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 남기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떤 것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여행이 달콤한 이유는 결국은 집으로 복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생화가 조화보다 가치 있는 이유는 화려하게 피었다가도 기어이 시들어 죽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너무 재미있는 시리즈물을 볼 때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남아있는 한 편 한 편이 아쉬웠던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것 역시 여정의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 애틋했던 것이 아닐까.
이처럼 언제나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는 불가피하게 끝 혹은 상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잡을 수 없는 궤도
부재중 전화 기록이 찍혀있다. 우리 할아버지다. 지금은 바쁘니까 좀 이따 전화해야지, 주말에 전화드려야지 하다가 금세 일주일이 지나갔다. 오늘은 기필코 전화드리겠노라 다짐을 하고 거실 소파에 앉는다. 통화 연결 신호음이 거의 끝나갈 즈음 "응 선아-" 하고 전화를 받은 목소리의 주인은 우리 할머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특히 조부모님의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그들을 아주 많이 사랑하지만 결코 그분들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렸을 적에 늘 누군가에게 안겨있거나 업혀있어서 땅을 밟고 걸어본 적이 없다는 말을 농담처럼 할 정도로 양가에서 나의 존재는 금쪽같았다. 조부모님의 사랑은 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다 큰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도 밤길 조심해라, 집에 혼자 있을땐 문단속을 잘해라, 여행을 가서는 꼭 여럿이서 함께 무리 지어 다녀라 신신당부를 하실 때면 감히 짐작해 본다. 과연 그때 그 작고 연약한 생명체는 부서질까 날아갈까 얼마나 많은 염려로 키우셨을꼬. 그 내리사랑의 깊이는 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걱정프리 동맹'이라는 개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이것은 바꿔 말하면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된다. 걱정하는 마음은 불안을 동반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불안해하지 않길 바라며 문득 우리가 서로 걱정프리 동맹을 맺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너무 사랑해서 하는 걱정들이니 없던 셈 치고 사랑만 남길 수 있지 않을까—물론 걱정을 끼칠 일을 본인이 삼가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 테지만.
우리 서로 사랑만 하고 걱정과 염려는 하지 않기로 하자는 제안이다.
얼마 전 어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네 분 다 계신 사람은 주변에 나밖에 없는 것 같아. 참 행운이야." 엄마는 "그래 큰일 났어 우리는 이제 헤어질 일만 남은 거잖아!" 하셨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근데 아닐 수도 있잖아. 세상에는 그냥 영원히 사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잖아." 엄마는 한 술 더 떴다. "맞아, 노스트라다무스처럼."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가이고 영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가끔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바로잡지 않고 음미한다. 걱정프리 동맹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Maybe you're the same as me
We see things they'll never see
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
— Oasis, <Live 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