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논픽션 사이)
비 오는 아침, 테이블 4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카페 안. 너는 책을 읽고 있다. 존 필드의 피아노 협주곡, 녹턴이 평화롭게 흐른다. 너만을 위한 장소라 생각했다. 친구로 보이는 중년 남자 둘이 시끄럽게 떠들며 들어오기 전까지는.
어느 자리에 앉았어도 그들의 대화는 공간을 울리고도 남았겠지만 바로 옆에서 작정이라도 한 듯 독서를 방해했다.
너의 눈은 책의 글자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지만, 귀는 그들의 얘기를 다 듣고 있었다. 아니 그냥 무방비로 담겼다.
“너 요즘 사업은 잘 굴러가냐?” “늘 전쟁이지 뭐. 너는 어때?”
독서는 불가능하겠구나 싶어 자리를 뜨려는 순간,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다. 엿듣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보는 척하면 들킬 염려도 없으니까.
“너 나랑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가족 얘기는 전혀 안 하네? 네 인생은 온통 일 밖에 없는 거냐?”
키 크고 마른 남자가 코를 연신 비비고 있는 친구에게 따지 듯 물었다.
멍하니 앉아 있던 남자가 꼰 다리를 풀며 들고 있던 컵을 탁자 위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야 니 본캐는 가족이지만 내 본캐는 사업이야. 가족은 그저 본캐 옆에 붙어있는 내 혹이야 혹!”
너의 귀에 들어온 ‘혹’이라는 단어가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다.
‘남자가 왜 가족을 혹이라 표현했을까?’
어쩐 일인지 그들은 침묵을 이어 가다 자리를 뜨고 말았다. 소음으로 조각난 고요는 다시 자리를 찾았지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이란 부딪혀서 불룩 튀어나온 것이나 곪아 생긴 종기를 말하지 않나?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족을 혹이라 표현한 남자가 연신 비비던 콧잔등에 난 붉은 뾰루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가족이 혹이 되어버린 남자, 이 남자의 삶이 왜 한 편의 소설이 되어 그려지는 걸까?
누가 만든 혹인 지는 알 길이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자라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이 혹!
곪을 때까지 곪아야 터지지 않나?
너는 다음 날 같은 시간대에 다시 카페에 앉아 있다. 뾰루지의 주인공, 아니 혹의 주인공이 들어왔다. 이번엔 혼자였다. 너의 시선은 그의 코에 가 있었다. 벌겋게 부어있었다. 더 뿔이 난 채로.
‘아! 터트리지 못했구나!’
터지지 않을 만큼만 괜찮은 척 놔두면 성이 난 채 딱딱하게 굳어 아픔을 계속 호소하고 만다. 그때그때 터트려야 새 살이 돋아난다.
‘이름 모를 남자여! 어쩌면 가족을 향한 불편한 그대의 마음이 분출되어 생긴 뾰루지부터 과감하게 터트려보는 건 어떨지?’
너는 남자의 쓸쓸함을 뒤로하고 카페를 나온다. 검지로 콧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