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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늘 Oct 01. 2023

그녀의 블로그

 여러 차례의 수술과 치료 이후 나빠진 건강지표는 나에게 일터를 떠나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고민 끝에 퇴직을 결정하고 나는 한동안 허탈하고 무연한 느낌 속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우울해하는 나를 본 아들의 권유로 구청에서 운영하는 정보화 교육을 신청했다.


블로그 꾸미기에 대한 비대면 수업이었다. 하루

2시간씩 3주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수강 신청을 하고 필요한 교재 등을 준비했다. 수강 인은 25명, 꽤 많은 사람들이 강의 신청을 한 셈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도 무척 꼼꼼하고 친절하였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도 없지 않아서 빠지지 않고 출석하였다.




아이들의 정서 상태, 분위기, 이해의 정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진행해야 하는 학교에서의 비대면 수업과는 다르게 성인 대상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형태라서 일방적인 강의 형태 수업으로 진행해도 별 무리가 없는 듯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고 다른 관계로 엮일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굳이 얼굴을 서로 알릴 필요를 못 느끼는 듯 모두 카메라를 끈 상태에서 수업에

참여하였다.


프로그램을 이용한 다양한 사진 편집 방법, 클라우드 이용하기, 메뉴 글 관리하기, 카테고리, 레이아웃, 위젯 설정, QR코드 만들기, 블로그 배너 만들기 등 여러 기능을 배우는 동안 저걸 다 쓸까 싶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신청한 수강생들이 대부분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 보였고 그들을 배려한 듯 강사의 설명은 빠르지 않은 속도로 자세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첫 시간부터 무척 독특한 수강생이 한 사람 있었다. 항상 거의 혼자 카메라를 켜고 있었는데 카메라에 보이는 실물로 봐서는 대략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수강생이었다. 강사가 한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난 후 각자 해보라고 실습 시간을 5분 정도 주곤 했는데,

“자 이제 각자 아까 배운 것을 실습해 보세요.” 하고 말하면 어김없이

“선생님, 한 번만 더 설명해 주실 수 없을까요?” 하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다시 설명하기엔 설명해야 할 범위가 너무 많았다. 그래도 막무가내였다.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이해 안 되니 처음부터 재차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가벼운 긴장감을 느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예상 밖으로 강사는 군소리 없이 전체 내용을 다소 빠른 속도로 요약하며 설명을 다시 해주었다.

“선생님, 너무 빨라서 이해가 안 돼요.”

“아까 그 스킨 설정 부분에서 제가 원하는 디자인이 안 나오는데요?”

처음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다.

강사 두 번째는 다소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지만 거절하지 않고 반복하여 설명해 주었다.


매수업 시간마다 그녀는 초등학생처럼 너무도 씩씩하게 질문을 했다. 거의 매일 목표했던 진도를 못 나가고 계속 반복되는 강사의 설명을 우리는 본의 아니게 여러 번 듣게 되었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한 수강생이 채팅창에 의견을 올렸다.

“OOO님, 매시간 계속 다시 설명해 달라고 질문을 하시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다음 진도를 못 나가잖아요. 다른 사람 생각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와! 어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용감하게 대신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내심 통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정중하게 말한 듯했지만 핵심은 분명히 비난과 충고였다.

다른 수강생의 그 한 마디에 지원군을 만났다고 느꼈는지 강사는 그 이후 그녀가 질문할 때마다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무시할 것은 무시하면서 선택적으로 응하는 듯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소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로

“제가 컴맹이라서요.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순간 속으로 컴맹이라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공공연히 저리 밝힐까? 참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네, 하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도 그녀의 질문은 계속되었고 강사는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요구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반복해 주었다. 아마도 공공기관에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런 강의 진행의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나라면 가능하지 않을 훈련된 인내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고 마치 기관에서 다양한 민원인을 대하는 서비스 매뉴얼을 온전히 체득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강의 마지막 주가 다 되어가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잘 이해가 안 돼요. 다시 설명해 주세요.’ 하고 계속 그녀가 질문을 한 덕택에 우리는 강의 내용을 본의 아니게 여러 번 반복해서 듣게 되었고 실습을 더 많이 해보게 된 셈이었다. 사실 어려운 부분은 한 번 더 반복해서 듣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마이크 켜고 ‘저 선생님 질문 있어요.’라고 말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내가 모른다는 걸 밝히는 게 싫기도 하고 남 눈치도 보이고, 등등의 감정으로 그만 접어버리는 경우가 나에게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 덕분에 우리는 내용을 반복해서 듣고 여러 번 실습해 보면서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교육을 받은 셈인 것이었다.

     

 마지막 날 각자가 만든 자신의 블로그를 단체 대화방에 올려보라고 강사가 말했다. 놀랍게도 제일 먼저 완성된 자신의 블로그 주소를 올린 사람은 바로 질문을 매일 하던 그녀였다. 주소를 클릭하여 들어가 보았다. 의외였다. 분위기 있는 사진 편집, 디자인, 다양한 기능들을 모두 활용한 멋진 블로그가 나타났다. 기초 작업도 안되어있어서 볼품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블로그는 배운 모든 것을 활용하여 멋지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배움의 자세, 호기심, 그리고 용기... 이런 단어들이 떠 올랐다.

뭐, 저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이 강의를 신청했을까, 하면서 은근히 내가 느끼던 같잖은 우월감, 누군가에게 내 이 부끄러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갑자기 온몸에 열이 올라왔다.



 

그녀는 행복했으리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이 너무 커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남의 눈치 같은 것은 그녀의 안중에도 없었을 테니까.

사실 배움에 있어서 남의 시선 같은 것은 과감하게 우선순위를 뒤로 놓아도 되지 않을까?

그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용기일 것이고.

아, 용기, 우리에게 매 순간 필요한 것들은 그런 무구한 용기이지 않을까?

컴맹이라고 수줍게 말하던 그녀가 가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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