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웃는 사진 속 세상
보통 사람들은 하루 중 거울을 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나는 수시로 거울 앞에 선다. 어릴 적부터 내 방 옷장엔 전신 거울이 붙어 있었다. 거울 속 내 얼굴, 표정 등을 수도 없이 관찰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렇게 해 온 덕분이었을까? 사진기만 들이대면 자동으로 입 꼬리가 올라간다. 나잇살이 찌는 나이부터 다이어트는 내겐 필수였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내가 얻은 건 외양적인 측면만이 아니었다. 내면 속 ‘나’라는 자존감의 키가 점차 높아가고 있었다. 스마트폰 배경화면 사진도 내 얼굴이 커다랗게 올라가 있고 카카오톡에 올린 프로필 사진은 700장이 넘는다.
자칫 나르시시즘에 빠져 보는 이들의 손이 오그라들게 할 만한 셀피 들을 찍어 공개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본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넌 너의 이런 표정이 예뻐 보여? 지워.”라고 야속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무척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쁘게만 나왔구만 왜 그래?”하며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남편과 김포의 유명한 대형 카페를 들렀다. 근사한 카페 계단을 배경으로 다리를 길게 슈퍼모델처럼 늘려 사진을 찍어준 남편의 촬영 솜씨에 감탄하며 신기해했었다. 그날 저녁 남편은 “바로 이거지. 사진이 이 정도는 나와야 SNS에 올리는 거지” 하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그날 이후 토요일마다 다양한 카페들을 검색한 후 선택한 곳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 사진이 멋지게 찍힐 만한 옷들을 골라 집을 나섰다. 적어도 두세 벌의 옷과 신발, 가방, 모자까지 챙겨 사진사와 모델이 되어 주말을 즐겼다. 특이한 옷, 어려 보이는 옷, 우아한 옷 등 다양한 모습으로 탄생된 사진 속 모습에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했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싶었다.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릴 때마다 SNS 친구들은 남편에게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점점 남편의 촬영 기술은 일취월장하였고 나의 옷 코디 실력도 나날이 과감해졌다. 주말 한나절 촬영도 부족하다고 느낀 우리는 전국의 유명한 카페들을 찾아 1박 2일로 출사 여행을 떠나기까지 했다.
지난해 연말 강추위에 칼바람까지 불던 날 석양과 해돋이 신을 찍어보자며 떠난 서해 여행, 잊을 수 없다. 가져간 기내용 캐리어 안에는 입고 찍을 의상들과 소품들로 가득했다. 남편은 추위에도 불사하고 뾰족 구두를 신고 짧은 치마를 입고 추위에 떠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 찍어주기에 몰두했다. 그 순간 우리는 누가 봐도 부부의 모습이 아닌 사진사와 모델의 관계로 보였을 것이다. 남편은 “여기 서봐. 저기, 저기에 앉아봐. 아까 그 초록 옷 다시 한번 갈아입고 와봐. 여기 흰 벽 배경에 초록색이 딱 이야”라고 말하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모습에 미안함까지 들 지경이었다. 급기야 나는 남편에게 수고비를 주기로 했고 사진의 만족도에 따라 금액은 올라갔다. 생각보다 너무나 즐겁게 보상을 받아들이는 남편의 모습, 이런 걸 윈윈의 관계라고 했던가? 우리 부부의 주말 취미를 보고 친구들과 지인들은 말한다. “우리 나이에 참 이해하기 어려운 Another world 일세!”
쉽지 않은 일을 하고 다니는 건 맞다. 주말마다 가족 단톡방에 각양각색의 카페를 찾아다니며 찍어 울린 사진을 보는 아이들, 처음엔 엄지 척에 대형 하트가 날라왔다. 잠깐의 이벤트라 생각했는데 1년이 넘게 계속되는 주말 행사에 고개를 절레절레, 징글징글 이모티곤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내심 아프지 않고 즐겁게 지내니 감사한 마음이 더 크리라고 믿는다.
다리 힘 빠지고 입꼬리 축축 처져 아무리 올려보려 해도 안 올라가는 나이가 되기 전에 신나게 즐겨보련다. 사랑하는 아들딸아! 너희들 교육부터 시작해 왠 만한 인생 숙제 다 끝냈으니 하루하루에 스타카토 꾹꾹 눌러 밟고 통통 튀며 가 보련다. Another World를 향해 힘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