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식물(食物)이 되리라

by 물냉이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세기 1장 29절)"


자연을 돌아다니는 것이 일인 나에게 식물들이 잎을 떨구는 겨울은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계절이다. 곰이 겨울잠을 자듯 생각 주머니를 머리에 인채 컴퓨터 모니터와 마주하며 지내다 보면 배가 나오고 잊고 지냈던 통증들이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른다.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고 난 뒤 하나님은 먹을 것을 마련해 주었다. 흔히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우선 먹고 합시다."라고 이야기하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말해준다. 신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먹고사는 일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채소와 열매를 먹을 것으로 주고 그 후에 모든 생물들에게 푸른 풀을 먹을 것으로 주었다. 인간과 동물들은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생물을 식물계, 균계, 동물계로 구분하는데 여기서 유기물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식물뿐이다(일부 세균이 광합성을 하나 그건 논외로 치자). 모든 생물은 생장하고, 번식하고,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기물과 무기물의 섭취가 꼭 필요하다. 여기에서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먹어야 산다. 인간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찾아다녀야 했다. 인류의 초기에는 채집을 통해 유기물을 섭취했다. 향기로운 열매와 고소한 씨앗들은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배고픔은 금방 찾아왔다. 인류가 풀이 아닌 다른 생물들을 먹으면서 에너지의 섭취량이 늘어나고 인간은 여유를 얻게 된다. 수렵은 또 다른 동물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함께 공존하던 존재가 먹이가 될 때 인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때부터 인간은 영과 혼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서 인간은 자신들의 문화를 발달시켜 문명을 이루고, 현재에 이르렀지만 아직 인간은 먹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신이 인간에게 준 두 가지 한계가 있다. 먹는 것과 죽음이다. 과연 우리는 등에다 엽록체를 이식하고 기억의 데이타화를 통해 한계를 극복할까? 그럼 그건 인간일까? 아니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데미갓(Demigod)일까? 고기보다는 채소와 열매를 좋아하는 인간이지만 먹고사는 문제에는 여전히 고달픈 존재일 뿐이다.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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