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보톡스

by 헬로하이디



거울 앞에 섰다. 이마 중앙, 눈 밑, 입가에도 실 줄이 보인다. 미소 주름과 애교 살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카페에 앉은 여자 넷, 끝을 모르고 수다 발을 올린 지 3시간째다. 서로의 근황이라는 큰 주제가 일파만파 장르를 잃은 지 오래다.


중학교 동창들은 2달에 한 번 맛집이라는 맛집은 다 검색해 찾아가 과식을 하고도 빵 배는 따로 있다며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로 이동하는 의식을 치른다.


넷이서 순서를 지키듯 돌아가며 피치를 올려 얘기하고 맞장구치다 깔깔거리고 웃는다. 교복만 입혀놓으면 딱 여중생들.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여럿이서 모이면 주로 듣기에 바쁜 나. 누구든 둘만 있을 때라야 속 마음을 차분히 나누는 편이다. 이 습관이 다른 친구들에겐 편하게 다가올지 부담으로 느껴질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나는 듣는다.


한 친구가 유독 많아진 주름 이야기를 꺼냈고 급기야 보톡스를 단체로 가서 맞아보자는 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손 빠른 친구가 유명한 병원을 검색했고 예약까지 마치는 일사불란한 상황. 막을 길이 없었다.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다. 예약한 날을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든 못 하겠다는 구실을 생각해 내느라 밤잠까지 설쳐야 했다. 친구들은 이런 사태를 막으려는 듯 빠지는 사람이 비용을 다 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룰을 정해놓은 상태였다.


언제 ‘보톡스’라는 시술을 처음 들어봤을까? 비용도 많이 들었던 시절에 비해 여러모로 대중적이 되어 있었지만 내겐 그저 약간의 호기심만 있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거울 속 주름도 아름다운 인생 지도라고 생각한 이 라테 여인이 이제 환골탈태해 팽팽하게 어려지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 걸까?


병원은 정말 바글바글 붐볐다.


시니어 세대가 많을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20-3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로 가득했다.

강한 플래시 불빛이 설치된 상자 안에 얼굴을 넣고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당연히 눈이 부셔 인상을 찌푸리게 되어 숨어있던 잔주름까지 다 드러났다.


“주름이 막 생기기 시작한 곳에 미리 맞아야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조목조목 빈틈없이 시술이 필요한 부위를 찾아내는 주름 하나 찾아볼 수 없이 반짝거리는 상담사의 말에 여지없이 우리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 앞에서 충격받아 멘털이 나간 듯 그저 멍한 상태로 조용했다.


결국 일제히 두 세트씩 8군데에 투여하는 걸로 견적을 냈다.


시술 중 의사가 내는 “따끔따끔” 소리와 함께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마다 날카로운 고통과 싸워야 했다.


중간에 멈춰달라고 말할 뻔했다는 친구부터 긴장으로 뭉친 목과 어깨에 통증이 느껴진다는 친구, 젊어진다는데 그 정도도 못 참냐는 친구까지 반응이 다양했다.


친구들 중 눈이 가장 큰 희숙이는 기대가 많이 된다며 손거울을 꺼내 연신 얼굴을 비추고 또 비춰보았다.

효과는 1주일 후부터 나타난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자고 일어나 보니 눈두덩이가 부어올랐고 이마는 파리가 낙상하도록 번들번들 광이 났다.


‘아 이래서 다들 보톡스라는 걸 하는구나!’


문제는 희숙이었다.

“야 나 미치겠어. 내 눈이 왜 이래? 한쪽은 안 움직여. 오른쪽 눈만 희번덕이야. 딸이 여자 조폭 같대.”


희숙이를 제외한 친구들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하필 희숙이에게 부작용 1순위 증상이 생긴 거였다.


시술 후 효과가 고작 3개월 밖에 안되냐고 투덜댔던 희숙이가 하루 종일 사우나와 찜질방에서 땀을 빼며 마비된 근육을 푸는데 여념이 없게 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보톡스

일종의 페이크란다. 이마 맨 위부터 신경을 마비시키는 약물이 들어가 아래로 퍼져 내려오면서 굳힌다. 인상을 쓰거나 미소를 지을 때 반복적으로 움직여 생긴 근육이 평평하게 시멘트 처리 되었으니 마치 주름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되는 현상이다. 이런 상태를 지속하면 언젠가는 실주름까지 없어진다는 시술이었다.

내 마음도 보톡스로 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게 맞는 성분을 적당한 양만 머릿속 생각 탱크에 투여해 표정을 지나 가슴까지 내려와 고이면 단단해지고 주글주글 안 이쁜 마음도 반들반들해질까?


효과가 사라지면 투여하고 다시 또 투여하고를 반복해 펴가면서 살고 싶다. 과한 투입으로 오히려 사납게 되는 부작용에 유의하면서.


열심히 웃고 지내도 피해 갈 수 없는 얼굴에 난 주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엄습이 만들어낸 마음 주름도 따끔따끔 아프지만 보수해 가며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아! 우리 내성도 없고 효과 빠른 부작용 제로인 마음 보톡스 한 방씩은 어때? 남이 놔주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무한 투여도 가능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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