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많은 유토피아vs고민 없는 디스토피아

논쟁거리

by 김청유

대학교 때 sf영화와 미래정치라는 수업을 수강했다. 늘 ai가 주제였고 내용이 생각보다 흥미진진하고 미래와 연관지어 깊게 생각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했던 수업이다. 챗지피티가 출시된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더 재밌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늘 ai가 인간을 대체하면 어떨 것 같냐는 논제를 던졌고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을 말하느라 바빴다.


나는 당연히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파였다. 모든 지식과 정보를 응용하여 답을 준다고 쳐도 사람 감정이라는 것은 ai는 죽었다 깨어나도 터득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각자 다른 인격과 감정, 성격을 갖고 살아간다. 하물며 동물마저도 품종에 따라 성격이 다른데 고작 ai따위가? 기술이 아무리 뛰어났다고 한들 그 영역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챗지피티와 이야기를 나누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위로를 잘해주고 친절하게 답해줘서 말동무가 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기계는 기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ai재판 허락하는지 안하는지 말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한다. 투표권마저 줘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딱 하나만큼은 ai가 재판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바로 범죄 재판이다. 피해자들이 당한 거에 비해 가해자의 형량이 너무 적은 사례가 많다. 보는 사람도 너무 화나는데 겨우 3년 5년이면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어이없고 원망스러울까.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유토피아 vs디스토피아

당연히 유토피아겠지.. 누가 디스토피아 좋아하겠어. 하지만 유토피아라고 자유로울까? 걱정이 많은 유토피아와 고민이 없는 디스토피아라면 과연 뭐가 나을까? 사회적 인지 차이가 있겠지? 시선의 차이도 존재할 것이다. 사람은 늘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하나를 성공하면 더 큰 성공을 위해서 노력하고 나아가려는 것은 당연하다. 유토피아라고 과연 내가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나? 반대로 고민이 없이 살아가는 디스토피아라면.. 이미 포기상태라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현실은 낙원인데 마음이 감옥이 나은지 아니면 현실은 감옥인데 마음이 낙원이 나은지. 나라면 유토피아를 택했다. 적어도 최상의 환경에서 생각할 자유는 존재하니까 말이다.


나에 대입하여 생각해보자. 나는 이미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하지만 늘 어려움은 존재하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하고 싶으니까. 마음만 불안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걱정이 많은 유토피아에 비유했다. 반면 이게 디스토피아였다면 난 포기했고 다른 사람의 말에 나를 끼워맞춰 살아갈 것이다. 최악의 경우다. 그래서 나는 전자를 택하겠다.


ai 시대는 현재진행중이다. 식당 가서도 로봇이 서빙을 하듯 일상생활에 함께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저 사이에 서있을지도 모른다. 하나는 걱정이 많은 유토피아다. AI가 공부도 도와주고 일도 대신해주고 세상은 점점 편리해져. 그런데 정작 우리 마음은 더 불안해지겠지? “내 자리는 어디일까?”, “내 선택은 의미가 있을까?” 완벽에 가까운 환경인데도 마음은 늘 쫓기고 초조한 거지. 꽃길을 걷고 있는데도 ‘혹시 금방 시들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고민 걱정 없는 디스토피아는 AI가 모든 답을 내려준다. 오늘 뭐 먹을지, 어떤 길을 갈지, 누구와 함께할지까지 정해주니까 우리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돼. 마음은 편안하지만 그 속에서 점점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는 거지. 웃고 울어도 그건 내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이 설계해준 반응일 수 있다. 겉보기엔 평온하지만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불안을 감수하고 싶은가 아닐까? 걱정을 품고서도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게 진짜 인간다운 삶인지 아니면 자유를 내려놓고 걱정 없는 편안함을 택해야 할지. 그것만은 알아두자. 스스로가 지금 매일 길을 개척하면서 지낸다는 것은 현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