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나는 나
삶이 지루하다고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대해. 찬 바람이 불고 낙엽이 뒹굴기 시작하는 어느 스산한 가을날 저녁이었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교실 창밖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집에 가기 싫었다. 친구 누구라도 불러내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결혼한 지 5년째 되던 해 그러니까 내 나이 30이 막 되었을 때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아이 둘의 엄마, 짧은 치마에 가죽 재킷을 즐겨 입었던 나! 그런 나와 70이 넘으신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외아들인 내 남편님과의 케미가 잘 맞을 리 없었다.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만들고 싶어 하는 나의 성향과는 달리 남편과 어머니는 그저 꾸준하고 변함없이 일상을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 남편과 어머니는 그 당시 내 의지와 꿈을 방해하는 답답한 사람들처럼 여겨졌다.
저녁 시간마다 반복되는 압력밥솥의 스팀 소리가 예민하게 칙칙 거렸다. 퇴근 후 다시 시작되는 가사노동이 싫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쉬어라 인데...’ “어머니! 우리, 나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여보! 우리, 오늘은 외식하자.”라고 말해봤자 도통 먹히지 않았다. 노인이신 어머니는 외출 자체를 귀찮아하셨고 주로 밖에서 식사를 많이 해야 하는 남편의 대답은 역시나 “난 집밥이 좋은데”였다.
대학 시절 영어 연극 연출 경험이 있던 나는 삶이 곧 연극 무대일 수 있다고 믿었다. 일상을 극으로 만들며 에너지 넘치게 살고 싶었다.
둘째 아이가 2살 무렵 뭔가 독특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신문 배달을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새벽 3시 반에 집을 나섰고 4시부터 6시까지 신문을 돌렸다. 깜깜한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수도 없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어둠이 무서웠다.
춥고 두려웠던 마음을 숨긴 채 집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온 남편이 깜짝 놀라 화를 냈다. “너 지금이 몇 신데 어디서 뭘 하다 오는 거야?” “응 신문 배달 ...” 당장 그만 두라는 말에 약속한 거니까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 되던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홀짝으로 운행을 하였다. 배달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둠은 공포로 다가왔다. 결국 박카스 한 통을 사 들고 사무소를 찾아가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나의 도전? 성장! 드라마는 싱겁게 끝이 났다.
그날 이후 내 별명은 ‘못 말리는 영연 씨’가 되었다. 그 영연 씨는 과연 얌전히 일상생활만을 충실히 하였을까? 대답은 당근 No!
집 근처 백화점에서 오픈 기념으로 노래자랑을 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장난하듯 나가서 세탁기 타오라는 남편의 말에 내 끼가 또 발동한 것이다. 감정 절절 쏟아내는 팝송을 불렀다. 결과를 발표하는 무대 위엔 꽃다발을 든 어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이 올라오게 되었다. 가창 상, 선물은 세탁기가 아닌 전자 체중계!
그 후로도 나는 지칠 줄 모르고 부케 만들기에 열중했다. 발레를 배우고, 요들송을 배웠다. 블랙의 연주복을 입고 플루트를 불며 문화센터 발표회 연습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중학생 큰아들이 “우리 주 여사 참! 여러 가지 하셔.”라며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때가 잊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삶이 재밌는 이벤트의 연속이길 바라는 나 영연 씨와 사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고 성장한 아이들도 독립했다. 어느새 30년 넘게 완전히 적응해 버린 남편만이 나의 끼를 응원해 주고 있다. “영연 씨, 그대의 끊임없는 도전을 나도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