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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 Jan 30. 2021

의식적 판단의 함정

#8. 선택, 인과.


  합리적인 선택이란 '여러 종류의 경우의 수를 적절히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합리성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는 분야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불확실한 결과를 가정하고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소위 말하는 확률을 고려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적절한 전략이다. 10%의 성공률과 80%의 성공률을 보장하는 각각의 선택지가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두 수치가 적절한 방법에 의해 도출된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있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선택을 할 때, 비합리적으로 구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비합리적으로 군다는 것'은, 확률이나 통계적 접근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일상의 온갖 잡다한 문제나 상황을 다룰 때, 상당 부분 경우의 수를 계산한 가능성에 의존한다. 어떤 작업이나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 특정한 성과물을 내야 하는 경우 확률을 높이는 선택을 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은 판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있어, 나는 그보다도 나 자신의 직관에 의존하는 편이다.

 




  세상을 고유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기술하는 분야들이 있다. 수학이나 철학 같은 순수학문이 그렇고, 조금 더 완화된 기준으로 보자면 물리학이나 사회과학 같은 분과들이 그렇다. 이런 종류의 학문들은 세상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객관성'을 보장하는 정보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대상을 연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 보통, 소위 말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채택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식의 축적'을 경험 데이터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과학적 사실(사회에 대한 것이든 자연에 대한 것이든)은 경험적으로 관찰되고 증명되면서, 동일한 상황 조건이 주어졌을 때 동일한 결과물이 도출되는 '검증 가능한 대상'을 지시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보편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실이다. 순수한 물이 대부분의 장소에서 100°C가 되면 끓듯이 말이다. 


  어떤 현상이나 개념을 다른 것과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특별한 능력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종 중 유일하게 그러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그것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것이다. 불에 손을 데어본 아기는 그 이후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고통이 야기된다는 인과적 추론을 본능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인지 작용으로 보이기 때문에, 심지어는 별 것 아닌 사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는 것, 어떠한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한다고 인지하는 것은 이러한 대상과 대상, 현상과 현상 사이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보다 복잡한 현상이나 이론 안에 들어 있는 개념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보다 높은 수준의 관계 파악 능력이 필요하지만, 보편적인 일상을 영위하는 데 있어 필요한 내용들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건 고도의 지적 훈련이 없어도 대부분 가능하다.


  머릿속에서 정보를 연결하는 방식이 꼭 인과적인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우리는 시를 읽을 때, 시 구절 안에 들어 있는 단어를 통상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기보단, 오히려 본래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지시 대상을 떠올리곤 한다. 이러한 '은유'를 이해하는 일은 보다 고차원적인 인지 능력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더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일수록 특정한 대상에 대한 다양한 개념의 연상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복합적인 언어 사용을 수월하게 소화한다고 한다. 물론 훈련을 통해서도 동일한 연상 작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이 꼭 사실 그 자체를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우리가 무언가를 착각하거나 오해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주위가 깜깜한 곳에서 형상이 불분명한 미지의 그림자를 봤을 때, 그에 대해 저마다 떠올리는 대상이 다를 것이다. 그 상황에서 무언가를 떠올린다는 건 일차적으로. 그 그림자의 존재가 원인으로 작용한 결과에 해당하지만, 그림자의 실체는 누구에게나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인지자에게 다른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은 특히 사실의 측면에서 볼 때, 사람들 간의 유의미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음모론자를 떠올려 보라. 다소 성급한 인지적 추론이 일어나는 분야가 대표적으로 음모론이다.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을 두고, 다양한 모종의 원인을 갖다 붙인다. 전혀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는 것들을 연결시켜 불확실한 전제를 가정하고, 비약이 가미된 미래 예측까지도 시도한다. 음모론자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보와 정보를 연결하는 의식적 틀'의 한계는 불분명해서, 어디까지고 문제를 확장시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연결망 형성은 다소 흥미로운 시도이긴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을 판단해야 할 땐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를 오해하고, 잘못된 추론 과정을 거치는 건 음모론자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크고 작은 부분에 대해, 그러한 비사실적인 인지 활동을 경험한다. 눈앞에 드러난 결과를 두고 비합리적인 인과 추론을 감행하거나, 망상적인 수준의 은유적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어떤 것의 인과 관계를 따질 때, 보다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오류에 빠지기 쉽다. 왜냐하면 소박한 의미에서, 특정한 결과가 야기된 현상이 보통 하나의 직접적인 원인만 가지는 것은 아닐뿐더러, 대부분 원인과 결과 사이에서 필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A는 B 때문이야, 라는 식의 표현은 대단히 명쾌하게 보이고, 다소 간의 핵심을 지적하는 명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사람들은 자주 이런 사고 구조를 차용한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사실 A가 일어나는 데에는 C나 D, 혹은 x나 y, 나아가 알파나 베타의 요소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A가 훌륭한 운동선수라고 친다면,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논의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A가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A를 그가 받는 대우에 견주어 볼 때, 그 수준에서 가장 노력했던 사람은 아닐 것이다. 예컨대 A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는데도 불구하고, A보다 낮은 수준의 성취를 이뤄낸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성취는 타고난 재능 덕분인가? 전 세계의 이들과 비교해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정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걸까? 이는 사실성을 보증할 수 없는 주장이다. 재능이라는 것도 결국 그것을 자극하고 꽃 피울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A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주장이다. 세상엔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도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 역시 존재한다. 완전히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기간 동안 성장 가능성을 책정하는 게 아닌 이상, A의 유전적 잠재력의 상대적 우위를 특정할 순 없다. 그렇다면 그가 자라온 성장 배경, 자라난 환경 덕택인가? 유복한 환경에서도 엇나가는 사람들이 허다하고, 불우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 역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결과를 확인하면서 특정한 인과 관계를 가정한다. 내가 이런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선 이러한 판단의 과정을 잘 분석해, 문제에 내재되어 있는 분명한 법칙성을 찾아내야 한다. 으레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정신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그에겐 문제 상황을 직면하고, 전략을 분석하고, 향상된 결과를 위해 노력할 의지와 실행력이 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세상에 명백한 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 그다지 연관이 없을 수도 있고, 더러는 운이나 불가측 요소들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한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순수한 노력에 의한 결과는 없다. 오로지 특정한 선택에 국한되는 결과값은 없다.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노력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나락으로 귀결되는 헛된 도전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당신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선택이 사실은 당신이 원했던 결과를 도출하는 데 있어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그냥 일어났을 법한 일이 일어났던 것일 수도 있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후에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성공담을 공론장 안에서, 무슨 객관적인 법칙을 논하는 것처럼 설파하는 사람들을 불신한다. 물론 그들이 선의에서 그러한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일 수도 있다. 단지 자신과 비슷한 분야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경험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내가 보기엔 그러한 노력이 실제 사회에 끼치는 효용과 해악을 따져볼 때, 어느 쪽이 더 지배적일지 의문이다. 나는 적합한 선택을 위해 쌓아 온 그들의 노력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앞서 지나가듯 살펴봤지만, 명백한 결과 도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사회적 인간관계, 지리적 상황, 심리 및 능력의 세밀한 차이, 영양 섭취 패턴, 운동 능력의 차이, 경제적 조건, 가족 관계, 외부의 기회 여부 등 오만가지 고려 사항 중 하나가 우연한 작용으로 인해(다시 말해, 운으로) 대박을 터트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어떤 결과가 발생한 이후, 결과론적인 관점을 들이밀며 눈에 가장 먼저 띄는 요소를 그것의 명백한 원인으로 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의 정신 활동을 조정하는 신체 일부인 '뇌'에 대해서도 아직 훨씬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호르몬의 작용, 특정한 뇌 부위의 활성화에 따른 일상 변화, 세 끼마다 챙겨 먹는 식사 종류에 따른 영양 균형이 삶에 끼치는 차이, 자고 일어나는 수면 환경 조건이나 그 패턴 등 우리가 항상 직접적으로 의식할 순 없더라도, 인생을 조정하는 요소는 굉장히 다양하다. 아마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 모든 상호 작용과 요소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산하거나 고려하진 않을 것이다. 하물며 지금의 실존적인 '나'가 행하는 선택이나, 그로 말미암아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영향과의 관계를, 우리가 얼마나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을까. 나는 노력이 무용하다거나, 당신의 선택이 아무런 영향력도 가지지 못한다거나, 세상만사가 결정되어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력에 따른 결과, 원인에서 도출되는 결론, 성공이나 성취 조건의 결정적인 요소가 항상 '의식적인 무언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인들의 결합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떠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바꿔 말하면 인간의 삶에 있어, '명백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인과 관계'를 포함한 공식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일이든 간에 우리가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발전을 이룰 수도 있고 퇴보를 이룰 수도 있다는 의미다. 단지 사실적인 견지에서 접근할 땐, 보다 신중한 분별력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어떤 핵심을 결정하는 데 있어 내가 직관에 의존하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다.

  통계적 접근이 비과학적이라거나, 심각한 수준의 객관성을 결여한 선동적인 데이터의 추종이라는 게 아니라, 결국 내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에 있어 내가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면, 그 입장의 근거를 세워야 할 때 잘 알지도 못하는 외부적 요소에 기대고 싶진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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