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따라가다
가래나무는 산의 계곡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이다. 가래라는 이름을 가진 수생식물도 있다. 수생식물인 가래의 잎과 가래나무의 열매는 마치 럭비공처럼 끝이 뾰족한 형태로 닮아 있기도 하다. 흙을 뜨거나 파내는 농기구인 가래와 같은 모양이어서 농기구에서 유래된 말로 추측되고 있다. 가래와 비슷한 나무로 호두나무가 있다. 호두는 고려시대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고소한 맛의 속살이 많아 가래를 밀어내고 대표적인 견과류로 이용되고 있다.
가래나무는 모험심이 강한 나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종족을 퍼뜨리기 위해 종자를 멀리까지 이동시키는데 물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계곡에 가래나무 열매가 떨어지면 과피는 벗겨지고 두꺼운 껍질을 가진 열매는 계곡에 물이 넘치기를 기다린다. 장마철이 되어 계곡에 물이 넘치면 가래나무 열매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하류로 떠내려 간다. 하류의 토양이 퇴적된 곳에 자리를 잡은 가래는 새로운 환경에서 삶을 꾸려 나간다.
적응을 위해 준비하다
누구나 그렇듯 낯선 곳에서의 삶은 쉽지 않다. 힘든 나날을 이기기 위해 어릴 때 살았던 고향을 떠올리고 부모님의 보살핌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가래나무의 경우 낯선 곳에서의 삶을 위해 열매에 단단한 준비를 해 놓는다. 속이 적은 두꺼운 껍질은 물에 떠서 하류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주고 종자가 썩는 것을 막아준다. 깊게 파인 열매의 골은 토양이 쉽게 달라붙게 해 성장할 때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무의 싹이 트고 초기 성장할 때 도움을 줄 뿐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뿌리를 내린 이후부터의 생장은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모래에서 유기질이 많은 곳으로 뿌리를 뻗고, 잎을 내 성장하는 것은 오로지 혼자 해야 하는 일들이다.
강원도 동해안의 하천들을 다니다 보면 가래나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떤 것은 하천의 하중도에 자리 잡고 어떤 것은 호안의 비탈면에 뿌리를 내린다.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가래나무들을 보면 사는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혹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껍질만 남아버린 열매를 만나기도 한다. 세상사는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실패가 두렵다 해도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가래나무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