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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늘 Sep 24. 2023

폐차시키던 날

 첫째가 태어나던 해 구입한 자동차이니 19년 되었다. 19살인 내 차가 길을 가다가 서버렸다. 저 스스로

천천히 속도를  낮추더니 그냥 멈췄다. 퇴근길 도로 한가운데 막무가내로 멈춰 서 있었으니 뒤에서 오던 차들이 클랙슨을 울리고 난리가 났다. 고속 주행 길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큰 사고가 날 뻔했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비상등을 킨 채 보험 회사에 연락했다.

“차가 길을 가다가 섰어요.”  

“차량이 49에 저, 맞으시지요?”

가입된 보험 관련 확인 절차가 끝나고  담당자가 지시하는 대로 나는 응급 시동 장치를 작동시켰다. 처음 해보는 조치였다. 마치 무슨 심폐소생술을 받은 것처럼 멈춰 섰던 자동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일단 우리 아파트 앞마당 주차장까지 끌고 왔다.

“19년이나 되고 주행거리가 27만 키로니 수명이 다한 거네요. 이런 차 드문데 정말 오래 타셨네요. 하하하.”

차를 점검하면서 보험 회사 직원은 딱히 칭찬은 아닌 것 같은 애매한 웃음을 흘렸다.

 



 19년 동안 계속 몸을 써서 움직였으니 내 차는 심장과 모든 장기가 그 수명을 다한 것이었다.

폐차 절차를 밟고 드디어 차가 수거되던 날,

견인 갈고리가 아가리를 벌리고 주차장에 서 있는 내 차의 몸통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갈고리에 엮이어 차는 순식간에 위로 들어 올려졌다. 아파트 경비실 옆 출입구 계단에 서 있던 나는 이제 쓸모를 다한 내 차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위로 끌려가는 내내 나를 바라보던 앞 얼굴 범퍼, 난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눈물, 난데없는 내 눈물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갈고리에 잡혀서 들어 올려지던 차를 한참 구경하던 경비 아저씨가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던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흘끔흘끔 바라보는 것 같았다.




 추우나 더우나 내 몸 안아주고, 내 손 잡아주고, 내 투정받아주었던, 19년 동안 나와 함께해 온 나의 일부였음을 순간 나는 가슴 먹먹하게 깨달았다.   


아픈 친정엄마 보고 오던 날, 흐르는 빗물로 내 마음을 씻겨주고,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던 너. 남편과 다투고 난 뒤 무작정 시동을 걸어 자유로를 달리던 밤, 차가운 바람과 캄캄한 밤의 몰인정으로부터 나를 막아주고 감싸주던 너.

직장 생활하면서 멀리 대구 시댁에 맡긴 돌 지난 아이를 보고 돌아오던 길, 아이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집중이 안 되던 핸들 그립.  '너 열심히 살고 있어, 아이 걱정은 마, 엄마 생각해서 씩씩하게 클 거야' 하며 씽씽 바람 가르고 달리던 너.

첫째 아이 수능 시험 보던 날, 늦을까 봐 걱정하던 마음 걷어내며 막힘없이 시원스레 달려주던 너.

둘째 아이 자취방에 짐 옮겨주던 날, 트렁크며 뒷좌석까지 충분히 몸을 열어 한가득 물건들을 품어 주었던 너.

황사 먼지로 뒤범벅된 몸을 씻겨주던 날, 깨끗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행복하다고, 고맙다고 웃어주던 너.




 많은 날, 많은 시간을 같이한 내 옆의 피붙이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 이 정도면 내 눈물은 온전히 정상 아닌가? 쓸모를 다한 고철 덩어리를 두고 눈물 흘리는 이상하고 정신 나간 여자의 말도 안 되는 그것이 아니고말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마음속으로 웅얼거렸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내 차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안녕. 정말 고마웠어, 19년 동안, 잘 가."

“이제 다시 네 몸을 못 만지고 네 소리를 못 듣겠지만 네가 준 용기로, 위로로 나 남은 날들 잘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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