구들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써클 구성원들을 지키기 위해 내가 당당히 일어서서 이 모든 실패는 시험 범위를 착각한 내 실수다! 라고 크게 외쳤으나 그 소리에 친구들은 더 배를 쥐어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그래서 붙여진 우리 써클의 별명이 '바보파'였다. 써클 이름을 우리가 지은 것이 아니라 여론이 지어준 것이다. 우리는 한사코 그 써클이 이름이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말이다.
웃긴 것은 공고에서는 불량써클 비밀 조사를 한다. 학기에 몇 번씩 비밀 여론조사를 실시해 괴롭히는 불량써클이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어떤 녀석이 장난으로 '바보파 루쉰P'라고 내 이름을 적었다.
우리 써클은 담배도 못피고, 오토바이도 못 타며 지극히 순박한 친구들로 구성돼 있었다. 삥을 뜯기는 커녕 중학생들에게 삥을 뜯긴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의 주로 활동은 싸움 잘하는 녀석들을 피해서 점심을 어디서 숨어 먹을 것인가가 매일의 주요 주제였다.
선도실로 불려간 나.
'너희들 바보파가 뭐하는 써클이야!'
'저기...점심먹는 써클인데요.'
'뭐라고! 이 새끼가!'
싸다귀를 맞았다.
그 이후 우리 써클은 그런 것이 아니라 점심 같이 먹고 그냥 집이나 같이 다니는 친구들 모임이다라고 말을 하고 또 했지만 역시나 선생들은 사람을 믿지 않았다.
실컷 얻어터지고 써클 해체 각서까지 쓰고 일주일에 한 번 선도실로 불려가 그간의 활동을 보고해야 했다. 결국 보다 못한 친구들이 장난으로 쓴 그 친구를 찾아내 우리 써클을 다 해명해 주기까지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바보파'란 명칭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