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의 '꽃'을 읽으며
누군가는 내가 너무 차가운 사람이라고 한다.
나를 차갑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코웃음을 흘린다.
그 사람에게는 통찰력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 뜨거워서 시름시름 앓는 사람이니까.
우스워하는 건지 섭섭한건지, 마음에 냉소가 휘익하고 들이친다.
나는 늘 가림 없이 모든 것을 내어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뜨거운 물에도 동상을 우려하는 망상을 내비치는 격이다.
뜨겁게 달궈진 유리잔에 얼음물을 끼얹는 순간, 잔에는 허탈하게 금이 간다.
마음이 서늘해질 때마다, 어딘가 또 금이 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견딜만 하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밀려드는 차가운 공기로 잠시 끓던 마음이 사그라들기도 하니까.
무엇보다도 그는 내게 그리 중요한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관계는 종종 두렵다.
애정이 두터워지고, 곁을 내어주며 마음이 서서히 데워지기 시작한다.
공감하다가 걱정하고, 조바심을 느끼다가 결국 행동하게 된다.
그 사람의 안부를 묻고 진심으로 그의 안녕을 바란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는 그렇게 내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그가 꽃이 된 이후에는, 그 사람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린다.
호명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나는 어느새 호소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말과 눈빛, 그리고 행동으로 열과 성을 다해 나를 표현하며, 이해해달라고 간청한다.
그 사람은 분명히 보았다. 내가 가림 없이 내어 보여주는 것들을.
그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다. 혹독한 겨울을 닥쳐올 때면, 내가 언제든 끓어오른 애정으로 그를 두터이 덮어줄 사람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끝내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 때,
결국,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뜨겁게 펄펄 끓다가 자멸하듯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낀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체를 잃는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금이 가 조각날 때가 더 견딜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숨죽여 울게 된다.
그는 이미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기 때문이다.
* 위에서 사용된 ‘꽃’과 ‘이름’은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를 바탕으로 한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