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에곤실레를 만난다면....
에곤 실레의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본 고흐의 그림이 내게 너무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에, 실레의 작품에 대해서는 비교적 담담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내 생각은 완전히 뒤집혔다.
처음에는 어두운 색감과 혹독한 묘사에 위축되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왜곡된 모습과 차가운 분위기가 마치 내게 어떤 불편함을 강요하는 듯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림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운 감정 뒤에서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 같은 마음이 느껴졌다. 그 속에 담긴 미묘한 인간성이 나를 붙잡았다.
왜 그토록 오랜 시간 그림 앞을 떠나지 못했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전시장을 나서는 길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 그림에 반응했을까?' 어쩌면 내가 에곤 실레만큼 불행한 경험을 겪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나는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실레의 그림에 매료된 이유는, 내가 그의 작품이 표현하려는 고통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이렇게 물었다. "네가 그 사람처럼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걸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니?" 이 질문은 마치 내 의견을 부정하려는 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꼭 똑같은 경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과 덜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고 해도, 고통의 평범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는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
실레의 그림이 내게 그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고통의 깊이나 이유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려 했던 감정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그림에 담아낸 고통의 순간은 나에게도 있었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와 연결되었다. 만일 내가 실레를 만날 수 있었다면, 그의 고통을 위로하며 존경의 미소를 보냈을 것이다.
에곤 실레의 작품은 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인간의 고독, 감정의 불안,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강렬하게 표현했다. 이런 주제들은 그의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버지는 정신질환과 매독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는 가족 전체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어머니는 실레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기대했지만, 실레의 예술적 선택과 사회적 관습을 거스르는 태도는 그녀를 실망시켰다. 실레는 어머니가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종종 그녀를 차갑게 묘사했다.
실레는 인간의 내면과 욕망, 그리고 고독을 깊이 탐구하며 금기시되던 성적 주제를 거침없이 다뤘다. 그의 작품은 당시 사회의 보수적 시선 속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1912년에는 어린 소녀 모델 사건으로 체포되어 짧은 기간 감옥에 갇히는 경험까지 했다. 사랑했던 연인 발리와의 이별, 그리고 에디트와의 결혼은 그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지만, 내면의 고독은 여전히 그의 붓끝에 머물렀다. 28세라는 짧은 생애 동안 그는 3,0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1918년 스페인 독감 팬데믹으로 세상을 떠났다.
실레의 삶과 작품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과 연결지어 볼 수 있다. 니체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며 삶의 고통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이를 초월하여 자기 실현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레는 니체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왜곡된 인체와 강렬한 색채로 인간의 고독과 불안을 표현하며, 기존의 관습을 초월하려 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의 개념이 실레의 작품 속에서 구현된 것이다.
니체는 또한 전통적 도덕과 규범을 비판하며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실레 역시 전통적 예술 규범을 거부하고 사회적 금기에 도전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감정을 탐구하며, 새로운 표현 방식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니체의 철학과 궤를 같이 한다.
삶의 고통을 미학으로 승화한 점에서도 두 사람은 닮아 있다. 니체는 고통을 삶의 본질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더 높은 예술과 인간성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레는 자신의 고통과 혼란을 왜곡된 인체와 강렬한 주제를 통해 예술로 표현하며, 고통을 미적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니체가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통해 삶과 죽음을 하나로 통합된 과정으로 보았듯, 실레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서 표현했다. 그의 작품 속 삶과 죽음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니체는 개인이 군중 심리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레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내면세계를 탐구했다. 그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창조하며 니체가 말한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에곤 실레와 프리드리히 니체는 서로 다른 시대와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기존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두 사람 모두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고통을 탐구하며 이를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했다. 실레의 예술은 니체적 철학의 미학적 실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며 그와 니체가 만나 나누었을 대화를 상상해 본다. 그들은 아마도 삶과 고통, 그리고 예술의 본질에 대해 끝없는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