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열면 보이는 것들, 좁은길로 가라

by 물냉이

해가 머리 위에서 익어 가는 날이었다. 어디고 비 내릴 낌새는 없고 즐기지 않는 'aㅏaㅏ(Ice Americano)'가 간절한 점심무렵 태화강을 찾아갔다. 오염된 강물이 바뀌어 다시 은어와 연어가 찾아오는 강, 겨울이면 떼까마귀 가득하고 여름이면 백로들이 여느로운 강이다. 십리대숲과 삼호대숲이 우거진, 순천 이후 두번째로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벚나무 가로수가 있는 강변을 따라 걸으며, 그늘만으로는 더위를 다스리기 어려운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정원과 작약원을 지나 저 앞 무궁화정원 너머로 태화루가 다가올 때쯤 머리에서는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늘이 필요해." 여울다리를 건너 왕원추리 꽃밭을 지나 십리대숲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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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에는 항상 바람이 머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대숲의 가는 잎 마저도 해의 열기가 잡아버렸다. 숲사이로 난 1.5차선의 길은 코로나 걱정없이 걸을수 있었지만, 그만큼 더웠다. 아무리 대나무숲이라해도 길이 넓으면 쏟아지는 햇볕을 떨구어 내지 못한다. 바람이 있고 그늘이 있는 대숲은 두사람이 어깨를 마주치며 걸을 정도의 길이 난 곳이었다. 대숲은 바람을 통과시키는 곳이 아니라 잡아 두는 곳이다. 대숲에서 바람을 만나려면 좁은길을 찾아가야 했다. 앙드레지드의 좁은문은 아니지만 좁은길을 갈때 원하는 삶을 얻는 것이 아닐까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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