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상반기의 마무리, 산티아고 순례길

38일간의 행복하면서도 역대급 힘들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by jjinijini

우리가 예정한 세계여행 1년 중 절반이 지났다. 3개월은 아시아권 그리고 유럽으로 넘어오는 나라들에서 여행을 했고, 4개월 차부터 유럽대륙으로 넘어와 90일 비자를 거의 꽉꽉 채워 유럽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오래 여행(?)한 곳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도시를 목적지로 여러 곳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길이 있는데, 우리는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프랑스길을 걸었다. 4월 말에 프랑스 파리로 넘어가 파리에서 바욘으로 이동, 바욘에서 마지막 준비물들을 사고 생장 피에드포르로 넘어가서 순례길을 시작했다. 5월 2일부터 매일 약 20-25킬로를 걸어 총 779킬로를 38일을 걸려 6월 8일에 완주했다. 순례길을 끝내고 약 10일 정도가 지난 지금, 우리는 포르투로 이동해 2주간 휴식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발바닥이 살짝 부어있는 느낌이다. 아직 순례길의 여파가 남아있는 지금 남겨놓는 어마어마했던 순례길의 후기.




[ 도시를 걷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하드코어 순례길 ]

일단 우리 부부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일본에 살 때도 주말이면 가끔 아주 멀리 있는 쇼핑몰이나 가게를 정해서 일부러 3,4시간씩 걸어가곤 했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걷는 걸 매주 하던 시절도 있고, 우리는 도시보다 자연자연한 시골을 더 좋아하니 산티아고 순례길만큼 더 최적의 힐링 여행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례길 직전 한 달 살기 도시인 부다페스트에서 일부러 많이 걸어 다니며 걷기 연습을 하고 순례길을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에 도시를 2만보씩 걷는 것과 산길과 돌길이 많은 스페인 순례길을 걷는 것은 전혀 다른 레벨의 걷기였다. 특히, 피레네 산맥을 넘어 가장 힘들다는 첫째 날에는 끝없는 언덕길에 중간에 쉴 마을조차 없고 처음으로 무거운 배낭까지 매고 걷기 시작해서 진짜 태어나서 처음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힘들었다. 중간에 오리손이라는 곳에서 가방을 그날의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까지 보내기로 결정해서 어찌어찌 살아남아 27킬로를 걸어 알베르게에 도착은 했지만, 가방을 보내기 전까지는 숨도 잘 쉬어져서 5걸음에 한 번씩 쉬고 숨을 고르고 걷기도 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끝도 없는 돌 내리막길의 향연이라 무릎이 아파 그날 도착한 모두가 절뚝절뚝 걷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아침 6시부터 5,6시간씩 20킬로를 넘게 걷다 보니 마지막 4,5킬로를 남겨둔 지점부터는 발끝 그리고 발가락 사이사이가 아려오는 고통도 느껴졌다. 남편은 무릎이 너무 아파서 피크를 거의 제3,4의 다리처럼 의지해서 걷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발바닥과 무릎이 아파도, 오늘의 목적지는 있고 남은 몇백 킬로도 줄어드는 것이 아니니 쉬기보다는 매일 어쩌겠어 걸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계속 걸었다. 매일 몇 분 아니 몇 시간을 쉬어도 나을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둘 다 느꼈기 때문에 매일 일단 걷자 하고 나아갔다. (그리고 쓸데없이 부다페스트에서 순례길 전에 잘 먹어둬야 한다며 밥도 잘 챙겨 먹어 둘 다 본의 아닌 살크업(?)도 되어있어서 그 무게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도 확실히 있었다...) 30일 넘게 매일 하루에 4만보씩 걸으며 같이 공감한 것은, 우리 평생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들게 무엇인가를 해본 적은 없다, 순례길이 단연 1위로 최고다라는 점이었다. 아스팔트 길이나 걷던 핫바지들에게 순례길은 정말 하드코어로 힘든 길이었지만 '일단 꾸준히 하면 된다'와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를 알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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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꽃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5월의 순례길 ]

사실 원래는 시원한 가을즈음에 순례길을 걷기로 했었지만 유럽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비자문제인 쉥겐조약 90일 체류를 생각했을 때, 나중에 괜히 순례길 날짜를 맞추기 위해 유럽 주변국을 맴돌아야 할 수도 있고 세계여행 10개월 차정도가 되면 체력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유럽여행 시즌 1인 4-6월 중 5월에 하기로 급 변경했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우리 순례길에 가장 큰 행복을 주었던 것 같다. 올해는 기상이변으로 5월 초중반까지 너무 추운 날씨였고 이 때문인지 꽃도 조금 늦게 핀 느낌이었다. 그 덕분(?)에 5월에 걷는 내내 모든 지역의 야생화를 끝없이 보고 무한 꽃길을 걸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양쪽에 꽃이 만연한 꽃길, 꽃 레드카펫의 느낌.

지역이 바뀌면서 새로운 꽃들도 나오고 꽃을 관찰하며 향도 맡고, 지천에 널린 허브는 약간 뜯어서 모자에도 꼽고 다니며 소소한 자연의 힐링을 했다.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특이하게 피는 꽃도 구경하고, 이쁜 보라색의 로즈메리꽃도 계속 구경하며 눈과 코가 매일 호강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중 후반쯤 몰리나세카라는 작은 마을로 산을 넘는 구간에는 날도 꽤나 더워져서 그런지 꽃향이 정말 진하다 못해 꽃냄새에 취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끔 나보다 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인 남편과 같이 걸은 덕분에 서로 '이 꽃 봤어?' '향 맡아봤어?' 하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끝없는 논밭, 유채꽃, 겨자꽃, 야생화, 포도밭 그리고 마지막에는 숲 속 길까지 다 느낄 수 있는 5월의 순례길은 우리 같은 자연마니아들에게 정말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하나하나 너무 행복해하며 보았던 풍경이라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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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잠'이 보약, 그리고 내려놓을수록 행복한 인생 ]

그렇게 매일 약 25킬로씩 걸을 수 있었던 것은, 회복의 보약인 잠 덕분이었다. 매일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발바닥이나 무릎이 아파 절뚝절뚝 걸었지만, 희한하게 자고 일어나면 딱 적당히 걸을 수 있을 만큼 다리가 회복되어 있었다. 도착 후에 점심을 먹고 1시간 정도 낮잠을 자는 날에는 더 회복이 잘 되어있었고, 매일 9 시대에는 잠들어 5시나 6시에 일어나는 루틴이어서 약 8시간 정도 다리와 몸이 쉬며 회복하는 것 같았다. 엄청나게 시설이 좋은 곳에서 자지 않아도 2층 벙커침대에 기어 올라가 내 몸하나 뉘어 잠만 적당히 잘 자고 일어나도 다리가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잠이 보약이다'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걱정 없이 열심히 걷고 자연을 즐기고, 도착 후에 샤워만 해도 행복감이 가득으로 차는 단순한 삶이 이렇게까지 행복할 줄 몰랐다.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라는 고민을 항상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순례길을 통해 느낀 것은 무엇인가를 더 하거나 가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특별히 엄청난 것을 하지 않고 단순하게 눈앞에 해야 할 것만 하고 눈앞의 자연만 즐겨도 너무너무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세계여행 전에도 그리고 여행을 다니는 지금도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라는 고민하며 그것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순례길을 걸으며 진정한 행복은 무엇을 더해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점점 깨달았다. 매일 너무 몸은 힘들었지만 실제로 걸으면서 행복했고 사진 속 나도 정말 순수 100%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철의 십자가에 나의 '안행복함'을 내려놓고 오기도 했고, 이번 순례길 완주를 통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채우는 법을 배우고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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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길은 프로젝트의 연습 끝판왕 ]

한 달이 넘는 시간과 엄청난 물리적 거리인 800킬로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우리가 엄청난 프로젝트의 연습을 하고 있고 너무 잘 해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순례길은 단기/중기/장기 목표를 세우고 하루하루 해내가는 프로젝트였다. '800킬로 떨어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는 장기 목표와 '체력과 알베르게의 침대를 고려하여 2-3일 정도의 숙소 예약과 계획을 짜놓기'인 중기 목표, 그리고 '매일 그날 코스를 확인하고 그날의 목적지까지 무사히 잘 걸어가기'라는 단기 목표까지. 이 3개를 동시에 진행하고 수행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 그 길을 즐기며 일단 걷다 보면 목적지에 항상 도착하고 (=단기 목표 수행), 도착한 후에는 중간중간 남은 거리와 마을 특성 그리고 우리의 다리상황을 보고 앞으로의 3일 정도 숙소 미리 예약해 놓기(=중기 목표 수행)를 꼭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번도 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고 800킬로 순례길을 완주해 냈다. (=장기/최종 목표 수행)

이 과정을 통해 처음에는 엄두도 안 나던 큰 프로젝트를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해내가면 언젠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엄청나게 똑똑하거나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해내거나 혹은 무리하여 달려들어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꾸준히만 하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연습을 하고 그 힘을 길러내었다고 생각한다. 같이 이렇게 해낸 소중한 경험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우리에게 '일단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주고 걱정을 떨쳐낼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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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중에도 그리고 걸은 이후에도 둘 다 매우 공감하는 부분은, '순례길에 대해 많이 공부하지 않고 그냥 갔기 때문에 같이 어떻게든 걸어낸 것 같다'이다. 지금 다시 돌아가서 걷는다면 더 준비를 철저히 해서 걸을 수 있었을까? 를 생각하면 오히려 걸을 엄두가 안 날 것 같고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 100킬로를 남겨둔 지점에서는 끝나가는 아쉬움은 거의 없었고, 매 순간 없는 힘과 체력을 쥐어짜서 걸은 덕분인지 끝나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 둘 다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벅차올랐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쉬움 없이 그 순간을 만끽했던 것 같다.

그리고 순례길은 그 길을 함께 걷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나이 국적 상관없이 친구가 되는 부분까지 포함하여 잊을 수 없는 마음이 너무 따뜻해지는 소중한 추억이다. 이 글에 다 쓸 수 없어 아쉬울 정도로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스페인어를 조금 한다고 엄청 사랑해 주셨던 스페인 할머니 할아버지들, 조잘조잘 수다 떨며 놀았던 호주 아주머니들, 슈퍼마켓 알려주고 나랑 매일 밥 먹었냐고 서로 챙긴 스페인 아저씨, 맛집 추천해 주던 미국 친구들, 나랑 매일 밤마다 장기연애하던 스텔라 이모님, 누구보다도 언어로 대화 안 하고 몸으로 대화했지만 제일 대화가 잘되던 내 사랑 샹리언니까지 모두 잊을 수가 없다.


누군가 산티아고 순례길 어땠어?라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너무 힐링이고 행복했지만 진짜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가보기를 200% 아니 300% 추천할 것이다. 매일 같이 꼬질꼬질해지고 같이 힘든 길과 여러 상황들을 겪으며, 정말 전우애가 생기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글을 쓰며 벌써 약간 그리워진 것 같다.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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