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1일

느린 식당

by 도담과 솜

2019년 8월 18일 스페인 출국 (MADRID IN)

이동하고 이동하고, 장장 16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날아 마드리드에 도착했으나 우리의 목적지는 유럽의 발코니라 불리는 네르하. 마드리드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또 이동해서 경유지인 말라가에서 버스를 타고 또 이동. 정신없이 바깥 풍경 구경하다 보니 네르하에 도착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숙소 체크인하고 광장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끝이 안 보이는 바다와 짙은 보라색 바탕에 주황색 물감 한 방울 떨어뜨린 듯한 하늘이 절경을 자아냈고, 잔잔한 반주로 라이오넬 리치의 Say you, Say me를 버스킹 하는 남자의 노래에 박자 맞추듯 치는 파도. 내가 정말 스페인 땅을 밟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일렁였다.


"배고파"

"일단 밥부터 먹자."


우리는 오랜 비행에 너무 피곤했고, 배고픔에 지쳐있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저녁을 먹으러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테이블마다 하얀 식탁보에 은은한 향초가 분위기 있게 피워져 있었고 늦은 밤 그곳의 공기와 향초 불빛들이 어우러져 우리를 더 황홀하게 해 주었다. 거기에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 간판 이름조차 모르는 그곳은 우리에게 '여러분이 앉아계시는 이곳은 스페인이며 아주 여유로운 나라랍니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주문한 코스요리는 스타터부터 시작하여 메인 디저트까지 아주 느릿느릿 천천히 우리에게 왔다. 아 이 여유로운 스페인이여, 우리는 너무 배가 고프다고요. 스타터로 나온 크림치즈 비트 수프가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아 곤욕이었다.


"익스큐즈미..? 피니쉬..! 위 알 던.."


알고 있는 영어를 모두 끌어모아 '우리 스타터 다 먹었으니 제발 메인을 주세요.'라는 눈치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나서야 메인 음식을 즐길 수 있었으나 야속하게도 시간은 밤 12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코스에는 아직 디저트가 남아 있다는 것을 영서와 나는 알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장장 두 시간을 코스요리에 묶어있던 우리는 먹다가 졸다가 먹다가 졸다가를 반복했다. 서로 잠들지 말라고 열심히 깨워줬다.


"라 꾸엔따 뽀르빠보르 "


계산서 좀 달라고 거의 애원하다시피 했다. 아 이 여유로운 나라의 여유로운 식당에 묶여버린 한국인 둘은 첫날밤 호되게 신고식을 제대로 했다며 짐을 싸서 나가려는데, 예쁘고 친절한 스페인 언니가 서비스 칵테일을 한잔씩 주면서 더 즐기라고 말씀하셨다.


"인조이-"


아- 이 친절하고도 여유로운 스페인이여.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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