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가? 오히려 잘된 일이다. 두려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맞서라.
-니체 위버멘쉬
2026년 새해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린란드로 세계는 뒤숭숭하고, 나라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내란이 한구석에 불안으로 남아 있다. 적토마를 탄 것도 아닌데 급변하는 환경은 소시민으로 살아온 나의 삶을 흔들고 있다.
인생은 언제든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불쑥 찾아오는 위기 앞에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의 입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가족, 미래 어느 것 하나 안정되어 있지 않다. 세상을 한입에 삼키고 있는 AI의 등장에도 사람들은 편리보다 두려움을 먼저 이야기한다.
두려움의 시대다. 슬픈 건 사람들이 두려움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익숙해지고, 포기하고, 원망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두려움은 더 견고해진다.
19세기(1844-1900) 사람인 니체는 신학과 고전문헌학, 철학을 배웠으며, 우리에게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인식되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멋스러운 제목에 빠져 읽기만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는 1889년 1월에 쓰러진(누구는 말에 채찍질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초인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정말 그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뒤에 폐인처럼 살다가 20세기가 열린 8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10년 동안 그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니체는 그의 책 '위버멘쉬'에서 두려움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두려움에 맞서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그의 마지막 10년의 삶에서 두려움을 어떻게 대했을까 궁금해진다. 40-50대의 절정의 시기에 그는 왜 그래야 했을까? 그는 혹시 두려움에 맞서지 못했을까?
사거리 신호등의 빨간불은 '불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통행하도록 기다리는 것이고, 남에 대한 배려이다. 우리 인생의 빨간불들도 잠시 기다리라는 것이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대상의 움직임들이 명확히 보이듯 두려움 앞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 담담해질 수 있다.
무엇을 배워야 하나?, 어떤 걸 준비해야 하지? 막연한 두려움 앞에서 갈피를 못 잡기보다 잠시 침잠하며 세상을 바라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본다. 뒤로 물러나는 것이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권투선수의 스텝을 보면 물러섬과 나감이 쉼 없다. 한 해가 시작된 지금 나의 발은 어떤 위치에 있던 긴 인생에선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 조금 뒤로 물러나 숨을 돌리고, 세상을 여유 있게 살피는 것을 주저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