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의 본질은'편안함'이다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낯선 도시, 처음 해보는 직장생활, 빠듯한 형편 속에서 하루를 마치면 늘 녹초가 되었다.
사회는 살얼음판 같았고, 집은 쉼보다는 피로를 풀기 위한 잠깐의 피난처에 가까웠다.
나는 6년 가까이 고시원에서 지냈다.
고시원 생활이 편하거나 즐거웠을 리는 없다.
좁은 방, 얇은 벽, 늘 먹먹한 공기 속에서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 필요한 과정이었다.
내가 살던 고시원 건물 1층에는 김밥집이 두 곳 있었다.
산 근처의 매장이라 그런지 저녁보다는 낮에 손님이 더 많았고
저녁이면 피곤한 직장인들이 하나둘 들어가던 가게들이었다.
나에게도 역시 하루의 마지막 끼니를 해결하는 공간, 나에게는 작은 위로의 자리였다.
첫 번째 김밥집 사장님은 언제나 밝고 살갑게 맞이해 주셨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 무슨 일을 이렇게 시키나~”
말을 건네며 웃어주셨고, 가끔은 직접 만든 반찬을 서비스로 내주시기도 했다.
좁은 매장은 종종 합석을 불렀는데, 사장님의 너스레로 시작된 대화는 언제나 웃음으로 끝났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반면 두 번째 김밥집은 조금 달랐다.
사장님은 특별히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주문을 받으면 묵묵히 음식을 내어주고, 손님이 없을 때는 늘 테이블을 닦거나 매장을 정리했다.
대화를 많이 이어나갔던 기억이 거의 없는 조용한 분위기가 특징이었다.
어느 날 큰 행사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첫 번째 가게에 들르자 사장님은 평소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네셨다.
하지만 그날 나는 너무 지쳐 대화를 이어갈 힘이 없었다.
“순두부 하나 주세요.” 그 짧은 대답조차 힘겨웠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일상적인 대화는 이어졌고
사람 사는 느낌은 있었지만 오히려 피로가 더 크게 밀려왔다.
다음 날은 첫 번째 가게가 어떤 이유에서 인지 문이 닫혀 있었다.
종종 있는 일이어서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생각보다 빨리 한 끼를 해결하고 쉬러 가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걸어 두 번째 가게로 갔다.
홀에는 나 혼자였고, 사장님은 짧은 인사와 함께 묵묵히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질감이 들었다.
“아무 말도 없는데… 왜 이렇게 편안하지?”
식사를 마치고 김밥 한 줄을 포장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장님은 짧게 말씀하셨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상투적인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5년 가까이 두 번째 김밥집만 찾게 되었다.
내가 그 집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편안함 때문이었다.
서비스를 말할 때 흔히 ‘친절’과 ‘소통’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고객이 꼭 그것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불필요한 말보다 묵묵한 기다림이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뭔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와 의견이 맞지 않아 일이 틀어졌을 때
뭔가 재촉하거나 다그치기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주고
그 당사자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편안함을 주었을 때
그 사람과의 관계가 빠르지는 않지만
조금씩 가까워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고객의 만족은 내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고객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는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었는가,
그 순간을 통해 쉼을 얻었는가에 달려 있다.
나는 작은 김밥집에서 그 사실을 배웠다.
서비스의 본질은 고객을 향한 나의 노력이 아니라,
고객이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지켜주는 것이다.
편안함이야말로 어떤 친절보다 오래 남는 서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