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dA
스페인 3일 차 - RoNdA
론다로 가는 길은 참 험난했다. 계획 파인 우리에게 두 번째로 큰 시련을 준 여정이었다. 론다로 가기 위해 경유해야 하는 말라가까지는 버스를 타고 잘 도착했는데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말라가에서 론다행 티켓을 매표하는데 도대체 매표소 직원이 표를 줄 생각이 없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며 창구 문을 쾅 닫아버렸다.
" NO NO NO NO NO "
".. 야 우리 어떡해?"
"어떡하지?"
"이게 무슨 상황이야?"
우리는 2시에 출발하는 론다행 버스를 타도 꼬박 두 시간이 걸려 4시에 도착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시간싸움이었다. 분명 20번 창구에서 론다행 티켓을 끊을 수 있다면서요.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해보니, 스페인은 점심시간이 2시간인 것으로 추정. 적어도 이 버스터미널의 점심시간은 최소 2시간이다. 이 직원은 본인의 점심시간 30분을 초과하면서까지 사람들의 티켓을 발권해주었고, 더 이상 본인의 행복한 점심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서 창구의 문을 내려버렸다. 우리가 내린 문틈 사이로 돈을 꾸깃꾸깃 밀어 넣었는데도 무반응이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스페인 문화가 있다. 스페인에는 '낮잠'이라는 뜻을 가진 시에스타(Siesta)라는 문화가 있다. 지중해에 위치해 여름 날씨가 아주 뜨거운 스페인은 낮 시간 동안의 더위로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관습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빨리빨리 문화의 한국에서 온 우리 둘은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아. 이 낯설고 여유로운 나라여.
다행히 터미널의 인포메이션을 찾아가 우리의 사정을 열심히 설명했더니, 천사 같은 여직원이 론다행 버스를 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겨우 한숨 돌린 우리는 그제야 배가 고파왔다. 빽빽한 일정 탓에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매점에 들어가서 치토스를 종류별로 사서 오매불망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그제야 웃음이 실실 나왔다. 어쩜 이렇게 순탄하게 여행하는 날이 없는지.
우여곡절 끝에 론다에 무사히 도착했고, 그곳은 우리에게 보란 듯이 웅장하고 가슴 일렁이는 풍경을 품고 있는 작고도 깊이 있는 마을이었다.
론다에서 우리의 숙소는 누에보 다리와 살짝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론다의 투우장과, 으리으리한 화장실이 매력적이었다. 화장실이 매력적이라고 한다면 어이가 없지만 정말이다. 초록색 모자이크 타일과 벽면 한쪽을 채운 거대한 거울 그리고 웃기지만 통유리이다. 그냥 변기에 앉아있으면 바깥세상에 '저 변기에 있어요'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그런 특이한 장소였다. 그곳 화장실에는 변기 바로 앞에 유아용 변기 같기도 하고, 세면대 같기도 한 변기가 있는 것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냥 궁금증만 가진 채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비데였다. 물에 대부분 석회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작은 관을 이용하게 되면 석회질로 막혀 금방 고장이 나기 때문에 입구가 커다란 수동 비데를 사용한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론다에서 처음 찍은 사진이 아마도 그곳 화장실 비데였을 것이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생각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친 듯이 배가 고파온다. 신나게 컵라면에 물을 올린다. 우리의 계획이 헝클어질 뻔해도 이제는 제법 무덤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