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오어 낫띵

정각을 기다리며

by 지전

몇 주 전에 작성했던 《밸런스 보드》편에서는 균형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해당 글을 읽으면 필자가 균형을 되게 잘 잡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전혀 그렇지 않기에 오히려 적을 수 있었던 글이었다. 균형을 잘 잡는 사람은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을 터인데 나의 경우 그렇지 못하기에 늘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좀처럼 구부러질 줄 모르는 나를 고백하고, 왜 유연해지고자 하는지 밝히겠다.



확실한 게 제일 쉬웠어요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어렸을 때부터 늘 분명한 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여전히 상대방에게 어떤 사안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우리가 나눌 대화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며, 대체로 우리가 의미 있는 대화를 하길 바란다.


책임의 회피

중용, 중도, 중립과 같은 단어가 비겁하게 느껴졌다—실제로 비겁한 단어라는 말은 아니다. 어떠한 선택 뒤에는—특히 극적일 경우 더욱—책임이 따르는데 그 무게를 지고 싶지 않아서 중립이라는 이름 뒤로 쏙 숨어버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관적인 나의 감상이다. 다시 말하지만 함부로 비겁하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이 될 수 있으니까.


계산의 간소화

말 그대로 0과 100,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고르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간단하다. 40이 최적일지 42.195가 최적일지 무수히 많은 선택의 결과를 계산해보지 않아도 된다. 팝콘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먹는 팝콘은 정말 맛있다. 그러나 팝콘은 몸에 좋지 않으니 적당히 먹으면 참 좋겠다. 그러나 그 '적당히'가 내게는 너무 어렵다. 차라리 입에도 대지 않기(0)와 바닥까지 비우기(100)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명쾌하다. 최적의 양을 찾아내는 에너지 소모보다, 전부와 전무 중 하나를 고르는 연산이 훨씬 간편하다는 말이다. 팝콘은 하나의 메타포일 뿐이며, 내 삶의 많은 선택에 이와 같은 로직이 적용된다.



적당히를 연습한다(반전)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필요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첫 번째 이유: 더 좋은 선택

언제나 0과 100 중에 정답이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듀오링고로 일본어를 공부하는데 하루 중 아무 때나 레슨을 들으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정각이 되길 기다리곤 한다. '8시 정각이 되면 해야지' 하다가 8시 1분이 되어버리면 다시 '아 9시 정각되면 해야지' 하는 식인데—정각병—이것은 단순한 게으름과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무수한 선택지 중에서 어떤 시각이 최적일지 고민하는 것 대신 00분이라는 깔끔한 시작점을 선택한 것이다—그 시간에 제발 시작해. 또, 언제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자 할 때 Day 1이라는 명시적인 개념이 필요하다. 모두 팝콘 이야기와 동일한 이치다. 때때로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닌 가장 쉬운 선택을 해왔음을 인정한다.


두 번째 이유: 더 넓은 세상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다. 다양한 가능성에 열린 마음을 가져야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수월하다. 흑백 논리는 위험할 수 있다. 그것이 좋은 의견이건 아니건, 다른 이들로 하여금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견해를 듣는 것은 소중한 자원을 확보하는 기회다. 타인과 소통을 잘하는 것은 유용한 생존 기술이며 더 많은 자원을 얻기 위해 기꺼이 극단을 경계할 필요성을 느낀다.



정말 바라는 것: 유연성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색무취가 아니다. 즉, 의견이 없어서 중도를 택하가나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선택과 더 넓은 세상을 위해 유연해지려는 것이다.

내가 가진 고유한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 색이 너무 진해져 세상을 가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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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서울마라톤(동아마라톤) 10K 부문을 달리고 왔다. 67분에 완주했으나 이번에 달리는 내내 되뇌었던 만트라는 '멈추고 싶으면 언제든지 멈춰도 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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