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그책
난 매일 일기를 썼다. 향후 100년 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인생에 대한 일기를 19살 적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쓰고 있다. 400페이지 노트로 무려 8권이나 되는 분량인데 심심할 때는 뒤적거리며 읽기도 한다.
백수 시절 일기를 조금 발췌해 본다면 이런 기록이 남겨져 있다.
2009년 9월 15일
‘죄와 벌’을 읽고 있다. 돈 많은 노파가 있는데 그녀는 돈을 모아만 놓았기에 죽으면 그 돈은 영원히 같이 묻혀져 버릴 것이다. 가난한 대학생인 주인공은 그녀를 살해한 후 그 돈을 전도가 유망한 청년에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주는 것이다. 대신 난 그 돈을 한 푼도 나를 위해 쓰지 않기로 결심을 하는 것이다. 얼마나 굉장한 이론인가. 가진 자, 못 가진 자의 세상.
담배가 없어 꽁초를 모아 A4용지에 말아 피다가 연기가 너무 심하게 나서 어머니에게 맞아 줄을 뻔했다. 꽁초는 사전 종이로 말아 펴야 한다.
2009년 10월 24일
요즘 어머니 심부름으로 길을 나서면 바닦만 쳐다 보고 걷게 된다. 혹시나 돈이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묘한 기대감 때문이다. 묘한 기대감이 인간을 망치고 있다.
2010년 1월 11일
며칠 전 폴 오스터 전집을 팔았다. 겨우 7만원. 세트로 모은 것인데 말이다. 슬라보이 지젝의 여태껏 모은 저작도 모두 팔았다. 13만원 받았다. 다 팔고 있다. 책들을. 피 땀 흘려 모은 책들인데 말이다.
2010년 3월 16일
이력서를 아무리 넣어도 답장이 없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컴퓨터가 망가졌나? 아니면 내 취직을 가로막는 어떤 집단이 있는 것일까?
일기를 이렇게 열심히 읽으며 그가 계속 떠 올랐다.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진 자, 그러나 승리한 자.
버크 데보레, 그는 나보다 30여 살이 많다. 50살의 중년 가장으로 마저리란 아내와 함께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다. 중산층의 삶을 꿈꾸며 살던 그의 직업은 제지 공장의 중간 관리직이었다. 그가 말한 바에 따르면 산업의 자동화에 따른 인력 감축과 밀레니엄이 다가오는 시대 상황이 자신을 해고 시켰다고 한다.
내 일기를 보면 무직 상태에 대한 원인을 나는 이렇게 파악하고 있었다. 중 3때 공고로 진로를 정해준 담임, 기자로 훈련을 시켜주겠다고 하고 나를 배신한 잡지사 사장, 같이 크나큰 책방을 만들어 보자는 헌책방 사장, 모두 나의 젊음과 꿈을 이용했을 뿐 그 누구도 나를 진정 생각한 사람이 없다고 그들을 저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버크 데보레는 달랐다.
그가 파악한 사회는 이러하다.
아무도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다는 것, 아무도 우리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는 것. 일자리와 봉급과 중산층의 멋진 삶은 권리가 아닌,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전리품입니다.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는 거야’
그의 표현에 따르면 나 같은 인간은 ‘세상이 자신에게 봉급을 빚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버크 데보레 가족은 나보다 더 현명했다. 마저리는 데보레가 해직 통보를 받자 마자 케이블 TV를 끊었고, 식탁 메뉴를 돈이 더 적게 드는 것으로 바꾸고, 보던 잡지도 끊고, 마트에서도 천천히 구경하며 쇼핑하지 않고 살 것만 샀다.
그에 비해 무직인 그 때의 나는 헌책방에서 받은 퇴직금 150여 만원을 받아 그 돈으로 한 달 동안 다른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하지만 사실 놀러 다니고 있었다.
버크 데보레가 말하길
해고된 직원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처지를 그저 예기치 못했던 휴가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리고 즉시 다른 회사에 취직이 될 거라고 믿는다.
웁스, 완전 나를 파악했다. 난 내가 그렇게 1년여 시간 동안 쉬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력서만 넣으면 나를 뽑아갈 곳이 너무나도 많을 것이라 정신이 유체이탈 돼 있던 것이다.
해고 자체가 거의 모든 산업에서 너무 광범위하게, 그리고 일률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채용하는 회사의 수가 해고하는 회사의 수를 압도할 수 밖에 없다. 실직자는 매일 수천 명씩 늘어나고 일자리는 점점 줄어만 간다. (중략) 회사들 사람을 뽑아 자신들의 조건에 맞게끔 교육시키기 보다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을 원한다. 이미 다른 곳에서 관련 교육을 받은 사람. 적은 보수와 혜택에도 맡겨진 일에 의욕을 불태울 사람.
한강 변에도 가 봤고, 고속터미널 도서관에도 가 봤다. 나와 같은 동지 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가끔씩 마주치는 노인석에 앉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이 분들은 대 부분 홀로 앉아 계신다. 차창 밖을 바라 보시거나 그냥 멍하니 앞을 보고 계신다. 그리고 하염없이 전철에 몸을 맡긴 채 있다.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무료 전철표를 받아 그냥 한 없이 인생을 전철과 함께 태워 보내고 있었다.
나라고 이 분들과 틀렸을까? 절대 아니다. 돈이 다 떨어지고 차비 밖에 안 남았을 때 인천까지도 가 봤다. 물론 정신적 동지 할아버지 한, 두 분도 함께 계셨고 말이다.
그에 비하면 버크 데보레는 얼마나 현명한가? 그는 ‘공식은 냉혹하고 실재적이고 무자비하다.’며 돈은 바닥났고, 자신과 가족들에게는 시간이 없다고 결심을 내렸다. 어떻게 해서든 취직을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자신은 무엇이든 솔선해서 처리하는 스타일도 아니며 획기적인 무언가를 발명할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제지 공장을 차릴 만큼 돈이 많은 것도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일자리가 필요할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치만 자신과 같은 사람은 넘쳐나고 일자리는 너무 적으며, 모두가 나만큼의 경력과 의욕과 능력을 지닌 이들이라고 상황을 잘 파악했다.
근데 나는 무슨 배짱인지 어떻게 되든 잘 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돈이 다 떨어져 10평 밖에 안 되는 방에 쳐 박혀 있어도 누군가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핸드폰이 끊겨서 연락도 안 되는 지경에 빠져도 무언가 어떤 것이 나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버크 데보레의 말처럼 필요한 것은 일자리였다. 우리 어머니가 병원을 갈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 내가 전철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타고 갈 수 있는 일자리, 가족들 생일에 케잌 이라도 살 수 있는 돈을 버는 일자리, 담배 피고 싶을 때 한 갑만이라도 사서 필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 그 일자리 말이다.
내 주머니에 100원 한 푼 없을 때의 절망감이란 글로도 쉽게 표현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쉽게 말하지만 돈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잘 알기에 미친 듯이 투기하고 돈을 벌려고 눈에 불을 키고 살아간다.
루쉰 선생이 말하지 않았는가 돈이 내 주머니에 들어와 불룩해져 무게를 느끼면 생명의 무게처럼 느껴진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