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군에서 발원해 남원시의 도심 남쪽을 가로질러 곡성군의 경계에서 섬진강과 몸을 합치는 요천은 밤이면 하천의 수면 위로 별빛같은 도시의 불빛들이 물든다. 요천변의 광한루는 조선 태조때 황희가 광통루(廣通樓)라는 누각을 세운 후, 세종때 정인지가 이곳을 거닐다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전란으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어진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요천의 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돌로 만든 오작교를 설치하니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피어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수중 누각인 완월정까지 어우러진 광한루를 지금은 광한루원이라 부르고 명승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한루원의 주변에는 50여곳의 추어탕집이 모여 남원추어탕거리를 이루고 있다. 어느곳에 들어가 먹어도 남원의 추어탕을 먹는 것이니 굳이 원조집을 고집하지 않는다. 저녁을 먹은 후 천천히 후문으로 향하는 골목을 걷는다. 아래쪽에서 비춰주는 조명으로 인해 담은 운치를 더해 저녁 산책을 더욱 즐겁게 한다.
저 앞에 후문의 출입구가 보이는 담장에서 낮선 생명체를 만났다. 돌담을 쌓으면서 돌틈에 발라 놓은 시멘트 사이에서 오동나무 한그루가 싹을 틔웠다. 흙은 거의 없는데 이런 곳에 뿌리를 내리다니. 이 어린 오동나무는 그의 열열한 생존의지에도 불구하고 앞날은 그리 밝지 못하다. 돌담 틈으로 자라는 나무는 분명히 돌담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광한루를 관리하는 이들이 보게 되면 이 어린 나무를 뽑아 버릴 것이다. 나의 눈에 보이는 앞날이야 어쨌든 간에 오동나무는 지금 달빛처럼 은은한 불빛을 즐기고 있다. 그의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일주일? 아니면, 한달?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마지막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곧 가을이 지나고 잎이 떨어져 관리자의 눈길에 띄지 않는다면 내년 봄까지 어린 오동나무는 살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 있을까? 오늘의 햇빛을 즐기고 밤이면 달대신 빛나는 전구 불빛에 살랑 잎을 흔들며 춤추는 오동나무에게는 지금이 최상의 시간일 것이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길게 보면 100년까지도 바래 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백년도 지구의 46억년 시간에 비하면 찰나보다 짧은 것이고,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에 비해도 그리긴 시간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나이들어 50대나 60대라면 그시간은 더 짧아질 수 있다. 돌담의 오동나무 처럼 지금을 살면 된다. 후문을 통해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을 내는 광한루를 바라보고, 오작교를 건너며 밤에도 잠못자는 비단잉어에게 인사도 해보자. 400년을 살며 광한루와 함께 시간을 나눠온 팽나무당산도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