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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늘 Nov 20. 2023

눈부시게 젊은 그녀


“너 그 옷 어디서 샀니? 예쁜데.”

“인터넷. 값도 싸. 이 블라우스는 2만 원, 바지는 3만 원.”

“친구들이 예쁘다고 쇼핑몰 어디냐고 물어봐서 알려줬어.”

흰색 티셔츠에 파란색 청바지를 입고 아침에 집을 나서는 딸의 모습은 눈부셨다.      

단돈 5만 원에 빛이 나는 옷차림. 살짝 컬이 있는 건강한 생머리, 탄탄하고 곧게 뻗은 다리, 주름 없는 피부, 어느 하나 눈부시지 않은 게 없었다.

아! 젊음. 무엇을 입어도 빛이 나는 시간. 20대라는 쨍한 젊음은 그냥 만 원짜리 셔츠를 입어도, 화장으로 감추지 않아도, 값싼 가방을 들어도 예쁘다.      


하루는 딸의 입은 카디건이 예뻐 보여서 내 몸에 슬쩍 걸쳐본 적이 있었다. 웬걸, 20대 딸이 입었을 때는 더할 수 없이 근사해 보였는데 내 몸에 걸치니 누가 입다 버린 옷을 입은 것처럼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거울을 보다가 속상해져서 얼른 벗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 한 살 나이를 더 먹는다는 의미로 확실히 다가오면서 더 이상은 즐겁지 않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나이에 나는 들어섰나 보다.

나이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우울해하던 차에 친구의 권유로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노래 교실에 등록을 했다. 첫 시간 교재를 미리 구입하고 교실에 들어섰다.


비교적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70-80대 할머니들도 여럿 보였다. 크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분위기를 흥겹게 이끌어가는 노래 강사 덕분에 노래 교실의 분위기는 활기찼다. 대부분은 기존에 활동하던 회원들이 재등록했고 친구와 나를 포함하여 서너 명이 새로 등록한 상황이었다.

강사가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새로운 회원을 일어서게 해서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 사는 누구라는 정도로 인사를 했다.

내 목소리와 외모로 대충 내 나이를 짐작했는지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아유, 새댁이네, 새댁. 여기서 제일 어린가 봐.”하고 한 마디씩 했다.     

새댁? 와우! 주름과 새치를 걱정하는, 충분히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나에게 새댁이라니, 여기가 무슨 세상인가?    

“아유, 그맘때는 뭘 입어도 예쁘지 뭐. 다리에 힘도 아주 짱짱하고 좋을 때다.”   

 

대박, 내가 젊다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바라보며 나는 픽 하고 웃었다.   

그렇구나. 나이는 정말 상대적인 거구나. 물리적인 나이, 시간과 세월로 균등하게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70-80대 할머니들은 나를 보며 젊다 하고 20대 청년들을 보며 나는 그들을 젊다고 한다.

     

결코 젊지 않은 나이의 나는 눈가의 잔주름을 바라보며 ‘젊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늙음이란 말이 주는 우울한 느낌들. 고집, 편견, 무능력, 꼰대, 불통, 무관심...

그래서 우리는 나이 듦을 두려워한다.

젊음이란 말이 주는 느낌들. 도전, 열려있음, 호기심, 능력, 소통, 역동성...

그래서 우리는 젊음을 갈구한다.

생물학적인 나이가 만드는 젊거나 늙은 외모는 우리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가끔 ‘늙음’ 속에서 ‘젊음’을 보거나 ‘젊음’ 속에서 '늙음'을 볼 때가 있다. 주위엔 늙은이 같은 젊은이도 있고 젊은이 같은 늙은이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봉사활동 하는 단체에 좋아하는 할머니가 한 분 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일단 밥을 잘 산다. 초복이라고, 추석이라고, 10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심지어는 자신이 새로 운동화를 샀다고 평범한 날도 이벤트성 기념일로 만들어서 가끔 은근히 비싼 밥도 산다.      

부자인 줄 알았는데 자식들 다 키워 독립시키고 나서는 살고 있는 집을 다운사이징해서 25평으로 옮기고 그것마저 주택연금에 가입하여 당당하게 연금을 받으며 자식들 도움 안 받고 살고 있다.


매일 아침 1시간 이상 운동을 한다.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운동장에 있는 모든 운동 기구를 써서 근력 운동을 반복하는 루틴을 몇 년째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걸음걸이도 곳곳 하다.

    

돋보기를 끼고 매일 책을 본다. 온갖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 의견도 당당하게 표현한다.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다른 의견에 충분히 고개를 끄덕여준다.


가끔 기차여행을 신청하여 친구들과 좀 거리가 있는 곳으로도 씩씩하게 여행도 간다.

문화센터에서 하는 컴퓨터 강의를 수강하더니 요즘은 개인 블로그 만들기에도 도전했다고 한다.  

    

옷은 리폼해서 입는다. 좋은 재질의 옷감이라 버리지 않고 있던, 예전의 옷을 가지고 멋지게(전혀 촌스럽지 않은) 리폼한 원피스나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에 과하지 않게 적당한 스카프를 두르고 나타난다. 더도 덜도 아니게 옷마다에 어울리는 스카프를 선택하는 그녀의 센스는 정말 최고다.

그런 그녀를 볼 때면 와, 아름답다, 눈부신 젊음 부럽지 않다고 나는 매번 감탄하곤 한다.  

    

은행에서 대면으로 계좌를 만든 날, 일을 마치고 난 후 창구 직원의 친절함에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그녀는

“다음에는 비대면으로 예금 계좌를 만들어 볼게요.”

하고 호기롭게 약속까지 하고 나왔다.


 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모두 출산율을 걱정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녀는 외국의 예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어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녀의 논리는 사람들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우리의 미래세대를 걱정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공동체의, 사회의 문제를 고민해 온 그녀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되었다.     

      

지나가다 예쁜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어린아이처럼 쭈그리고 앉아 예쁘다며 한참을 바라본다. 낙엽이 쌓인 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행복해한다. 70을 훌쩍 넘 그녀임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모습이 신기하다. 그녀에게서 ‘나이 듦’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녀의 눈빛은 20대인 젊은 내 딸의 눈빛과 많이 다르지 않다.

  


젊음은 숫자인 나이로 말하는 게 아니구나, 감정이고 마음이고 향기 나 색깔 같은 것이구나, 하며 바라본 그녀에게선  그런 초록내음이 잔잔히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숫자로 가름되는 나이 어디쯤에 서 있어도

우리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80이 되어도 100세가 되어도 우리는 젊어질 수 있지 않을까?  

    

무구한 호기심과 용기, 그리고 '나'를 넘어서는 관심과 선의,  

그런 것들이 우리를 오래도록 젊게 만들지 않을까?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 눈가의 주름이 별거 아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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