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죽음의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른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웠고, 무서웠다.
직접 죽어본 적이 없으니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으면 나의 세상은 끝나는 것이기에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내가 처음 겪은 죽음은 먼 친척의 죽음이었다.
난 부모님을 통해 그 사실을 들었고, 성함도 잘 모르는 친척이었기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차분했다. 마음이 안 좋기는 했지만, 그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과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난 생각보다 많이 슬프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한동안 누워서 울기만 하셨다. 걱정하는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씀하시며 계속 우셨다.
두 번째로 겪은 죽음은 우리 외할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나를 그 누구보다 사랑해 준 우리 할아버지였기에, 난 큰 좌절과 상실감을 경험했다. 엄마와 전화를 하실 때도, 병원에 큰 수술을 받으러 가기 직전에도, 임종을 앞두신 때에도 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르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도 멀리 있었기에, 늘 나를 먼저 생각하신 할아버지의 곁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키도 크고 말랐지만 근육이 많아서 덩치가 좋은 우리 할아버지였는데, 아픈 할아버지는 수분을 다 빼앗긴 나무처럼 앙상해져 있었다. 병마와 싸우는 것을 고통스러워하셔서, 할머니께 본인을 죽여달라고까지 하셨다고 한다. 몸이 더 안 좋아지실 때마다, 할아버지는 이럴 줄 알았으면 맛있는 것도 더 많이 먹고, 좋은 옷도 많이 사 입고, 좋은 데도 많이 다닐 것이라며 후회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결국, 나의 곁을,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분명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나, 죽음까지로 가는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에게는 마음속에 큰 구멍이 생긴 듯 그리움만 남기는 힘든 일이었다.
난 아직도 할아버지가 생각나고, 사무치게 그립다.
외갓집에 놀러 가면 날 보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 고추밭에서 농약을 뿌리시던 모습,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행복해하시던 모습, 경운기를 운전하시던 모습. 아직도 다 눈에 선하다.
가끔은 꿈에 찾아오시고, 사진과 영상으로 남아계시는 우리 할아버지. 죽음이 할아버지의 곁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난 예전보다는 죽음이 덜 두려운 것 같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내 곁을 떠난다면 나의 죽음은 그들의 곁으로 가는 일일테니 두려운 마음은 더 줄어들겠지.
그래도, 난 가까운 이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여전히 내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죽는다는 건 내가 고통스러운 것이고, 내가 죽는다는 건 타인이 힘든 일일 테니까.
하지만 죽음이 어디론가 온다면, 그 또한 그냥 받아들여야겠지. 그건 내가 어쩔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그래서 죽음이 두렵다. 난 준비가 안 됐는데, 당장 빼앗아가고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