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 수입과 생활을 다 던지고 떠난 30대 부부의 현재진행형 세계여행
일본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서 약 3개월 반을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약 10년의 일본생활 정리는 중요한 서류 챙기기와 이삿짐 싸기의 무한루프였고, 약 24평 정도 되는 집의 큰 가구를 뺀 자잘한 짐을 다 직접 상자에 하나하나 싸서 담아 넣는 엄청난 하드코어의 짐정리를 하고 정신없이 짐을 끌고 출국하고 보니 한국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한국에 집이 없는 상황이었고 몇 개월 뒤에 세계여행을 떠날 예정이었으니 집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여행 떠나기 전까지 양쪽 본가 집에서 가족들과 아주 찐한 Family time을 보냈다. 둘 다 고등학교 이후에 한국에서 길게 있어본 적이 거의 없어 이번 기회에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효도(?)를 해보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 효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양가 부모님 모두 우리에게 집안일을 시키시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지만, 부모님들과 시간도 보내고 오손도손 대화도 하려다 보니 우리의 계획대로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뭘 해도 정신없고 바빴던 3개월, 나는 나대로하고 싶었던 프리랜서 준비와 남편은 자기 나름대로 해보고 싶었던 일의 준비도 어느 정도 해서, 드디어 12월 중순에 배낭을 이고 지고 출국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는 여행 4개월 차, 그리고 7번째 도시인 부다페스트에 있다. 각 나라에서 느낀 점 혹은 재밌었던 일은 각각 나중에 글로 남겨놓을 예정이고, 지금은 '약 1년 준비해 떠난 세계여행, 실제로 다녀보니 어떤가?'에 대해서 남겨놓고 싶어 오랜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상상과 현실이 어떻게 다른가? 에 대해서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조금 더 일찍 세계여행 나올걸 싶을 정도로 좋다'이다.
우리 부부의 현 상황에 대해 객관적 팩트로만 본다면, 당연히 둘 다 백수이고 돈 쓰면서 여행 다니고 놀고먹는데 좋을 수밖에 없지 싶지만, 내가 정말 좋다고 느끼는 점은 백수, 돈 쓰기, 여행, 놀고먹기가 아닌 전혀 다른 점이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나오길 잘했다!'의 포인트는, '시간관리 연습을 엄청 하게 된다'와 '내 건강 관리법 그리고 내 취향을 알게 된다'이다. 오히려 떠나기 전 상상이 더 '여러 나라를 가고 여행지를 가고 맛있는 거 많이 해 먹는 나'이고 현실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사는 나'이다.
먼저, 세계여행자가 무슨 시간관리 연습이 필요한가? 나는 2025 올해 한 해 여행을 다니며 '용돈벌이처럼 프리랜서로 일해보고 싶다'라는 작은 개인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 이유가 '역시 누군가 수입은 있어야 하니까'라기보다는, 여행을 다니며 괜히 가고 싶은 숙소의 가격 때문에 주저한다던지 먹고 싶은 것을 고민하는 것을 하지 않고 아쉬움 없이 다 해보고 싶어 프리랜서로 야금야금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높은 연봉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했지만 회사원 1로서 그냥 제 역할을 했고 어느 정도 정해진 테이블의 월급을 받은 것이었어서 언젠가 사실 그 기대치보다 못한 내 실력이 뽀록(?) 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했었기 때문에, 프리랜서라면 진짜로 '나'라는 사람의 가치와 실력을 검증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을 뜨기 전에 글로벌 프리랜서 플랫폼에 등록을 해놓았고, 운 좋게 일을 그만둔 그다음 달부터 지금 현재까지 약 7개월째 두 고객님과 일을 계속하고 있다.
세계여행을 하며 프리랜서로 일하기는 정말 시간을 쪼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여행일정도 있고, 가끔 이벤트나 투어 같은 거도 가고, 그 와중에 일주일에 한 번 미팅도 하면서 일도 해야 됐었다. 그리고 당연히 다음 여행지에 대한 가족회의(?)나 정보 찾기, 예약하기도 해야 했다. 특히 내가 하는 업무 특성상 타이밍이나 시간도 중요한 일이라, 단순히 주말로 미뤄서 하거나 밤마다 미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쁜 날은 머릿속에서 '오전에 1-2시간은 최소한 일을 하고, 오후에 나갔다가 저녁에 자기 전에 잠깐 남은 것을 한다' 정도의 계획을 항상 세워서 움직였다. 하지만 이 귀중한 1년을 일에 끌려다니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내 여행스케줄이나 기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항상 조절했다. 두 클라이언트와 처음 비디오콜을 할 때도 이 부분은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고 (나는 올 한 해 100% Full time job으로 일할 생각은 없으며 계속 도시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할 것이라는 점), 다행히 두 클라이언트 다 이것을 이해해 주고 존중해서 시간조절을 해주는 천사 같은 사람들이라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계속 신뢰를 받고 일을 하기 위해, 일에 지장을 주지 않게 아무리 놀러 나가더라도 혹은 일정이 있더라도 그날은 잠을 살짝 줄여 일을 꼭 처리하거나 이동 때문에 길게 연락이 되지 않는 날은 일정을 공유한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하루단위, 일주일 혹은 월 단위의 스케줄을 머릿속에 항상 그려가며 다니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간관리 연습이 엄청나게 되고 있다. 그 결과, 하루에 1-2시간 가끔 바쁜 일이 있는 날은 조금더 하는 정도의 아르바이트로 현재 $1000 이상은 벌고 있고, 이 돈으로 비싼 나라에서 에어비앤비 숙박비용을 커버하고 있다.
(여행 다니면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에 대한 내용은, 혹시 관심 있는 분이 계시다면 다음에 따로 정리해 놓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며, 소소하게 '내 건강 관리법'을 알게 되었다. 힘든 이사와 한국에서의 스케줄 때문인지 첫 여행지와 그다음 여행지에서 연속으로 눈 다래끼가 났다. 일본에서 많은 상비약을 사들고 왔지만 하필 다래끼에 듣는 약은 없었고, 현지 약국에서 항생제를 사 먹고 잘 먹고 쉬는 것으로 다행히 나았다. 피곤하고 면역이 떨어지면 몸의 약한 곳이 고장이 나는데, 나는 그게 '눈'이었고 남편은 '기관지'였다. 나는 약간의 습한 공기와 살짝 곰팡이기운이 있는 공간에 쥐약이었고, 피곤한 상태에서 갔을 때는 바로 다래끼가 올라왔다. 남편은 온수가 잘 나오지 않는 곳에서 묵게 되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지 못하면 잔기침과 함께 살짝의 감기기운이 생겼다. 여행을 떠나온 뒤 첫 세 달 동안 우리는 각자 몸으로 고생하며, '습도'와 '온수'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30대의 여행은 프로폴리스, 비타민 그리고 유산균이 필수템이라는 것도... 아, 나는 9시간은 자야 상쾌한 사람이라는 것도...
마지막으로 여행을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내 취향을 알게 된다'이다. 여러 도시와 숙소, 그리고 장소들을 가고 생활하다 보면 '나'에 대해 더 알게 된다. 큰 도시와 소도시 혹은 가끔 엄청난 시골 등 다양한 곳을 다녀보니 우리 부부에게 큰 도시는 오히려 매력이 없고 소셜에너지를 뺏기는 느낌이었고 너무 시골은 또 이동이 힘들고 구경 갈 곳이 없다 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아주 디테일하지만 우리 둘 다 너무 좋아하는 도시들의 공통점은 '그 나라에서 3번째로 큰 도시'였다. (쓰면서도 뭔가 웃기다....) 그리고, 교통비가 싸고 잘 돼있는 곳의 중심가보다는 살짝 떨어져 있어도 인도가 잘 돼있고 공원이 있어 걸어 다니기 좋은 곳을 더 좋아했다. 여러 숙소를 다니다 보니 각 숙소에 있는 물건들을 사용하면서도 취향을 알 수도 있었다. 이렇게 크게는 어떤 도시가 좋은지 아주 소소하게는 어떤 빨랫대가 좋은지와 같은 우리의 취향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너무 즐겁다.
제목처럼 '현재 세계여행 4개월 차, 상상과 현실은 다를까'를 생각해 보고 내린 결론은 '모두에게 한 번쯤 다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보라!' 그리고 '도대체 왜 안 가?'이다. 정말 여행을 다니며 시간 그리고 나 자신을 관리하는 법도 배우고, 내 취향도 찾아가며, 정말 많은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작은 돌발상황들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법, 여행하며 우선순위 정하는 법, 새 여행지에 갔을 때 싸게 유심사기 등등 하나하나 둘이서 같이 계획하고 같이 맞닥뜨리며 우당탕탕 해결해 가는 재미도 쏠쏠하고 둘 다 같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그렇듯,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든 사람 사는 곳이고 각각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보며 너무 귀중하고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금 더 일찍 세계여행 나올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