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비겁한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항상 의문이다. 왜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비겁할까? 그리고 그 비겁한 사람들이 아이들을 교육하고 가르치려고 하니까 더 비겁한 인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나이를 먹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화가 나지만 심지어 자신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는 사회가 얼마나 답이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겪어봤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과 나이가 비슷한 사장님이 나의 시급을 통보하듯이 깎은 적이 있다. 솔직하게 자기 소득이 깎이면 어느 사람이 좋다고 동의할까? 가서 이유를 말해달라고 용기 내어서 말했더니 비겁하게 대답을 회피했다.
이래서 부모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셨나보다. 사람은 비겁하게 살지 말라고.. 정말 비겁한 사람은 없어보이고 초라해보였다. 자신도 그런 모습을 알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나잇값을 못하는 부류가 비겁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늘 자신의 연륜을 강조해서 얘기하면서 막상 큰 책임을 지게 될 상황에서는 연기처럼 사라져서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상황이 끝나고 나면 슬쩍 나와서 잘 마쳤냐고 물어본다. 그런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잘 유지되고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잠깐의 비겁함은 순간적인 안정을 제공할 수 있지만 그 후폭풍은 클 것이다. 우선 자신의 체면부터 깎이게 되고 사회적 인지도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두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현명하게 나만의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남탓으로 돌려서 비겁하게 잠깐의 두려움을 떨칠 것인가? 다 큰 성인이면 알아서 판단하여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숨고 싶은 사람들만 많은 것 같다.
비겁함을 스스로 극복하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작은 용기부터 내보는 것도 좋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용기를 보인다면 사람들은 용서를 할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차근차근 시도하면 언젠가는 다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쉬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서 문제다. 비겁함을 더 큰 비겁함으로 누르지 말고 차라리 작은 용기라도 내어본다면 명예는 금방 회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