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정답, 여기 있다.

4. 모르고 있었던 컬러의 힘

by lcheRoy

15년 전에 유럽 여행을 하던 중 독일과 프랑스의 건축물과 색채를 보고 나서 나의 마음은 경탄 그 자체였었다. 어떻게 이러한 장식을 건축으로, 색감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수업시간에 고딕 양식이니, 바로크 양식이니, 로코코 양식이니 하면서 배웠던 것들을 실물로 접하니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벽돌과 돌, 그림의 색이나 카펫들은 그곳을 표현하고 있었다. 독일의 쾰른 대성당의 뾰족한 탑은 하늘로 향하고 싶을 만큼의 종교적인 열망을 가지게 하였고, 상수시 궁은 궁전 앞의 포도밭길 정원이 장관이었지만, 고급스럽고 섬세하고 화려한 궁의 모습이 더 장관이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내 거울의 방은 우아함과 화려함의 끝판왕을 보여주었다. 내가 마치 마리 앙투아네트가 된 기분이었다. 위엄을 갖춘 건축의 장식과 뿜어내는 색채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그 나라를 대표하였다. 그리고 하나 더 느낀 것은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유럽 건축물들의 창문이 유독 작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유럽은 강수량이 굉장히 높은 지역이고 돌을 이용해 지어진 건물이 많은 유럽은 돌과 돌 사이 공간을 크게 벌리는 창문이 많고 클수록 붕괴의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창문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가로는 짧고 세로로 길게 늘어선 유럽식 창문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리고 유럽은 내부에서 외부를 보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았기에 외관을 더욱 화려하게 치장하였다. 거기에다가 창문의 개수와 크기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던 나라가 여럿 있어서 세금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썰도 있었다. 한국은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것을 중요시 한 반면에 유럽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 또한 유럽 건축양식의 시그니처가 되었던 것이다.

고딕 양식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작은 창문들의 집

겉보기에는 비슷비슷해 보이겠지만, 자세히 보면 건물이 뾰족하면 고딕, 역동적이고 화려한 조각상을 건물의 전면이나 곳곳에 장식해 두었으면 바로크,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문양과 장식은 로코코의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로코코는 바로크 양식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양식을 원했던 부르주아들의 영향으로 건물보다는 실내장식에서 더 빛을 발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로코코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방식이 나는 좋았다.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하였고, 그로부터 10년 후 나는 나만의 양식으로 공간을 만들었다.

분홍과 파랑을 바탕으로 아트월을 만든 내방과 녹색과 노랑과 회색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커피숍 같은 주방을 만들었다.

한눈에 봐도 알다시피, 화려하고 원색적인 컬러가 뚜렷하지만 서로가 조화를 이루게 설정하였다. 파랑은 두뇌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지성에 영향을 미친다. 거기에 밝고 채도가 낮은 파랑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분홍 역시 신체를 안정시키고 마음을 위로해준다. 노랑은 진하고 선명할수록 감정적 효과가 커지고, 초록은 선명할수록 우리의 균형을 잘 잡아주고 원기 회복에 많은 도움을 준다. 컬러를 조합하는 것만으로 내 안의 긍정적인 감정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만의 공간에서 만큼은 평온한 휴식을 보내고 로맨틱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선택한 컬러들이 나에게 행복의 문을 열어준 것 같아서 더욱 좋았다. 나는 이러한 컬러들을 이용해 명예와 성공을 기념하고, 안전을 수호하며, 행운과 장수, 번영과 다산, 사랑과 행복을 기원하였다. 컬러는 우리 주위에 언제나 존재하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의상 스타일링할 때, 요리를 해서 접시 데코레이션 할 때, 소파 정리를 할 때 쿠션의 컬러와 위치를 정할 때, 하물며 자동차며 폰까지도 컬러의 정의가 개입되었다. 나에게 컬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친구들 사이에서 빨간색 립스틱과 화려한 스타일은 나만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남들이 하면 이상한 조합이 나에게는 어울리는 것이었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모든 색은 각자 신비로운 삶을 산다"라고 말했다.

나는 컬러 활용법을 빨리 터득하였고, 확실히 컬러가 나의 삶과 감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였다. 컬러에 대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양한 컬러들이 좋았다.

예전에 읽었던 책 내용 중에 지금 우리가 빛과 색에 대해 아는 사실들은 대부분 아이작 뉴턴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뉴턴은 무지개의 수수께끼를 풀었고, 원색인 빨강, 노랑, 파랑의 맞은편에 각각의 보색을 배치해 색채 대비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이런 것을 몰랐을 때도 나는 파랑은 더 파랗게 보이고 주황은 훨씬 진한 주황으로 보일 수 있도록 컬러 조합을 배치하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컬러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가 남들과는 좀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수면 아래 무의식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인간 행동의 동기가 되는 것이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컬러의 힘이 나의 정신영역에도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언젠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다. 앤 해서웨이가 똑같은 파란색을 두고 옥신각신 하는 메릴 스트립과 그의 직원들을 보고 비웃자, 메릴 스트립이 파란색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컬러명으로 불러진다는 것을 설명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이 말했다. "왜 같은 색깔의 립스틱만 자꾸 사냐고" 나는 말했다. "같은 하늘 아래에 똑같은 레드 컬러는 없다고. 미묘하지만 다 자기만의 컬러가 있다고." 앤 해서웨이가 봤을 때는 그냥 파란색일 수 도 있다. 짙은 파랑 정도로 부를 수도 있지만, 컬러를 아는 사람이라면 로열블루, 코발트블루, 페리 윙클 블루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컬러를 완전히 다르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 왠지 지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어떻게 그런 컬러명을 창출해 내는지 말이다. 영어에는 기본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11개 있다. 빨강, 분홍, 노랑, 주황, 갈색, 파랑, 초록, 보라 , 회색, 흰색, 검정. 영어에서는 빨강과 분홍을 구별하는 것처럼 러시아와 그리스에서는 밝은 파랑과 어두운 파랑을 구별하고, 헝가리어에서는 어두운 빨강과 밝은 빨강을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있다. 그리고 파랑을 묘사하는 단어가 따로 없어서 한 단어로 파랑과 초록을 동시에 지칭하는 나라가 많다. 베트남어에서 초록을 가리키는 단어는 하늘 색깔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고, 일본어에서는 신호등의 초록색 불을 '파랑'이라고 묘사한다. 오렌지라는 과일이 영국에 수입되기 전까지는 영어에 '주황'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었다. 그냥 황적색이었다. 서구에서는 흰색은 순수의 상징으로, 전통적으로 결혼식장의 신부들이 자신의 순결을 표현하기 위해 입는 옷의 컬러였다. 반면 중국이나 인도 등 몇몇 아시아 국가들에서 흰색은 죽음과 애도, 슬픔을 상징하며 전통적을 장례식장에서 입는 옷의 컬러였다. 서구에서 검정은 사별과 애도의 상징으로, 스페인에서 신부가 마지막 순간까지 신랑에게 충실하겠다는 약속의 의미이기도 하고, 아프리카에서는 경험과 지혜의 상징이다. 일본에서 검정은 신비와 밤의 색이다. 검정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분노를 상징한다. 인도에서는 악귀의 눈을 피한다는 의미로 갓 태어난 아기의 얼굴에 검은 점을 그려 넣는다. 그 외에도 서구에서는 빨강은 정열과 욕망의 상징, 초록은 자연의 색으로 환경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 파랑은 슬픔이나 우울한 기분을 상징, 보라는 의리의 상징, 갈색은 대지의 색으로 출산과 자연, 온전함을 상징, 회색은 노년, 둔함, 따분함, 감정의 결핍을 상징한다. 이렇게 컬러들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반영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우스운 얘기를 한다면 미국의 어느 백화점에서 여자아이들에게는 분홍, 남자아이들에게는 파랑을 입히자는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그것이 통념으로 고정되어 의류 제조업체에서 모든 옷을 두 가지 색으로만 제작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여자아이는 분홍, 남자아이는 파랑으로 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컬러를 필요로 한다.

인간은 1,700만 개의 컬러를 구별할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감지하는 것은 초록, 빨강, 파랑의 빛이라고 한다. 인간의 눈에는 적은 빛에 민감한 간상체와 많은 빛과 우리의 색채 지각을 처리하는 추상체로 나뉜다. 개의 눈에는 추상체가 2가지 종류밖에 없어서 컬러를 인식하지 못한다. 반면에 인간은 추상체를 하나 더 가진 덕분에 수백만 가지 색을 더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이라는 종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러 가지 색의 옷을 선택해 입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다양하게 원하는 색으로 내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바꿀 줄 아는 유일한 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도와주고 지지하며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드는 컬러의 힘을 언제나 무시하고 지낸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경험하고 있겠지만, 사실 나에게 어울리는 컬러가 어떤 색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컬러를 잘못 골라서 창피를 당할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 유행은 돌고 돈 다지만, 유행의 끝없는 물결 속에서 우리의 직관은 흐려지고 있다. 또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트렌드를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컬러마다 의미가 있고 감정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나를 꾸미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컬러와 싫어하는 컬러를 탐색하여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사실들을 새롭게 발견하여 발전한다면 무궁무진한 컬러의 힘을 입게 될 것이다. 지금껏 적어내려온 건축물 양식, 인테리어, 컬러의 정의, 스타일등 다채로운 방식과 표현은 그것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컬러를 생각하고 사랑하면 컬러도 나 자신을 사랑하여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Written by lche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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