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열면 보이는 것들, 마음이 네개

by 물냉이

머리가슴손건강

1902년 미국의 농촌을 중심으로 시작된 청소년 단체가 있었다. 머리(Head)와 가슴(Heart), 손(Hand), 건강(Health)의 첫 글자를 따 4H라 이름 붙인 이 단체는 농촌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성장시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꾼들을 키워냈다.

4H는 1927년 YMCA(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었으나 큰 활동을 하지는 못하였다. 1947년 미군정 시기에 경기도에 도입되었고 6.25 이후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전에는 시골의 어느 마을을 가던지 마을의 입구에 세워진 4H 비석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이 비를 보면 근대유물을 만나는 느낌이 들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게 된다.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건물의 한 모퉁이 잔디밭에서 4H 비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살펴보니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중촌마을의 입구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노고산(486.9m)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중촌은 다른 어느 곳보다 개발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이다. 지금은 오금동 옆 삼송동이 개벽하듯 아파트 세상으로 바뀌었고 중촌 일대는 산지라 아직 개발의 여파가 미치지 않고 있다.


지나간 것의 아름다움

한때는 가장 최신이었고, 유행을 타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가게 된다. 4H의 활동도 그렇게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가고 있는 것들 중 하나이다. 4H를 상징하는 디자인을 보면 토끼풀잎이나 괭이밥의 잎처럼 생겼다. 토끼풀잎을 닮은 이 비석을 보는 날은 마치 네잎 토끼풀을 만난 것 같았다.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우리는 행운보다는 토끼풀의 세잎이 상징하는 행복이 더 소중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네잎을 만나면 기분이 좋은 것은 분명하다. 4H의 지성과 덕성, 노동과 건강은 우리가 균형을 맞추어 실천한다면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들이다. 지식과 감성을 가꾸고 노동을 통해 건강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4H비의 "어서 오십시요"라고 쓴 손글씨가 마음에 들었다. "누구세요?"라는 물음이 선행하는 사회에서 대상을 확인하지 않고 어서 오라고 할 수 있는 사회, 우린 정말 그런 세상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었다. 비의 뒷면에는 단기 4294년(1961년) 8월 8일이라 적혀있고, "살기 좋은 농촌 우리 힘으로", " 빛나는 흙의 문화 우리 손으로"라는 글이 옆면에 쓰여 있다. '흙의 문화' 흙을 밟아 본 지가 언제인지도 가물한 생활에서 흙의 문화라는 말이 주는 아련함이 새롭다. 지방의 어느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마주한 듯한 기분이다.

4개의 H가 4개의 마음으로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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