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열면 보이는 것들, 연당숲에서

by 물냉이

산수유와 반룡송의 마을

주말 밀리는 차들을 따라 이천시 백사면을 찾았다. 산수유의 고장. 3월이면 노란 꽃으로 봄소식을 알리는 도립리와 송말리의 산수유나무는 이제 푸른 잎들 사이로 팥알보다 약간 큰 열매를 달고 있다. 호박들이 수박만 한 이파리로 밭을 덮고 있는 들판에서 반룡송과 마주했다. 신라 말 도선이 심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이 소나무는 용처럼 꿈틀거리는 가지들이 아직도 건실하다. 짐작하기 어려운 수령을 지닌 이 나무는 올해도 솔방울을 달고 있다. 나이를 먹어서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다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이나무를 천연기념물 제381호로 지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을을 감싸주는 숲

도립리의 반룡송을 작별하고 송말리에 있는 연당숲을 찾아간다. 연당숲은 원적산(564m)의 동쪽 긴등산의 계곡에 자리 잡은 송말 2리 입구에 있는 숲이다. 이 숲은 마을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막아주고, 마을의 습도를 유지해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비보숲이다. 숲 안쪽의 마을은 풍천임씨들이 동족촌을 이루어 사는 곳이었으며, 지금도 임씨성을 가진 주민들의 비율이 높다.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음나무, 오리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평균 수령이 2006년에 150년이었다.

송말리를 지내며 축산분뇨의 냄새가 심하게 났는데 숲을 지나면서 냄새가 나지 않았다. 비가 와서 냄새가 숲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어쨌든 숲으로 인해 축산분뇨의 냄새를 숲이 줄여주는 것은 분명했다. 숲의 보호를 위해 2024년까지 출입이 금지된 숲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비안개 속에 말없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이 기분 좋았다.

송말리의 연당숲처럼 제 몫을 다하는 삶이길 원했는데 살다 보니 나의 몫이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더 많은 인생이 되어 버렸다. 숲의 입구에 서서 잠시 생각한다. 숲이 마을을 감싸듯, 대기를 쾌적하게 해 주듯, 안논의 물 마르지 않게 하듯 세상을 유지하는 숲으로 살고 싶다. 그것이 얼마나 큰 욕심인 줄 알지만, 그 정도 욕심은 부려봐도 괜찮은 게 인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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