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나루역에서 가까운 서울식물원을 찾았다. 서울식물원의 주제원과 온실은 다양한 식물들과 잘 조성해 놓은 공간들이 보기 좋은 곳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들어가지 않는다. 이유는 5,000원이라는 입장료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식물들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생각하면 시간이 짧다해도 이곳을 들어가는게 절대 손해가 아닌데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난다면 주제원과 온실도 함께 돌아보겠다고 마음 먹는다.
무엇이든 다 때가 있다. 그때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식물들도 누구보다도 때를 잘 알고 있다. 언제 씨에서 싹을 틔워야 하는지, 꽃을 언제 피워야 하는 지, 그리고 다시 씨를 맺어야 하는지 말이다. 싹이 제 때에 트지 못하면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고 꽃이 때에 맞춰 꽃잎을 벌리고 향을 내고 꿀과 꽃가루를 나누어주지 않는 다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우연처럼 일어나는 일들도 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수생식물이 자라는 연못에 어리연꽃과 수련이 서늘함이 조금씩 섞이는 가을 햇볕에 광합성을 하고 있다. 모두 제철을 만난 것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초록잎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꽃을 받치던 꽃대들은 모두 사라졌다. 화분 속에서 줄기가 껑충 자랐던 연들은 관리의 손길에 의해 줄기가 모두 잘려지고 낙엽들도 정리된 상태이다. 보이지 않는 사이에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도 늘상 꽃피는 여름만 있는 건 아니다. 조금씩 잎이 바래기 시작하면 가을을 맞이하고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어느 계절이건 잘 준비된 이에겐 축복이다. 겨울의 흰눈과 따스한 난로 곁에서 나누는 오손도손한 이야기들. 바람차가운 거리를 걷다 문을 열고 들어간 카페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과 좋은 음악 한곡을 듣는 기분은 얼마나 좋은 일일까.
어디선가 제이레빗이 부른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들려 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본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