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걷는 해파랑길,괴시리전통마을에 매화가 필 때

22코스 : 축산항 - 고래불해수욕장. 16.1km

by 물냉이

해파랑길 22코스는 축산항에서 고래불까지 산길과 바닷길을 함께 걷는 코스로 영덕블루로드 C코스를 따라가는 길이다. 축산항 북쪽의 관까지 이어지는 산길에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목은이색 기념관에서 괴시리 전통마을을 거쳐 대진항에 이르면 길은 내륙의 마을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이다. 괴시리와 대진리의 서낭당과 서당당을 함께 지키는 소나무, 팽나무, 이대 같은 나무들을 살펴볼 수 있다. 대진해수욕장에서 고래불까지는 송천에서 유래한 모래가 긴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덕천, 영리, 고래불해수욕장의 곰솔숲을 따라 걸을 수 있다. 바다를 따라 해파랑길을 걷고 싶을 때는 축산항에서 와우산을 돌아가는 해안길을 따라 걸을 수 있으며, 사진리, 대진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까지 갈 수 있다. 22코스의 산길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바닷길을 간 하루를 살펴본다.


목은을 따라가는 산길(축산항-대소산 봉수대-사진리 구름다리-목은기념관-괴시마을-대진항)

죽도산 휴게소에서 시작되는 코스는 축산항을 지나 서낭당과 남씨발상지비 앞에서 와우산으로 오른다. 해파랑길 22코스의 스탬프는 출발지점과 다른 축산항의 택시 승강장 옆에 있어 신경을 써야 한다. 소의 산 다시 말해 '축산'이라는 이름은 축산항 옆에 있는 와우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와우산 능선에 있는 일광대까지는 남씨의 시조인 남민(南敏)의 유적을 보며 걷게 된다. 그는 원래 당나라 사람 김충(金忠)으로 경덕왕에게 남민(南敏)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 남씨의 시조가 되었다. 남씨발상지비 옆에는 수형이 아름다운 팽나무가 서낭목으로 서있다.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팽나무는 마치 사슴이나 순록의 뿔 같기도 하다. 신라 금관은 순록의 뿔을 닮아 기마민족으로 대륙을 달렸을 신라인의 뿌리를 짐작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축산항의 팽나무는 우리 민족과 서낭목의 뿌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축산항의 서낭당과 남씨발상지 기념비

와우산은 바람 부는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잘 자란 소나무와 곰솔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높이도 높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걷다 보면 금방 바다로 다시 내려오게 된다. 솔숲을 따라 걸으며 깊이 숨을 들이마셔 마음을 가라 앉힐 수 있는 짧지만 기분 좋은 숲길이다. 반면에 대소산의 봉수대를 거쳐 목은 기념관까지 이르는 소나무숲길은 건조하고 거친 산에 자리 잡은 소나무들의 억척스러움을 맛볼 수 있는 길이다. 물론 대소산의 소나무가 다 어렵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와우산에 비해 구간이 훨씬 길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사면이나 계곡에서 곧고 잘 자란 소나무숲을 만날 수 있으며, 능선에서는 바람에 휘고 키가 작은 소나무들을 만날 수도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37호인 대소산 봉수대는 조선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축산포(丑山浦) 일대의 동정을 살피고 중앙으로 연락하던 곳이다. 탁 트인 공간이어서 먼 곳까지 조망이 가능하고, 죽도산과 축산항 일대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나무숲을 걸으며 길의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지만 이 구간에서는 잘린 나무의 나이테를 보며 그 안에 저장된 시간을 읽을 수 있다. 나이테를 보면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나이테의 형태를 보면 빛을 많이 받은 부분을 구분할 수 있으며 가뭄이나 산불의 흔적을 짐작할 수도 있다. 다만 나무의 이런 이력을 보려면 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남민이 거닐었을 와우산 소나무숲 사이의 일광대와 숲을 걸으며 만나는 소나무의 나이테. 나이테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간다
2단으로 쌓아 올린 대소산 봉수대와 방송용 송전탑
대소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죽도산과 축산항 전경


산이 끝나는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목은이색 기념관을 걸으며 6,000 여수의 시를 남겼다는 이색의 시를 떠올려본다. 시는 생각이 나지 않고 목은, 포은, 야은의 3은이 떠오른다. 수업시간에 외었던 기억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때가 종종 있다. 이색이 태어난 생가터 주변은 물이 많이 나는 곳이다. 침향지는 집 주변에 나는 물을 관리하는 좋은 수단이었다. 연을 심어 그 향을 즐겼을 지혜를 따라가 본다. 괴시리 전통마을은 햇살이 가득한 곳이다. 천천히 마을을 걸으며 따사로운 햇살을 누려본다. 영해구계택, 해촌고택, 태남댁, 영은고택이 나란히 서있다. 고택의 오래된 지붕엔 와송이라 불리는 바위솔이 자라 그 풍치를 더해주고 있다. 담장 너머로 일찍 꽃을 피운 홍매가 봄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 꽃이 피면 봄이다. 길을 걸으며 잠시 봄의 생기를 느껴본다." 마을 앞 길로 나서면 아랫마의 '축귀장군남정중(逐鬼將軍南正重)'이라고 쓰인 서낭당을 만나게 된다. 괴시리는 스무나골의 느티나무 서낭과 이 마을의 괴질을 쫓아내고 풍년을 가져온 신령의 전설이 있는 아랫마 서낭당이 있다. 아랫마의 서낭당에는 400년 되었다는 팽나무가 있다. 매실나무를 심은 밭가의 길을 따라 걸으면 만나게 되는 괴시 2리 서낭당은 소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다.

목은 이색 유허비와 탄생지터, 침향지와 침향정의 전경
고택의 마당에 홍매화가 핀 괴시리마을 풍경. 골목엔 햇빛이 가득하다.
고택의 지붕 위에 자라고 있는 와송.
괴시리 마을 아랫마서낭당과 400년이 되었다는 팽나무 서낭목
소나무숲 사이의 괴시2리 서낭당

사진의 바닷길을 따라가다(축산항-사진리-대진항-대진해수욕장)

이른 새벽 창을 흔드는 바람소리와 맥박 뛰는 듯한 엔진 소리가 끝이 없다. 오징어 잡이 배인지 환하게 불을 밝힌 배들이 항을 드나든다. 해파랑길의 항구에서 잘 때마다 경험하는 것이고 오늘도 예외는 아니지만 저 뱃소리에 잠들지 못한다.

죽도산 전망대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길을 출발했는데 문을 연 식당이 없다. 식당을 찾다 편의점도 지나치고 항구에 펼쳐놓은 통발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축산항으로 돌아가 아침 먹는 것을 포기한다. "어떻게 되겠지." 오늘 하늘은 쾌청 그 자체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평안한 얼굴이다. 다만 파도는 여전히 차가운 바람과 함께 기세를 누그러 뜨리지 않는다. 와우산 끝자락의 바다에는 폐허가 된 양어장이 파도소리를 듣고 있다. 물고기를 키웠을 수조에는 물은 없고 바다 쓰레기만 들어 있다. 이곳에 바다 체험장을 조성하면 어떨까. 수조에 물을 담아 이 지역 바다에서 나는 생물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어려울 때는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이른 새벽 배들이 들고 날 때마다 맥박 치듯 엔진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워 잠을 이룰 수 없다.
축산항의 아침 풍경. 오늘은 파란 하늘이 아름다운 날이다.
축산항에 널어놓은 통발들, 죽도산 뒤편으로 구름 속의 해가 빛난다.
폐허가 된 양식장. 이곳의 남은 시설을 복원해 바다체험장을 조성하면 교육, 관광의 명소로 재탄생할 수 있다.


대소산의 입구에서 산으로 가지 않고 바닷길을 선택한다. 동해안 자전거길이 도로를 따라 조성되어 있어 걷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일부 구간은 자전거가 지나가기 힘든 곳에 형식적으로 선만 그어 놓거나 그마저도 없는 구간들이 있어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한적한 길을 속도를 높여 지나가는 차들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혼자 걸을 때에는 차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 죽도산 등대가 나를 환송한다. 대진항에 이를 때까지 죽도산은 조금씩 뒤로 물러서며 걷기 여행자의 발길을 배웅해 줄 것이다.

대소산 봉수대로 오르는 산길 입구. 여기에서 산으로 가지 않고 자전거도로를 따라 바닷길을 걷는다.
가다 끊기다 하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조심하며 길을 걷는다
뒤를 돌아다보면 멀리 죽도산이 걷기 여행자의 하루를 조용히 바라봐 준다.


사진리로 가는 바닷가에 영덕 대부정합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부정합은 시간 차이가 있는 두 지층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을 말하며, 두 지층의 시간 차이가 매우 클 때 대부정합이라고 한다. 영덕의 대부정합은 해설판에는 24억 년의 차이가 있다고 쓰여있으니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안내판의 사진과 설명은 보기가 어렵고 바위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파도가 높아 바닷가로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 다만 길가의 절개사면에서 역암층을 쉽게 볼 수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사진리(絲津里)는 나루가 길게 뻗어 있어 실나리라고 불렀었다고 한다. 길을 걸어보면 사진 3리에서 사진 2리, 사진 1리로 이어지는 길이 길게 연결되어 있어, 길의 모습과도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싶어 진다. 사진 2리로 가는 언덕길에서 마을 주민들이 나와 도로에서 휴지를 줍고 있다. 수고하신다고 인사를 건네자 어디서부터 걸어왔냐며 고생한다고 잘 가라고 한다. 혼자 걷는 해파랑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먼 길에 잠깐 쉬어가는 휴식처럼 힘을 준다. 마침 어제까지 내린 비로 폭포가 되어 흐르는 '비와야 폭포'가 시원함을 더해준다. 비와야 폭포는 태백에 있는 폭포 이름으로 비가 내려야만 폭포를 볼 수 있다는 뜻으로 갖다 붙여 보았다.

도로로 인해 절개된 사면의 역암과 토양층의 곰솔. 작은 돌이 촘촘히 박혀있다.
대부정합 안내판이 있는 영덕 바닷가와 안내판의 내용을 간단히 휴대폰에 그려 보았다.
대부정합이 발달한 해안의 바위를 파도가 덮치고 있다.
태백에 있는 비와야폭포처럼 비가 내린 다음에만 폭포가 되는 제2의 비와야폭포

대진 3리에 이르니 방파제 위로 구름이 길게 띠를 이루며 깔려 있다. 하늘이 한없이 푸른 하루이다. 대진 3리의 방파제와 갯바위는 낚시꾼들 사이에 무늬오징어가 잘 잡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도 방파제에 낚시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오면 나는 마을 앞에 있는 돌서낭을 보고 간다. 보는 방향에 따라 새가 먹이를 잡고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매 한 마리가 날갯짓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왠지 영험해 보이는 바위이다. 주민들은 이 바위 주변에 담을 쌓아 성역을 표시하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아 보기를 원하는 걷기 여행자들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육지가 바다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듯한 대진 2리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바위 아래 콘크리트로 포장된 서낭당에 해불신위(海佛神位)라고 쓴 비가 모셔져 있다. 대진 2리는 입향조인 권동수를 모신 권씨골맥이할배와 마을에 호환(虎患)이 있을 때 모신 천장군, 그리고 폭풍이 친 어느 날 바닷가에 떠내려온 부처님을 모신 해불의 세 동신이 있다. 권씨골맥이할배와 천장군의 서낭당은 마을 안쪽에 있으며, 산길을 걸을 때 길가에서 만날 수 있다. 출입문이 달린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으니 따스한 햇살이 등을 덥혀준다. 잠시 후 할머니 몇 분이 오셔서 버스정류장 안이 시끌하다. 근처로 마실 가시는 모양인데 자리가 모자라다. 자리도 양보할 겸 길을 다시 떠난다.

파도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산수암에 지어진 의병장 김도현을 모신 도해단을 지나간다. 그가 차가운 바다를 향해 들어가던 그 날처럼 푸른 바다엔 흰 파도만 가득하다. 대진 1리의 마을 입구에는 이대숲이 감싸고 있는 천장군의 서낭당이 있다. 팽나무나 느티나무 고목이 아닌 이대가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대진 3리의 항구와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대진 3리의 돌서낭을 여러방향에서 바라본 모습
대진 2리의 천장군서낭당과 해불신위서낭당, 대진 2리의 버스정류장
김도현 의병장을 모신 도해단과 도해단 주변 바다의 격동하는 파도
대진 1리의 서낭당을 감싸고 있는 이대숲


고래가 춤추는 바닷가(대진해수욕장- 덕천 해수욕장-고래불해수욕장)

대진해수욕장 북쪽에서 바다로 송천이 흘러들어 간다. 송천에서 바라보면 바다 쪽에 상대산이 있다. 상대산의 서쪽 절벽을 관어대라고 부른다. 지금은 상대산의 정상에 2015년에 지어 관어대라는 현판을 건 나무정자가 있다. 괴시리에 살던 이색이 이 산을 올라 송림이 우거진 해안과 바다를 바라보며 '고래들이 노니는 뻘'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을 '고래불'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불'은 '뻘'의 옛말인데 서해의 갯벌이 아닌 모래가 쌓여 있는 뻘이다. 이색이 하나의 바다로 본 이곳은 덕천해수욕장, 영리해수욕장, 고래불해수욕장으로 구분되어 불린다.

송천 하구에서 바라본 상대산. 상대산의 서쪽 바위 절벽을 관어대라고 한다.
여름이 다가오면 송천의 하천변에 심은 큰금계국이 꽃을 피운다.

갯메꽃이 해안에 무리 지어 피는 대진해수욕장을 지나면 송림을 낀 해수욕장이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 야영장이 조성된 송림숲길을 따라 걸으면 그늘에 쉬거나 고기를 구우며 식사를 준비하는 이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 나도 저 틈에 끼어 오늘 저녁은 여기서 쉬어갈까" 하는 착각에 잠시 빠져본다. 덕천해수욕장과 영리해수욕장 사이는 갈대가 우점하는 사구습지가 발달한 곳이다. 이곳의 습지만은 제발 개발되어 사라지지 않기를 봉송정 앞을 지나며 빌어본다. 봉송정은 고려시대 봉씨성을 가진 이가 영해부사로 있을 때 송천과 덕천 사이의 사구에 지은 정자이다. 그는 사구에 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해풍을 막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였다. 봉송정은 1800년대에 있었던 대홍수 때 모두 떠내려가 버렸다고 한다. 지금의 봉송정은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다.

고래불은 5월에 찾아오면 송천리, 덕천리, 원황리, 거무역리 일대의 넓은 농경지에 가득 들어찬 보리밭이 익어가는 절경을 볼 수 있다. 잘 익은 보리와 보리를 수확하고 벼를 심기 위해 물을 채운 봄논이 만들어 내는 5월의 숨 막히는 순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기억된다.

곰솔과 모래가 만나 만들어 내는 바닷가를 걸으며 고래불해수욕장에 도착한다. 하늘은 푸르고 화창한 햇살에 아직까지 한 끼도 먹지 않았다는 걸 깜박했다.

대진해수욕장의 갯메꽃군락, 5월이면 해수욕장의 모래에 바짝 몸을 붙이고 분홍색의 꽃을 무더기로 피워 주변을 밝혀준다.
소나무숲길과 봉송정. 봉송정은 이곳에 소나무숲을 조성한 이야기가 있다.
고래불의 갈대가 우점하는 사구습지
소나무 숲길을 걸으면 "잠시 꺼두어도 좋습니다."라는 선전의 문구가 떠오른다.
고래불해수욕장과 블루로드 안내판


5월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고래불 일대의 보리밭의 다양한 풍경

익어가는 보리밭 사이로 바다 바람이 지나가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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