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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inijini Aug 11. 2023

내 인생을 바꾼 첫 도전

18살에 혼자 준비한 해외유학

너무 오래전이라 이제는 너무 어렴풋해진 나의 첫 도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그냥 학교에 등교해 친구들과 놀고 매점 가고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도 모르며 오늘은 야자시간에 문제집을 얼마나 풀까만 생각하던 고3 어느 날 오후, 그냥 우연히 대학 팜플릿이 모여있는 교실 앞 게시판을 보고 있었다. 

특이점 하나 없이 모집요강, 기간, 학과정보와 입학하면 희망찬 미래가 있을 것만 같은 맑고 밝은 청년 1/2/3의 사진만 있는 대학팜플렛 무덤 속에서 한 학교의 팜플렛을 발견했다. 밝은 표정의 학생사진 없이 건물사진만 있던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국제학교. 사실 그 당시 언니가 외고를 다녔었는데 언니 학교에서는 매년 한두 명은 간다고 들었던 일본에 있는 국제학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한국 대학에 진학한다면 계속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하는 삶 즉 암묵적으로 모두가 똑같이 하고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때그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모른 채로 눈앞에 있는 그 나이대에 해야만 하는 사회적 과제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바로 부모님께 그 학교에 지원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얼마 남지 않은 1차 면접준비를 혼자 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사실 1차 면접까지 약 몇 주 정도만 남아있었 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영어면접 혹은 일본어면접 중에 선택할 수 있었고 당연히 몇 주 만에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정도밖에 할 수 없었던 일본어로 면접준비를 할 수 없어 영어면접을 선택했다. 

  

당시 나는 영어라곤 한국교육에서 받던 문법, 듣기 시험과 같은 수능용 영어가 전부였다. 문장이 있으면 주어, 목적어, 보어 이런 것들을 밑줄 그어 적으며 문법적으로 어떤 것이 맞는지만 생각하며 답을 찾는 한국교육식 영어. 하지만 그런 페이퍼 잉글리시는 면접에서는 전혀 필요 없는 것이었고 이때까지 해보지 않았던 스피킹을 연습해야 했다. 자유롭게 프리토킹을 할 수준이 아니었던 나는 뻔한 예상질문지에 맞춰 스크립트를 쓰기 시작했고, 그 스크립트를 약 일주일에 걸쳐 달달달 외웠던 것 같다. 그리고 제대로 답을 못할 것을 대비하여 나의 비장의 무기로서 내가 왜 이 학교에 진학을 하고 싶은지를 전지 같은 큰 종이에 사진과 글을 약간 적어 큰 발표지를 준비했다. 


그리고 강남의 한 호텔에서 혼자 면접을 보러 갔고 실제로 달달달 외웠던 거의 정해진말만 하며 꾸역꾸역 면접을 이어나갔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는 버벅버벅 대충 아무 말이나 하며 아주 리얼타임으로 머릿속에서 이불킥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발표지로 이 학교에 꼭 진학하고 싶다는 야심 차게 준비한 멘트를 치며 나의 간절함을 보여줬다. 




(그냥 외운 거지만) 어느 정도 하고 싶은 말을 뱉을 수 있고, 발표지에 사진도 넣어 꼭 진학하고 싶다는 의지를 이글이글 보여줬던 것을 귀엽게 봐준 덕분인지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날도 어느 수험생과 다르지 않게 독서실 등아래에서 공부를 하다 혼자 두구두구두구 하며 종이를 열어봤고, 이제 나는 남들 다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두근두근 심장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이미 5월 정도에 대학에 합격해 있어서 야자도 수능공부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잠깐 며칠 설렜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수능을 보냐며 '수능 또한 그 나이의 특권'이라는 엄마 이야기로 나는 11월 수능까지 대학합격을 숨기고 (당시 역대최악이었던 담임선생님이 대학합격 축하는 커녕 알려지면 분위기 흐리니 조용히 수능준비를 하라고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9시 야자 -> 학원 -> 새벽귀가 -> 아침 일찍 등교 루틴으로 돌아갔다. 


약 6개월 넘게 제일 친한 친구들한테만 합격소식을 알린 채 어떻게 꾸역꾸역 그렇게 성실하게 수능공부를 다시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일단 최선은 다하지만 난 일본대학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라는 든든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순응한 채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중간중간 '내 합격은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한다'는 슬픔과 서러움이 괜히 느껴졌고,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와 마무리 복습을 하며 가끔 혼자 훌쩍훌쩍 울며 잠들곤 했다.


수능 날, 갈 대학이 있다는 생각 덕분인지 수능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점심시간 도시락을 뚝딱 다 까먹으며 치르었고, 적당한 성적에 한국대학 몇 곳을 넣어 좋은 국립대 대기번호 초반대까지 받아놓았지만 난 결국 내가 가고 싶었던 일본으로 떠났다. 꾸역꾸역 준비하던 고3이 마치 독서실처럼 어둡던 시기라 생각했지만, 사실시키는 대로만 하던, 한국인이라면 다 정해져 있는 길을 가던 그때가 더 모든 게 쉬웠다. 

18살에 홀로 어중간한 영어실력,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실력을 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떠난 유학생활은 몇천 배는 더 힘들고 모든 선택과 행동을 혼자 생각하고 짊어져야 하는 인생의 시작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배운 첫 큰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과거의 나에게 지금이라도 그때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고, 어느 누구보다도 빨리 얻은 대학 합격 진심으로 축하하고 앞으로 모두 다 잘 해낼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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