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우주, 우물.
종종 사람들은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기 위해 '우주 속 지구'의 모습을 언급한다. 넓디넓은 우주 속 지구는 다른 어떤 것들과 비교해도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특별하기는커녕 너무나도 작디작은 점 하나일 뿐이다. 우주 전체에 비하면 먼지 한 톨도 안 될 정도의 크기인 이 조그마한 행성에서, 인류는 죽기 살기로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인간의 욕심은 부질없고, 개인이 잘났다고 해봐야 그 존재감은 우주 변방의 모래 한 톨 정도다. 그러니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겸손과 화합을 추구해야 한다. 대충 이런 논지다.
물론 나는 겸손을 진정 미덕으로 여기는 이 시대에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상술한 주장은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우주 속 먼지도 안 되는 존재이기에 겸손해야 한다는 사람이나, 우물 안에서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뻐기는 사람이나 결국 비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규정하고 있다. 비교의 초점이 다를 뿐이고, 서로가 추구하는 미덕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자기애가 미덕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 구조는 잘못된 것인가? 여기선 규범적인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규범적으로 접근해보자.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내 바깥의 무언가와 비교함으로써 규정하는 것이 규범적으로 타당한가? 말하자면 그것은 권할만한 일인가?
아마도 이런 문제에 대한 가치 판단에 앞서 규명되어야 할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설정하는 데 있어 '비교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이나 '우주 전체'와 같은 비교 대상을 상정하지 않고선 자기 자신의 가치를 주장할 수 없다면, 이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 당신이 태양을 파괴할 수 없다면, 태양을 파괴하는 것이 규범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따지는 건 의미가 없듯이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대안이 필요하다. 만약 적절한 대안이 있다면, 앞선 겸손이나 자기애를 추구하는 논지에 대해 '둘 다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면, 우리는 겸손과 자기애 중 무엇을 추구할지 선택해야 할 뿐이다.
먼저 비교의 환원적인 성격을 지적해야겠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가치 판단이든 간에 '결과적으로는' 비교로 말미암아 그것의 판단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스스로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성이 강하기 때문에, 나는 선하다.'라고 주장한다면, 도덕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진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선하다는 가치 판단의 근거는 도덕적인 행동이 타인에게 이로움을 가져다주며, 그 정도가 일반적인 사람보다 잦기 때문이라고 환원되어 말해질 수 있다. 즉, 나는 나 자신의 행동 경향성이라는 내적 특성을 근거 삼아 그에 대한 평가적 결론을 도출했지만, 그와 동일한 내용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말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도덕적이라면 아무도 도덕적이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환원적 성격을 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심리학적 이기주의'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심리학적 이기주의는 당신이 어떤 동기에 의해서든, 어떤 행동을 하든 간에 그 기저에 있는 심리적 동기를 파고 들어가면 반드시 이기심에 도달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엔 당연히 기부나 봉사활동도 포함된다. 말하자면 자기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남을 돕는 나'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이타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이기심이다.
당신은 이러한 주장에 반발심이 들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 심리학적 이기주의의 주장은 결정적으로 반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생각, 행동이 이렇게 이기심에 근거한 설명으로 환원될 수 있다. 물론 이는 좋은 결과를 산출하는 이기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기심은 이기심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로운 어떤 것도 없다면, 당신은 그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자기 자신을 고의적으로 괴롭게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당신은 피해자인 척하면서 타인의 동정을 즐길 수도 있고, 고통을 개성으로 여기며 자기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로 믿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심리학적 이기주의의 설명력은 모든 생각과 행동을 포괄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극단적으로 보이더라도 말이다.
내 생각엔 가치 판단의 영역에 있어 비교라는 개념도 그런 종류의 환원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당신이 스스로 '좋다'거나 '나쁘다'고 자기 자신을 평가할 다양한 내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근거가 되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타인과 비교했을 때, 그 같은 요인들을 더 가졌거나 덜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신이 긍정적으로 여기는 모든 개성은 그것이 단지 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 개성이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마음에 든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대체로 잘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을 알진 못하니까.
다만 이기심이든 비교든, 이런 방식의 접근은 비생산적이다. 모든 것이 이기심에 의한 것이고, 모든 것이 비교에서 연원한 것이라면 그 사실을 지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한 차이점과 특징을 짚어내는 게 올바른 분별력을 기르는 길이 아닐까?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이기심에 의한 것이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이기심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두 행위를 구분 짓게 하는 모종의 요인을 분석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의 물음표가 무의미한 것으로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적어도 방금까지 말한 비교는 의식적인 차원에서의 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주-나'든 '나보다 못한 타인-나'든 이러한 비교는 앞선 것과는 달리 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뤄진다. 그것은 목적성을 가지고, 각기 다른 규범을 주장한다.
그러니 질문을 다듬어보자. 우리는 의식적인 차원에서 비교 이외의 다른 범주를 근거로 인간에 대한 가치 판단이 가능한가? 숱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가능하긴 한 것 같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잘하는진 모르지만, 나 자신의 수행에 만족감을 가지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나는 그만큼의 수행을 하는 나 자신에게 만족하기 때문에 나를 좋게 평가할 수 있다. 그 평가에 꼭 '남들보다 잘하기 때문에'가 붙을 필욘 없는 듯하다. 물론 그 후에 내가 남들보다 못하는 거였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낮아질 순 있다. 이 경우엔 비교라는 가치 판단의 범주가 개입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비교가 개입하기 이전엔 비교 이외의 근거로 가치 판단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그런 판단이 특별히 부당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는 것 같다. 자기만족의 규범적인 기준 같은 게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겸손과 자기애 이외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다른 대상과 비교하여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에 대안이 있다고 해서, 비교가 반드시 나쁘다거나 부당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건 아니다. 굳이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당신은 여전히 우주에 비해 좁쌀만도 못한 지구와 인간 존재에 대해 겸손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그저 인간의 존재 가치가, 그에 대한 판단이 다른 무언가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주지하면 좋을 것 같다. 당신이 당신 자체로 특별한 존재라서가 아니다. 모두가 특별하다면,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상기한 사실을 주지하면 좋을 이유는 그것이 보다 인간적인 길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