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 가는 것
그날의 하늘처럼 자연스럽게 덧바른 것 없이
흐르는 물을 비추어 작은 나무 한그루 풀한 포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한 끼 거른 오후처럼 볼 맨 얼굴로 사소한
트집을 잡다 스스로 복받치는 화를 참지 못할 때
바닷가에 가만히 앉아 밀려오는 파도의
반복이 갖는 의미를 헤아리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길가에 붉은토끼풀 바람에 시달리고 발길에 차이는
고만고만한 인생이라 해도 사랑도 하고 꽃피는
아름다운 날들이 있다는 것을 존중할 줄 아는 것
삶이야 쓸 것은 많지만 변변한 책 한 권 써보지 못한
물결에 이리저리 구르다 햇빛에 비쳐 반질거리기도 하는
수많은 몽돌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걸 깨달아도
실망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걸어
산자락에서 쉽게 만나는 생강나무처럼 무심코
스쳐도 부드러운 향을 낼 줄 알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