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모래가 보이면 마을도 보인다

23코스 : 고래불해수욕장 - 후포항. 11.9km

by 물냉이

해파랑길 23코스는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시작해 백석리와 금곡리, 굴음리의 해변을 거쳐 후포항에 이르는 비교적 거리가 짧은 구간이다. 영덕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경계이며, 대게를 비롯해 고등어, 꽁치, 가자미, 오징어 등 다양한 수산물의 집산지인 후포항이 있다.


잃어버린 모래밭(고래불해수욕장-백석리)

고래불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이곳에 왔을 때 점심시간이 되면 꼭 들르는 병곡면사무소 옆의 송학식당으로 갔다. 오이김치, 시금치무침, 깻잎조림, 멸치볶음, 생선 반토막, 버섯, 김치 등의 반찬이 국 한 그릇과 함께 나오는 이곳의 백반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것이 없다. 하긴 주인이 같은 사람이니 그 맛이 크게 바뀔 이유도 없다. 어쨌든 편안히 집밥 먹는다 생각하고 들르는 곳인데 주인이 올해 식당 문을 닫을 거라고 한다. 어디든 지방을 찾아갈 때면 과거에 찾아갔던 맛집을 떠올리곤 그곳으로 다시 가게 된다. 그런데 과거의 그 집이 없어지거나 주인이 바뀌어 음식의 질이 달라져 있을 때면 추억의 한 조각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밥을 한 공기 더 시켜 든든히 먹고 주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선다. 이제 고래불에 오면 어디에 가서 식사를 해야 할까. 뭐 다른 맛집이 생기길 바래본다.

평범한 식사는 걷기여행자에게 작은 위로를 준다. 세상은 이런 작은 것들에 의해 돌아간다.


고래불해수욕장에서 백석리로 가는 길에는 펜션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바다의 경관이 가려지고 길을 걷기도 좋지 않다. 과거에는 양식장들이 이 곳에 있었는데 하나둘 풀빌라 형식의 펜션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바다로 나가는 길이 사라져 버렸다. 백석리로 들어서면 모래사장이 거의 없는 제방이 이어져 모래사장을 걸을 일이 없다. 모래사장이 침식으로 사라지고 있어 테트라포드를 바다에 길게 넣어 파도의 세기를 줄이고, 해안 모래밭에도 돌들을 덮어 놓았지만 모래사장도 거의 없고, 경관도 많이 훼손되었다. 과거의 백석리는 고운 모래사장으로 알려진 곳이었는데 해안의 모래사장은 펜션들로 인해 접근이 어려워지고, 백석리 마을 앞은 모래사장이 깎여나가 사라지는 형편이니 백석리의 미래경관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백석리는 마을 북쪽에 큰 흰돌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16세기 초에 장(張)씨와 맹(孟)씨가 입향조로 들어와 개척을 한 곳으로 백석 1리와 백석 2리 두 마을이 있다.

백석리로 가는 길은 좁고 위험하다. 바로 옆에 바다가 있지만 이 공간은 계속 숙박용 건물들이 들어오고 있어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백석리 입구의 소나무숲에는 돌담을 쌓은 서낭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서낭당은 존위지신(尊位之神), 성황지신(城隍之神), 토지지신(土地之神)의 세 신위가 모셔져 있다. 토지나 성황신은 익숙한데 존위지신은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존위는 마을에 있는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즉 토지나 성황신과 함께 마을의 어른들이 신이 되어 이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백석리 서낭당은 낡고 다 허물어져 가던 것을 2004년 공건남이라는 사람이 수리, 보수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서낭당을 사람이 손대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재앙을 받는다고 믿고 있어 오랫동안 서낭당의 수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금기를 깬 사람이 공건남이다. 백석리의 서낭당도 처음부터 이런 금기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낭당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만든 금기가 시간이 지나 잘못 오해되며 수리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보인다.

백석항을 지나는데 오징어를 꿰어 말리고 있다. 요즘은 동해에서 오징어 말리는 것을 정말 보기 어렵다. 기후온난화로 인해 오징어들이 사라졌다고도 하고, 북한이 동해의 어업권을 중국에 팔아버려 북쪽에서 오징어의 씨를 말려버려 남쪽에서는 오징어를 보기 힘들다고도 한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든지 문제가 해소되어 우리의 바다에서 오징어를 과거처럼 흔하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석리는 인근에 있는 칠보산의 영향권에 있다. 칠보산이라는 상호가 붙은 상점이 여러곳 있고, 칠보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이 지역을 거쳐가기도 한다. 누군가 길가에 죽은 나무를 조각해 장승처럼 만들어 두었다. 웃고 있는 커다란 눈매와 미소 짓는 입매가 걷기여행자에게 친근한 인사를 건넨다.

소나무숲 사이에 곱게 자리 잡은 백석리 서낭당
백석리의 해변침식을 막기 위해 테트라포드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파도의 공격은 여전하다.


백석항에 오징어를 널어 말리는 모습이 반갑다.
길에서 만난 동화책 속의 나무정령을 떠오르게 하는 익살스러운 모습의 나무조각


금 캐는 하천에서(백석리-금곡리-후포항)

백석항을 떠나 해변의 몽돌밭으로 밀려오는 파도의 소리가 점점 커질 무렵 유금천(有金川) 하구가 나온다. 금이 있는 하천이라는 뜻이니 이곳에서 정말 금이 나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신라시대부터 유금천에서 사금이 났다고 한다. 유금천하구는 하천의 유속이 느리고, 하천에 식물이 많이 자라는 곳이 었으나, 2019년과 2020년 홍수가 나며 하천바닥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지금은 모래가 많이 퇴적되어 있고 그 위의 좁은 물길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유금천에 새롭게 퇴적된 모래 안에 혹시 과거에 나왔던 사금이 있을지 모르니 확인해 보아야 한다. 만약 사금이 나온다면 외국에서 폐광이나 서부 개척지에서 금 캐는 관광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역사의 기억을 되살려 사금 캐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관광에 이용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마을 앞을 지나가는 평범한 하천에서 사금이 나고 하천 주변마을이 관광지가 될 수 있다면, 좋은 역사복원관광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칠보산 자락에서 발원하는 유금천의 상류에는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유금사가 있다. 유금사가 먼저일까? 아니면 유금천이 먼저일까. 이름의 어원을 따라 가볼 것이 하나 더 있는데 유금천 옆에 있는 금곡 1리의 마을 이름의 유래는 무엇일까? 모습이 그물을 닮아 그무실이라고 불렀다는 설과, 조선 세조 때 김한중이 이곳으로 피신 와 그 자손들이 퍼지면서 김씨 성을 따 금곡이라고 했다는 설, 유금천에서 금이 나와 금곡이라고 했다는 설 등 세 가지 설이 있으니 마을을 돌아보며 추리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금천 하구는 물의 흐름이 느리고, 하천에 식물들이 자라던 곳이었으나, 2019년과 2020년 비로 인해 하천의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모래가 많이 퇴적되어 있다.

유금천을 떠나 언덕길을 넘는 정상부에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다. 이곳이 영덕과 울진의 경계이다. 버스정류장에 잠시 앉아 군과 군의 경계를 이따금씩 넘어오고 넘어가는 차들을 구경한다.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나무에 직박구리들이 앉아 수다를 떤다. "녀석들아, 내가 다 듣고 있단 말이야." 마을 뒤편으로 시금치와 마늘이 심겨 있는 금곡 2리를 지나간다. 집 뒤편에 있는 이런 텃밭들은 주민들의 중요한 채소 공급처였지만 지금은 그 기능을 점점 잃고, 집이나 건물을 짓는다. 금음리를 지나며 바닷가의 어린 소나무들을 만난다. 잎이 뻣뻣하고 줄기가 검은 것이 곰솔이다. 곰솔의 잎이 뻣뻣한 것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견디어 내느라 강해졌기 때문이다. 평생 온실 안에 화초처럼 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은 언제든 거친 들판으로 내몰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역경을 통해 더 강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으니까.

울진과 영덕의 경계에는 요란한 직박구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금곡 2리 집들 뒤편의 시금치밭과 마늘밭. 마늘밭옆에 블럭이 놓여 있어 무언가 시설이 들어 올 것 같은 분위기다.
바닷바람에 시달리면서 잎의 내성을 키워가는 곰솔
후포로 가는 바닷가 길. 파도가 밀려왔다 돌들을 굴리며 오후 시간을 자신의 세레나데로 채운다.

후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모 케이블 티브이에서 방송되어 인기를 끈 의사 사위와 장인 장모가 울진대게를 홍보하는 간판이 서있다. 이곳에서부터 한참을 제방을 따라 걸어가면 후포해수욕장이 나온다. 삼율천하구에 있는 삼율해안교를 건너 하나로마트 앞을 지난다. 마트에 들러 저녁 간식거리와 내일 먹을 간식을 함께 구입한다. 오늘 한 끼만 먹어서 배가 고팠는지 이것저것 가방에 가득 차게 물건을 샀다. 어디서고 식사 전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건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를 가기 위해 천천히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는 대게식당들이 대게를 찌고 있어 김이 거리로 흘러나온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가격이 부담스러운 대게식당 외에는 문을 연 식당이 없다. 횟집이 한 곳 문을 열었는데 오늘은 회도, 물회도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다행히 문을 연 해장국집을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가 해장국으로 저녁을 때웠다. 숙소로 들어와 속이 출출해질 무렵 마트에서 산 컵라면을 꺼냈다. 오늘은 대게를 못 먹었지만 대게를 먹는 기분을 내야겠다. 컵라면을 뜯고 물을 분 후에 마트에서 산 게맛살을 꺼내 뜯어 넣는다. "모를거다. 이맛을."


후포해수욕장을 찾은 가족과 울진대게축제를 알리는 깃발
어둠이 내린 후포항의 골목을 지나 대게맛을 낸 컵라면으로 즐기는 야식.


keyword
이전 23화혼자걷는 해파랑길,괴시리전통마을에 매화가 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