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낮의 우울
9월, 어느덧 가을이 다가왔다. 아직까지 낮에는 덥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절적으로는 가을로 접었다. 가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 사이로 쓸쓸한 뒷모습이 왠지 상상되는 계절이다. 여기에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나타나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봄 타는 사람, 가을 타는 사람은 유독 있는 것 같다. 일부 사람들이 계절의 변화를 단순한 시간의 흐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 자신이 처한 특수한 상황이 곁들여지면 우울증을 앓는 것 같다. 보통 병원을 내원하면 의사 선생님들의 단골 멘트들이 있다. 운동하라, 명상을 하라, 일기를 써라 등등. 운동을 하면 엔도르핀이 잘 분비되고 명상을 하면 우울증의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일기를 쓰면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어 우울증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나고 나서 읽어보면 자신감을 살리고 장기적인 시선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다고 하니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듯한 것 같았다.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뇌 영역의 손상이 불면증이라면, 스트레스와 정서를 조절하는 뇌 기능의 저하가 우울증이라고 하였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할 정도로 흔한 정신질환이라고 하였다. 문제는 일반 감기는 약 먹고 푹 쉬면은 낫는 거지만, 마음의 감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동반하며 극단적인 선택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자신감, 자존감이 급격히 떨어지고 모든 사고를 비관적, 부정적으로 하게 되며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으로 자책감이 많다고 하였다. 나 역시도 밤에 잠을 잘 못 이룰 때도 있고 기분이 우울하고 비관적일 때가 있고 하루 종일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을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짜증 나기도 하고 갑갑해서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우울함 자체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증상인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특정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느끼는 것이라 크게 우리는 동요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증상들이 거의 매일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전반적으로 정신적인 기능들이 모두 떨어진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분 전환 정도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단계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의 뇌는 모든 기관을 컨트롤하는 영역이다. 우울증의 원인 역시 뇌에서 오는 결과로 스트레스와 정서를 조절하는 기관과 긍정적인 정서, 에너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호르몬과 연관되어있었다. 이것은 비단, 우울증 뿐만이 아니라 불면증, 만성피로까지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작 이후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과 불안증의 발생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한국의 경우 10명 중 약 4명이 우울증 또는 우울감을 겪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뉴스에서도 우리나라의 지난해 우울증 유병률은 36.8%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다고 보도하였다. 미국이 23.5%, 영국이 19.2%, 이탈리아가 17.3%, 일본이 17.3% 등 우리나라의 수준에는 미치지 않았다. 대한 신경과학회는 우리나라의 우울증 유병률이 세계 최고임에도 치료 접근성은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하였다. 왜냐면 우리나라는 2002년 3월 정부가 고시한 SSRI 항우울제의 60일 처방 제한 규제 때문이었다. 이 규제로 우울증 치료에 적신호가 나타난 것이었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헝가리, 호주 등 외국은 1990년 이후 안전한 SSRI 항우울제의 사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자살률이 50% 이상 감소하였다고 했다. 자살의 주요 원인인 우울증의 치료율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내가 읽게 된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진에 보이듯이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이라는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이다. 전체 페이지가 1026페이지, 주석을 붙여서 부연 설명한 것과 참고문헌만 179페이지에 달한다. 이렇게까지 우울증에 관한 내용을 길게 읽을 줄은 몰랐다. 책의 두께를 보면 한숨부터 쉬겠지만, 막상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읽어졌다. 나는 공감이 가는 부분은 연필로 줄을 그어가면서 그 부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시하였다. 작가는 5년간 이 책을 집필하였는데, 우울증 환자들의 투병기를 본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그렇다고 작가가 의사이거나 심리학자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었다. 우울증에 대한 치료의 대용물이 아니라 지극히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하고 표현한 것이었다. 우울증에 대해 쓰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고 슬프고 쓸쓸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일일 것 같았다. 작가 자체도 우울증 경험을 토대로 먼저 표현하고 그다음에 타인들의 우울증에 대해 표현하였기 때문이었다.
우울증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현재의 상태가 영원할 것처럼 느끼기 쉬울 것이다. 우울증은 계절과도 같아서 겨울을 나듯 거듭해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울증을 겪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따금 찾아오는 악마를 맞이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닿았던 페이지는 산후우울증을 겪은 환자였다. 나는 산후우울증을 겪은 적 있었다. 출산 경험은 없지만 조카를 키우면서 잘 돌봐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부터 시작해서 하늘만 쳐다봐도 눈물이 흐르고 우울한 기분으로 슬퍼졌다가 웃겼다가를 반복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는 내 모습을 보니, '아, 이게 우울증이라는 거구나!' 싶었다.
산후우울증은 다른 형태의 우울증들과 유사하지만 전문가들은 산후우울증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믿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유는 산후우울증은 어머니 노릇의 현실적인 어려움들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고 아기를 낳으면 거의 완전한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는 보편적인 기대감에 미치지 못할 때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실망감의 반영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형태의 우울증도 마찬가지지만 산후우울증에 대해 이해하려면 순간적인 호르몬의 영향도 인정해야겠지만, 어머니의 사회적 체험에 대해서도 헤아리고 그런 체험이 어머니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모가 남편, 가족, 사회와의 관계가 변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에 주목해야 했다. 아이는 혼자서 낳는 게 아니다! 배우자, 가족, 사회의 지원 부족은 산후우울증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나도 육아를 담당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고충도 자녀 양육 경험의 부족이었고, 힘이 되는 친구의 결여였다. 하지만 육아를 하는 친구들과의 소통을 하면서 동지애를 느끼게 되면서 나만의 불행이 아니라 내 주변에도 아주 흔한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완화되었던 것 같았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겪고 나면 시간이 흘러 나도 어느 정도 육아의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이 나타나며 나만의 시간도 중간중간 만들 수 있었다. 능숙함이 자신감을 낳듯 자신감이 능숙함을 낳는 것이었다. 책에서는 대부분의 우울증이 본질적으로 사적인 데 반해, 산후우울증은 암암리에 타인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공적이다고 하였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끼고 분노로 이성을 잃을 때도 있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다른 시기들에서는 남녀 간이든 가족 간이든 서로 주고받는 사랑을 할 수 있지만, 나 같은 경우 집에 조카와 둘이 있을 때 나의 일방적인 사랑만 조카에게 줄 뿐 혼자 있을 때 보다 더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차라리 혼자 있으면 TV를 보거나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조카와 둘이 있으면 조카가 분유 먹고 나면 트림 나오게 등을 쓰다듬어 주거나 똥 싼 기저귀 갈아주고 조카와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며 놀아주며 재우는 마치 하나의 임무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 때는 부담스러운 의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수한 의무들이 나에는 추억이고,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지금은 초등학생이 된 조카가 나보다 더 많은 사랑을 나에게 주고 있다는 것에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우울증은 벼랑 끝으로 바싹 끌어당겨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에 공포에 젖어 현기증으로 균형 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사람들도 만나고 하니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진짜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일 것 같았다. 정신이 건강한 상태에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며 활기찬 목적의식을 가진다. 사랑은 이따금 우리를 저버리며 우리도 사랑을 저버리기도 한다. 우울증에 빠지면 모든 활동, 모든 감정, 나아가 인생 자체의 무의미함이 자명해진다. 사랑 없는 상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감정은 무의미함이다. 우울증은 생기를 빼앗고 하루하루를 뿌연 안개로 덮고 일상적인 행동들을 힘겹게 만든다. 우리를 피곤하고 지치고 망상에 시달리게 하기도 한다. 우울증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사랑, 일,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기대했던 것보다 기쁨은 훨씬 덜 기쁘게, 고통은 훨씬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 배가 똑바로 나아가려면 바닥짐을 실어야 하듯, 우리에게는 늘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이나 결핍이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이 우울증을 유발하는지 모른다. 우울증을 안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느낀 건, 슬픔뿐 아니라 사랑에도 우울증이 있다고 느껴졌다. 모든 감정들이 따로 노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슬픔이 있으면 기쁨도 있고 사랑이 있으면 고통도 있는 법이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처럼 사랑 속에도 고통의 자리가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우울증이 찾아오는 이상, 외로움에는 친절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울증은 하루아침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 저...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도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글귀로 표현하고 있었다.
'겨울이 그러하듯, 여름도 다시 오게 마련이다. 나는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을 때조차도 좋아진 때를 상상하는 법을 배웠고, 그 소중한 능력은 악마적인 어둠 속을 한낮의 햇살처럼 파고든다.'
Written by lcheR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