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늘 Oct 05. 2023

'먹태 깡'이 뭐야?

먹태깡 1인 2 봉지 한정..


“무슨 일로 이렇게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지?”

“아, 저기 안내 푯말이 있네요.”

 ‘먹태 깡 1인 2 봉지 한정’

“아하, 먹태 깡이란 걸 사려고 이렇게 줄 서 있구나. 한 사람에 2 봉지 한정이면 엄청나게 인기 있는 건가 보네?”     

 1주일에 한 번 걷기 모임에 참석하여 운동한다. 걷는 일도 혼자서는 게을러져서 안 되니 지인들 몇 명이 모여서 같이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지났다. 한여름의 열기는 아침부터 사납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목표한 코스를 땀 흘리며 걷던 우리 일행은 마침 근처에 대형 할인점이 보이자 땀도 잠깐 식힐 겸 물 한 병씩 사려고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구 문을 밀고 들어선 시각은 9시 55분경. 매장 개점 시각은 오전 10시. 5분 정도 남아서 입구에서 기다리던 중 색다른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던 것이다. 보통 때 개점 시각을 기다리는 정도의 줄이 아니라 꽤 긴 줄이었다. 오픈 전 선착순으로 판매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먹태 깡'이란 걸 사기 위해 줄은 서 있다는 이야기인가? 무슨 명품도 아니고 ‘깡’이라면 새우깡? 고구마 깡? 무슨 과자 같은데.


우리는 신기해하며 줄 서 있는 한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어른보다 아이가 말 붙이기 편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편견이 아이에게 쉽게 다가가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질문하면 친절하게 응대해 주라고, 그래도 아직은 초등학교에서 가르칠 것이고 전두엽이 아직 리모델링되기 전의 아이들은 배운 대로 할 것이라는 생각이 아이에게 다가가는 나를 무심하게 만들었다.




 남자아이는 초등학교 5, 6학년 정도 되어 보였다. 반곱슬머리에 핸드폰을 들고 화면을 보고 있는 아이는 발육상태가 좋고 구김 한 점 없이 활달해 보였다. 아이 뒤에는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한 사람당 2 봉지 한정이니 다른 식구가 같이 온 듯했다.

“OO야, 너 오늘 학원 숙제했어? 이거 사고 집에 가서 숙제 빨리 해.”

엄마인 듯싶은 아이 뒤의 여자가 말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애야, 먹태 깡이 뭐야?”

나는 최대한 부드럽고 다정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억양으로 아이에게 물었다.  그 순간 아이는 아무 대답 없이 핸드폰으로 향해 있던 고개를 들더니 내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약 2, 3초 정도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곧이어 한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다른 손가락을 툭툭 두드렸다. 검색해 보라는 말인 듯하였다.


오랫동안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사실, 아이들의 눈빛과 표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언어를, 메시지를 대부분은 알아챌 수 있었다.

“헐, 한심해. 먹태 깡을 모르다니, 말이 안 통하는 아줌마들, 상대해서 뭐 해. 귀찮아. 시간만 아깝지….”

라는 메시지였다.

아이는 뒤이어 고개를 가볍게 절레절레 흔들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자신의 핸드폰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뒤에 서 있던 아이 엄마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로부터 내 질문에 대한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지만 나는 너무도 많은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아이는 자기가 할 말을 눈빛과 표정, 몸짓을 통해 정확하게, 충분히 전달한 것이었다.

물론, 온전히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요, 과도한 자의식이라는 위험성은 없지 않았지만, 당황스러움, 무안함, 헛헛함 같은 게 밀려왔던 게 사실이다. 이 나이에 요만한 일로, 이런 꿀꿀감정들을 느끼다니, 한심함까지 고개를 내밀었다.  

   



 ‘먹태 깡’, 청양고추와 마요네즈로 버무린 요즘 말로 ‘단짠단짠’한 과자. 아이들 입맛을 제대로 저격한, 한 봉지에 1,700원짜리 과자였다. 여름휴가철의 술안주로도 인기가 많아 공급이 달리는 제품이라는. 아, 정말 핫한 물건이었구나. 그걸 알지도 못하고 물어봤으니 아이 눈에 우리는 얼마나 구닥다리 아줌마들이었을까?      

쫓기듯 매장을 나온 우리는 그늘에 앉아 한동안 아무도 말을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우리, 아까 상처받은 거 맞지?”

누군가의 한마디에 우리는 모두 배꼽 빠지게 웃었다.

“그러게, 그런 걸 뭘 물어봐. 그냥 검색하면 되지.”

“난 그 애 엄마가 더 이해가 안 가더라. 아이가 그런 태도를 보이면 부모로서 한 마디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에이, 그런 말 하면 어디 가서 꼰대라는 소리 들어. 낯선 사람이 다가오거나 뭘 물어오면 아무 대꾸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게 요즘 세상이잖아. 그냥 모른 건 검색해서 ‘네이버’에 물어보면 되지 뭐.”


 아! 검색. 그놈의 검색. 손가락만 있으면 되는데, 뭘 입 아프게 말을 걸고 귀를 열어 답을 들으려 하냐고, 눈을 맞추며 감정을 주고받으려고 애쓰느냐고,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아우성을 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같이 사는 남편에게서도, 어쩌다 뭘 물어보면 ‘검색해 봐’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나온다. 할 말이 줄어든다. 그냥 핸드폰 화면만 만지작거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다. 편리하긴 하다. 피차 아쉬운 소리 안 하고, 귀찮게 안 하고.. 깔끔하고 스마트하다.

굳이 서로 말 섞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매순간 튀어나온다. 가족여행을 가도 아이들은 한구석에 틀어박혀 핸드폰 하고 논다. 필요 이상의 대화, 그로 인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싫어한다고, 그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소통하고 싶은 소망에서 만들었다는 SNS로 우리는 정말 소통을 하고 있는 걸까?

마주하고, 바라보고, 소리 내어 나를 표현하고, 또 그렇게 타인을 알아채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피곤해서 우리는 SNS 뒤로 숨은 건 아닐까?

     

 이른 오후, 학교 근처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 보다. 초등 1학년이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인 듯했다. 작은 몸집의 아이는 록 신호등이 켜지자 오른팔을 꼿꼿이 들고 건널목을 건너다. 요즘도 저런 아이가 있나? 하며 나는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은 횡단보도 안전하게 건너기에 대하여 아이와 눈을 맞추고 신신당부했을 거다. 이는 선생님의 걱정과 당부를 떠올리며기 오른 손을 씩씩하게 들어올렸을 거고.

저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그녀의 블로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