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항에서 영덕 해맞이공원 입구까지 가는 해파랑길 20코스는 영덕 블루로드 A코스를 따라간다. 봉화산을 거쳐 천지산과 영덕풍력발전단지를 지나 영덕 해맞이공원에 이르는 산길 코스가 원래 해파랑길 코스이며, 금진리에서 하저리, 대부항과 창포항을 거쳐 영덕 해맞이공원까지 가는 바닷길 코스도 있다.
산길을 추억하며(강구항-고불봉-영덕 생태문화체험공원-영덕 해맞이공원)
길을 걷다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해파랑길 20코스는 산길을 따라 걷는 코스이다. 숲길을 걸으며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고, 영덕군의 중요한 관광시설들을 둘러볼 수 있다. 강구 버스터미널 옆 김밥집에서 아침을 먹으며 산길과 바닷길을 고민하다 바다 쪽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산길은 이미 여러 차례 걸어 봤고, 바다 쪽 길은 아직 온전히 걸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바닷길이 산길보다 힘이 덜 든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였다.
해파랑길 20코스의 산길은 해발 150m에서 250m 정도 되는 구간을 오르내리면서 걷는다. 100m 정도의 편차가 있지만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이 많아 크게 어려운 길은 아니다. 길을 따라 소나무와 곰솔, 오리나무가 이루는 숲을 만날 수 있으며, 식재 수종인 리기다소나무숲도 많은 편이다. 특히 봉화산 일대의 산길은 길이 험하지 않아 지역주민들도 운동 겸 산책코스로 이용하고 있다.
소나무숲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솔바람이 전해주는 숲의 사연을 되새겨 본다.
금진 구름다리를 건너면 리기다소나무숲이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외국산 식재 수종인 리기다소나무는 3장의 잎이 뭉쳐나고 나무의 줄기에 맹아가 많이 나기 때문에 알아보기 쉽다. 리기다소나무는 1907년 조선 정부의 초빙을 받아 농림학교의 교수가 된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가 1920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식물분류학을 공부하고 돌아올 때 미국의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리기다소나무의 종자를 들여온 것이다. 리기다소나무를 전국적으로 확대해 심은 것은 1970년대 조림과 사방사업을 확대 실시할 때였다. 이때 40만 ha의 산림에 리기다소나무를 식재하였다고 한다. 영덕 산길의 리기다소나무숲에는 줄기에 주황색의 혹이 달린 나무들이 많은데 이것은 산불이 났을 때 송진이 줄기 밖으로 빠져나와 굳은 것이다. 상처가 깊어도 살아 있는 것들은 다시 살아가야 한다. 혼자 걷는 해파랑길에서는 리기다소나무의 고통을 이기고 다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힘을 얻게 된다.
금진구름다리를 건너면 만나게 되는 리기다소나무숲
산불의 피해를 받았던 리기다소나무의 줄기로 삐져나온 송진과 그 단면의 모습
고불봉 정상에서 보면 영덕군과 오십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곳에 오르면 넓게 볼 수 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세상을 살며 오르는 것과 다가가는 것을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불봉을 내려오면 만나는 쓰레기 매립장을 지나칠 때면, 이렇게 좋은 산속에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을 묻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온다.
이 길을 걸을 때는 중간에 먹을 곳이 없기 때문에 점심을 미리 챙겨야 한다. 아무도 없는 산길에서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 영혼은 가끔 식욕만으로도 만족스러워질 때가 있다. 겨울철에는 따듯한 물을 함께 가지고 다니면 추위에 차가워진 음식을 먹을 때 큰 도움이 된다. 영덕 산림생태공원을 지나가면 길가에 정크 앤 트릭아트 전시관, 영덕군 해맞이 캠핑장, 영덕 조각공원, 영덕군 산림생태문화체험공원, 영덕풍력발전단지가 이어진다. 영덕군의 바닷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들르게 되는 유명 관광지들로 언제나 방문객이 많다. 해파랑길을 혼자 걷는 여행자에게 유명 관광지는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는 번거로운 곳이지만 화장실과 음식물을 파는 곳이 있다는 좋은 점도 있다.
고불봉 정상에서 바라본 영덕군 전경과 정크앤트릭아트전시관, 그리고 영덕군 산림생태문화체험공원
파도 보기 좋은 날(강구항-금진 2리 마을회관-금진 1리 마을회관-하저리 해변)
비 내리는 아침 강구교에서 바라본 오십천 하구의 물은 온통 흙탕이다. 요 며칠 동안 내린 비가 강의 하구를 황톳빛으로 물들인 거다. 우리의 일상을 괴로운 일들이 온통 흙탕으로 물들여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은 흙탕물은 곧 빠져 버릴 것이고 다시 맑은 물이 흐르게 되리란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조용한 대게 식당가를 지나 편의점에 들러 작업용 장갑을 하나 샀다. 장갑의 앞면이 고무로 코팅이 되어 있어 비 오는 날에는 일반 장갑보다 쓰기가 좋다. 높은 파도가 밀려와 갯바위 사이에서 부서지며, 흰 거품으로 금진리 해안을 채운다. 금진 2리의 야트막한 동제당에는 자연림인 소나무숲과 사람들이 심어 보호해 온 느티나무가 바다를 향해 서있다. 동제당의 현판은 '제1사당'이다. 피할 곳 없이 바다와 바로 마주하고 있는 이 마을에서 바다의 분노를 달래는 일처럼 중요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금진리의 방파제 안쪽까지 넘어오는 거친 파도가 끊이질 않는 날이다.
강구교에서 바라본 오십천. 강구항 주변이 온통 황토빛 흙탕물이다. 인적 드문 대게식당가를 지나 바다로 향한다.
금진2리 동제당의 느티나무와 금진리 앞바다의 높은 파도.
영덕대게로의 안내판이 비 내리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이 길은 걷는 이들을 위한 별도의 안전시설을 해놓지 않은 구간들이 있으므로 걸을 때에 안전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혼자 길을 걸을 때에는 다치거나 안전에 위급한 상황을 당할 경우 도움을 제 때 받기 어렵다. 그래도 바다와 나란히 걸으면서 거친 파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수영도 제대로 못하고 바다에도 잘 들어가지 않는데 바다를 좋아해 틈나는 대로 바다를 찾는다. 해파랑길을 걷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파도가 높은 날의 자갈을 때리는 파도소리는 더욱 요란스럽다. 이런 요란스러움도 좋다.
하저교 하구는 사구에 가로막혀 하천이 바다와 연결되지 않고 물이 사구로 스며드는 곳이다. 높은 파도가 하천 쪽으로 밀려들어와 사구를 타고 넘으며 모래를 헐어 낸다. 하천 안쪽에서 물이 차 일어나는 개터짐이 아니라 바다에서 파도가 넘어와 물길을 만드는 개터짐이다.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무언가 있다면 그것을 허무는 일은 어느 한쪽의 책임만은 아니다. 격한 쪽이, 간절한 쪽이 벽을 넘게 된다. 막힌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누가 먼저 넘어왔느냐 하는 자존심 논쟁은 할 필요가 없다. 벽이 허물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오늘은 온전한 파도의 날이다. 갈매기들도 파도를 피해 육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해변의 작은 상점에 잔뜩 파는 물건의 목록을 써 놓았다. 손난로, 폭죽, 풍등, 얼음, 오징어파우더, 조개미끼, 개불미끼, 통발미끼, 참갯지렁이, 홍개비? 홍개비는 붉은빛이 도는 갯지렁이의 일종으로 주로 수입산이란다. 바닷가의 만물상이다. 이밖에도 상품 목록이 더 있는데 주로 낚시 미끼들이다. 낚시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이 상품 목록만 읽어도 최근에 이 바닷가에서 많이 잡히는 물고기가 무엇인지도 짐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갈매기 몇 마리가 거친 파도 위를 근접 비행하며 파도를 즐기고 있다. 어딜 가나 별난 녀석들이 있는가 보다. 아니 별난 녀석들이 아니라 저 틈에서 먹이를 찾는 눈치 빠른 녀석들 일지도 모른다.
영덕대게로를 따라 걸으며 높은 파도의 율동을 바라본다. 파도는 바닷가 몽돌에 스며들어 옥 구르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파도가 사구를 넘으며 모래를 허문다. 비오는 날에도 낚시미끼를 파는 상점은 불을 밝히고 있다.
잠시 비가 멈추었다. 바람이 불긴 하지만 걷기는 한결 수월하다. 도로에 비 내린 물이 가로수와 하늘을 비추어 해안도로를 걷는 건지 하늘에 난 길을 걷는 건지 구분이 어렵다. 하늘길을 걸을 때마다 파장이 일어나고 하늘과 나무들이 형체를 찌그러트리며 흔들린다. 하지만 수면은 곧 잔잔해지고 하늘길은 다시 제모습으로 돌아온다. 혼자 걷는 해파랑길은 일상을 흔드는 것이다. 평소의 일정이 미뤄지거나 취소되고, 생활하던 주공간을 떠나 낯선 거리를 걷게 된다. 일상의 흔들림으로 인해 불안할 수도 있고, 이 일 저 일 마음이 복잡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흔들리던 물결이 다시 평온해지듯, 일상의 변경으로 불편했던 마음도 곧 정상을 되찾을 것이다. 걸을 때는 온전히 걷는 일에 충실하면 된다. 풍경에 감탄하고 낯선 사람, 다른 음식에 잘 적응하면 된다. 누군가 바닷가의 줄에 배추 우거지를 걸어 두었다. 잘 말려 음식을 해 먹으려 했을 텐데 내리는 비에 흥건히 젖어버렸다. 비에 젖고 높이 치는 파도에 짠맛까지 배었으니 주인은 우거지를 버렸다고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음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것도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다. 젖은 배추는 다시 말리면 되고, 소금기는 어차피 물에 불려 쓸 것이기에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작은 시도라도 해보면 생각보다 쉽게 문제는 해결된다.
영덕대게로의 고인물에서 하늘길을 만났다.
배추 우거지가 비에 젖은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담장에 물고기와 사람 등을 그려놓은 대부리의 마을 안쪽에 느티나무숲이 보이는데 동제당이다. 잠시 바람도 피할 겸 골목으로 들어가 동제당숲으로 갔다. 동제당은 서낭당을 말하는 것으로 지역마다, 혹은 사람마다 동제당이라고 하기도 하고 서낭당이라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적다 보면 상황에 따라 일관성을 갖지 못하게 되는데 같은 뜻이므로 굳이 어느 한 곳에 얽매여 표현하지 않기로 한다. 동제당 옆에 25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는데 보호수로 지정된 해가 1982년이니 40년 정도를 더하면 290년이 된 것이다. 이 동제당 옆에는 골매기로 보이는 돌과 함께 비석이 있는데 '영토령 김씨지 신위(永土靈 金氏之 神位)'라고 쓰여 있다. 마을이 형성될 때 맨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사람을 입향조라고 한다. 열려있는 동제당 안에 세 개의 신위가 있는데 안씨와 송씨와 김씨의 신위였다. 이 세 성은 마을의 입향조로 주민들이 신위를 모셔둔 것이다. 입향조는 마을 역사의 뿌리이며, 상징이다. 주민들은 입향조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함께 모여 동제를 지냈다. 같이 살지 아니한 낯선 신보다는 함께 살았던 조상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것이 훨씬 친근하고 신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을의 신이 된 입향조는 마을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창포리의 동제당에는 두 개의 건물이 있다. 하나는 동제당 건물이고 그 옆에 가건물을 지어 제수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서낭당 옆에 있는 바위 앞에는 콘크리트로 작은 전각을 세우고 그 안에 돌신체를 모셔두었다. 돌신체는 골매기라고도 하며, 신이 깃들어 있는 돌을 말한다. 경상도 내륙 지역에는 돌골매기가 많이 있는데 해파랑길의 영덕 바닷가에서도 돌골매기를 만났다. 그동안 돌골매기를 만나지 못한 것은 있다 해도 길을 가느라 그냥 지나쳤거나, 문이 닫혀있어서 확인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느티나무와 곰솔 사이로 보이는 대부리 동제당
대부리 동제당의 골매기와 함께 세워진 비석 옆으로 개울이 흐른다.
느티나무숲이 둘러싸고 있는 창포리 동제당
창포리의 골매기는 마치 좌정한 부처님의 모습 같기도 하고 사람의 상체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창포리 등대를 지나 시금치 밭 앞에서 '국립청소년해양센터 해양환경체험관'을 마주한다. 오늘은 문을 열지 않아 들어가진 않고 지나친다. 바닷가의 대게를 들고 있는 조각상은 대게로 유명한 강구의 현재 모습을 상징화한 것처럼 보인다. 인지도라는 점에서 강구는 대게를 저렇게 떠받들고도 남을 것이다. 창포리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창포말 등대에 도착하니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많다. 대게의 집게발이 등대를 감싸고 있는 형태의 창포말 등대는 다른 등대처럼 방파제를 따라 들어가지 않아도 길가에서 바로 볼 수 있어 좋다. 걸음의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영덕 해맞이공원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