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올라갔다가 황금처럼 빛나는 물체를 발견했다. 좁은 마당의 구석에 놓인 고무다라에 흙을 담고 방울토마토, 오이, 작두콩을 심어 놓았는데 초록의 잎 사이로 삐죽 몸을 내민 것은 오이였다. 식물을 심고 가꾸는 일에 관심이 없는 나의 눈에 그동안 오이가 보이지 않은 것은 초록잎과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리라. 오이가 익어 노각이 되면서 노란 황색으로 변하고 그때서야 내 눈에 띈 것이다.
아직은 그물처럼 표면이 갈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금 더 늙혀야 노각의 제모습을 보일 것 같다. 벼가 무릎 위로 자라고 햇볕이 말매미 소리만큼이나 따가울 때면 잠깐 농한기가 찾아왔다. 이른 아침 논에 나가 물피를 뽑거나 논둑에 심은 콩 주변으로 자라는 잡초를 베어주고 나면 해가 뜨거운 한낮에는 동구의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 누워 게으름을 피울 수 있다. 그때쯤이면 처음 캔 감자로 만든 감잣국이나 감자조림이 밥상에 올랐다. 그리고 쉰 열무김치를 구석으로 밀게 하는 노각무침이 반짝 스타가 되곤 했다.
참욋살 같으면서도 달지 않고 간이 적당히 밴 노각무침을 먹다 끝쪽의 것을 씹게 되면 쓴맛이 배어나던 그 기억은 그 시절의 보리밥만큼이나 나름의 색으로 내 기억의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노각은 칼로리가 100g에 4kcal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낮아 살찔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칼륨이 풍부해 체내의 노폐물을 배출하는데 도움을 주고 물이 풍부해 등산 같은 힘든 운동을 할 때도 오이를 가져가 먹으면 쉽게 재충전을 할 수 있다. 모든 과일이나 채소가 찬 것과 속을 덥혀주는 것이 있어 과식은 금물이지만 체질에 따라 굳이 외면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 오이이다. 이런 오이도 처음엔 노란 꽃 아래 작은 크기로 달려 있다 수정이 되면 쑥쑥 자라 오른다. 옛사람들은 오이의 생김새와 빨리 자라는 것을 남성의 상징으로 보아 아들을 낳거나 아이를 많이 낳길 원하는 마음을 담기도 했다. 신사임당은 오이를 곤충과 함께 그려 오이의 두드러짐을 묘사하기도 했다.
17세기와 18세기 조선 사람인 홍진구와 심사정은 오이를 고슴도치와 함께 그려 (자위부과(刺蝟負瓜)) 표현했다. 자위부과라는 말은 오이를 짊어진 고슴도치를 뜻한다. 바라는 일이 번창하고 잘되길 상징하는 것으로 재복이나, 관운, 자식복 등 여러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심사정이나 홍진구의 그림에 나오는 고슴도치를 잘 보면 그리 유쾌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좋은 뜻을 지니고 있다 해도 삶에 부담이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슴도치 외따 지듯 한다'는 속담은 고슴도치가 오이를 훔쳐 등에 꽂았으나 그 무게에 눌려 달아나지 못하는 걸 꼬집는 말이다.
그래도 오이의 자람은 부럽다. 나의 공부하는 것들도 오이처럼 성큼성큼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노각이 될 때까지 잘 묵혔다가 김치라도 담아 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