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의 꿈

나도 누군가의 목표다

by 김청유

민들레가 지면 홀씨가 되고 그 홀씨들은 바람에 흩날려 땅에 박히고 또 예쁜 꽃이 피어난다. 바람에 몸을 맡겨 자유로이 날아다니다가 잠깐 쉬는 틈을 타서 낯선 땅에 고스란히 뿌리내리는 민들레, 노란 꽃이 피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지만 잠깐 눈 돌리는 사이에 꽃은 이미 지고 하얀 홀씨들로 변해있더라. 그 목적지가 어딘지 아무도 모르지만 결국에는 또 꽃을 피우더라.


누군가의 발자국에 밟히기도 하고 길가의 먼지 속에서 먼지인 척하기도 한다. 작고 초라하지만 생명력은 누구보다 끈질겨 보란 듯이 활짝 핀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런 사람 말이다. 누군가의 봄날은 잠깐 피었다가 사라지더라도 그 사람 마음 어딘가에 작은 씨앗 하나쯤은 남기고 싶었다. 얼마 전 과외를 하던 학생이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제 목표는 선생님처럼 되는 거예요! 진짜 열심히 할게요! 선생님은 제 자랑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에요."


이 말 한마디가 남긴 여운은 꽤 길었다. 나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내 지식을 나눔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작스레 칭찬을 들으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그저 홀씨가 되어 상대의 뇌에 지식이라는 뿌리를 내리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게 학생한테 부러움의 대상일 줄 꿈에도 몰랐다.


"에이~ 수강생님은 이미 열심히 하고 계세요! 꾸준히 하면 저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화려한 성취를 보여준 것도 아닌데 수강생에게는 이루고 싶었던 목표임에 매우 감사했다. 나 같은 홀씨도 뿌리를 내릴 수 있구나, 결코 그대로 영원히 바람과 함께 사라질 운명이 아님을 느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닮고 싶어서 롤모델을 정한다. 때로는 버킷리스트가 되어 실행에 옮기면서 목표와 더 가까워지기도 한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을 품듯 힘이 있고 끈기가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사회다. 민들레는 들에서도 피고 나무 밑에서도 피고 가끔은 인도의 비좁은 틈에서도 핀다. 똑같은 꽃이지만 그 자리가 어디냐에 따라서 인간도 결코 성공은 하지만 각자 다른 분야에서 빛을 내고 있다. 다시 바람에 실려 사라질 때 흔히들 끝이라고 표현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학생의 그 말 이후로 나는 내 하루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내 말투, 태도, 작은 선택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처럼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로 조금 더 단단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누군가의 목표가 된다는 것은 굳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흔들리면서 다시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눈보라와 비바람에도 꿋꿋한 소나무처럼,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도 꽃을 피우는 선인장처럼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노란 꽃의 일생은 짧지만 그 여운은 계절을 건너 이어진다. 그 무심한 여정은 누군가의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고 또 다른 봄을 만들어낸다. 나는 길잡이가 되어주기로 다짐했다. 그 문장이 나에게는 자부심이 아니라 다짐이 되고 오늘도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열심히 가르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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