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강아지 쥴리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다.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쥴리와 난 늘 대화를 했다. 엄밀히 말하면 쥴리는 눈빛으로만 이야기 했다. 그 눈빛이 내 뇌와 감성이 일러주는 대로 해석해왔던 거다. 속눈썹이 긴 우리 쥴리를 보면 사람들은 “강아지도 눈섭을 붙이나 봐요?” 하고 놀라곤 했다. 공주 같이 예뻤던 우리 쥴리는 산책나가 같은 개를 보면 짖지 않았다. 마치 자기가 사람 인 양 인식하는 듯 했다. 실크처럼 윤기가 촤르르 흐르는 화이트 실버 털을 가진 완전 토종 미니어처 슈나우저 였다.
쥴리가 우리 집에 온 건 정말 운명과도 같았다. 어릴 적 치와와를 키워 동물에 친화적인 나와는 달리 남편은 “자고로 동물은 밖에서 지내야지. 집에 가둬 키우는 건 동물 학대야.”라고 말 할 정도였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아이는 방과 후에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를 매일 보고서야 집에 들어왔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날마다 졸랐다. 일단 우리는 미래에 키울 강아지 이름을 미리 짓기 시작했다. “라면? 땅콩? 두부? 앵두? 딱지?” 이름을 지어보는 일만으로도 즐거움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 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혹시 강아지 한 마리 안 키우실래요? 태리가 매일 우리 집 강아지를 보러 오던데... 강아지를 주겠다는 분이 있어요” 무조건 대답은 예스였다. 남편의 반대를 의식해서 조금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날 때쯤 결혼기념일 날이었다. 남편과 소소한 말다툼이 있었다. 저녁을 먹자는 남편의 전화에 삐진 마음을 풀지 못하고 싫다는 답을 하고 통화를 끝냈다. 몇 분 후 강아지 주인이 “오늘 강아지를 데려갈 수 있으실까요? 미용도 다 마쳤어요..” 그 순간 가슴은 막 뛰었고 마치 자식이라도 입양하려는 어미 마음처럼 느껴졌다.
바로 남편에게 저녁을 먹자고 전화를 했다. 기분 좋은 틈을 타서 무조건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고 했다. 그날 밤 집에 입성한 쥴리는 작은 방에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얌전했다. 남편도 조용하고 순한 강아지를 궁금해하는 듯 보였다. 쥴리는 그 이후로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답답해할까 봐 주말이면 산책을 시켜주었다. 미용까지 직접 해 줄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다.
아무 탈 없이 13년을 건강하게 지내던 줄리의 청력이 안 좋아지고 탈골된 다리에 계속 염증이 생겼다. 결국 우리 쥴리는 투병 기간 길지 않게 아픔 없는 세상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오늘도 나는 쥴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엄마 저 이 동네에서 아프지도 않고 잘 지내고 있어요. 그동안 많이 아껴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닮아 여기에서 인기가 아주 많아요. 아빠 엄마 오빠 언니 아무 일 없이 잘 되도록 기도할게요. 사랑해요.”
“쥴리야! 엄마도 사랑해...”
정말 운명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