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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Nov 29. 2023

자퇴생 부모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자퇴생 혼공르포르타주 7화]

딸이 자퇴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최종 결정은 부모인 나와 남편의 몫이었다. 물론 자녀에게 자신의 인생이니 니 뜻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는 게 요즘 육아 트랜드처럼 여겨지는 풍토지만, 난 미성년인 자녀의 일에 관한 최종 의사결정은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미성년인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을때 그 책임은 부모가 져야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도 모든 생을 다 살아본 것도 아니니 아이 장래를 두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두려울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통크게 '네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솔직히 책임회피 같아 보인다. 부모는 자신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예견한들 그게 들어 맞지 않을 가능성이 언제나 더 높다는 걸 뻔히 안다. 그런 결정을 자신이 하다가 나중에 아이에게 원망을 들을까 두렵고, 아이와 의견이라도 다를때 겪을 갈등이 괴롭기도 하다. 이런 골치 아픈 상황으로부터 많은 부모들은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래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때 부모는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다. 굳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내 입장에서는 정말 머리가 아프게 고민이 되는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주위 친구들에게도 이런 사정을 이야기해보고 생각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재밌게도 모두가 같은 말로 시작했다. "학교는 꼭 공부를 위해 다니는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부연 설명은 대충 이렇다.


학교는 꼭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고, 여러 경험들을 통해 아이들 사회성을 길러준다. 학교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을 해야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자퇴를 했을때 혼자 공부하는 건 무리고, 자기 시간관리를 잘 할 수 없기에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니 여러모로 학교를 다니는게 더 좋다. 그런데 생각이 다르다면 그만둘수도 있다. 요즘엔 자퇴생 편견도 거의 없으니 자퇴해도 잘 생활할 자신이 있고, 생각이 확고하면 그만 둬도 될것 같다는 의견들이었다.


그러다 자퇴에 대한 경험이나 의견을 담은 영상들을 찾아 보게 되었는데, 사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선생님인 듯한 분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어차피 좋은 선택이란 없습니다. 일단 마음이 가는 쪽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이 최선이 되도록 해야해요"


래 이거다! 나에게 그분의 조언은 구세주를 만난 듯 했다. 그 분의 말을 통해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대체로 자퇴의 부정적인 결말에 대한 경고의 말들이 많고, 자퇴해서 잘 된 사례나 너무 좋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적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선택의 결과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인생의 선택들은 '가능성'에 대한 것일뿐, 결과는 아무도 모르기에 어떤 선택이 더 좋은 선택인지 결과를 생각한다면 절대 알 수 없다. 좋은 선택일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모두에게 맞는 길이 내게는 아닐 수 있다. 어쩔수 없이 해봐야만 안다. 정해진 길로 가지 않을때는 더더욱 해보면서 수정해나갈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최종적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리로 딸에게 일단 자퇴해서 6개월을 살아보고 자퇴가 좋은 선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년 3월에 1학년으로 재입학을 고려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재입학을 했을시에는 학교수업이 마음에 안들어도, 내신이 잘 나오지 않아도 고등학교 생활을 완주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런 딸에게 자퇴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자퇴를 최종적으로 허락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4가지 조건을 내 걸었고, 이거 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했다. 딸은 기꺼이 좋다고 했다.


1. 블로그에 매일의 계획을 세우고, 복기를 할 것.

2. 매일 운동할 것.

3. 매일 집안 일 중 1가지를 도울 것.

4. 매주 책1권의 책을 읽고 1편의 글쓰기를 할 것.



그래서 딸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가장 먼저 계획을 세운다. 블로그를 만들어서 계획을 세우고 복기를 하게 하는 이유는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과 딸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기 위함이다. 자퇴를 하고 혼공을 하는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안되면 자퇴를 할 수 없다. 아니 하면 안된다. 자기 관리 능력이 없다면 그걸 누군가에게 의탁해야하는데 만약에 부모가 둘다 직장에 나가 있다면 아이 혼자 집에서 공부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스터디 카페라도 가는 것인데, 거기서도 관리 감독해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딴짓'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러니 보통 자퇴를 하고 기숙형 학원이나 재수 종합반이나 관리형 독서실을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딸은 집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나는 엄마 역할 말고도 딸에게 일정부분 '선생'의 역할을 해야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것이다. 오랫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나는 아이들을 관리 감독하고  지도하는 것이 몸에 베어 있다. 자연스럽게 아이를 관찰하고 이상한 것이 있으면 묻고 체크한다. 그런데 나는 딸에게 엄마지 선생이 아닌데 딸이 자퇴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생의 역할을 해야하니 고민이 되었다. 둘다 아이를 성장 시킨다는 공통 분모는 있지만 두 역할은 많이 다르다. 엄마는 '수용'이 기본인 사람이고, 선생은 '평가'가 기본인 사람이다. 내가 딸을 '선생'의 눈으로 보게 되면 자칫 갈등하기 쉽다. 나의 두 역할에 대해 구분이 잘 안되는 딸은 나의 말에 상처 받기 쉬울 것이다. 나역시 매 시간 시간 아이가 무얼하는 지 물어볼 수 없고, 그렇다고 성격상 마냥 잘하고 있겠거니 놔둘 수도 없다.


아이들을 많이 겪은 나로서 '아이는 아이다' 라는 결론을 일치감치 내렸다. 경험상 아이들은 대체로 충동적이고 자기의 욕구나 생활을 조절할 능력이 떨어진다. 이것은 많은 뇌과학 연구에서도 말하는 바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초등5학년쯤 되면 '뭐든 알아서 하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경우가 그 많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모의 바람일뿐이다. 성인이 되기전까지 부모는 아이에게 적정 수준의 한계를 정해주고,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시간을 줘야 한다.


학교를 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하루 일과가 정해져있기에 그것대로 살아가면 된다. 내 스스로 시간을 계획하고 관리할 필요가 적어진다. 그래서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지만 사실상 학교를 다니면 오히려 자기 주도적인 능력이 생기기 어렵다. 방과후에도 학원을 다니면 또 그곳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것을 한다. 그러니 한국의 아이들은 스무살 이전까지 누가 정해진 대로만 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자퇴를 하게 되면 정해진 삶의 틀이 사라지기때문에 스스로 틀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아이와 충분히 상의는 하되 최종 하루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아이가 정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것을 매일 말로 조율하다보면 분명 다툼이 생길 게 뻔했다. 그래서 아이가 블로그 계획을 세워두면 내가 가끔 확인하고 아이 공부 진도 상황을 체크하면 되고, 지금 하는 공부 난이도와 양이 적당한지 물어보고 상의만 하면 된다. 아이는 매일 기록하면서 자신의 하루가 쌓여가는 것을 가시적으로 확인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운동을 강조하는 이유는 체력 증진 말고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딸은 원래 활동량이 많지 않다. 운동은 뇌에게 주는 밥같은 거다. 그런데 이제 학교마저 가지 않으니 몸의 움직임이 현저히 적어질 것이다.  그래서 매일 왕복 40분 거리의 수영장을 걸어다니고 50분씩 수영을 하도록 해서 활동량도 채우고 뇌발달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 다닐때는 주2회나 3회 하던 수영을 이제는 아플때 빼고는 매일하거나 주6일 이상한다. 그래서 더 체력이 좋아졌고 활기가 생긴 듯 보인다.


딸은 온종일 집에서 공부하고 생활하게 된 이상, 단순히 집안일을 돕는 입장이 아니라 꼭 해야하는 필수사항이라고 말해두었다. 집안일을 하면서 딸아이가 자기 스스로 살아갈 자신감을 갖길 원했다. 사실 집안일은 '하면 티도 안나지만 안하면 티가 나는 지루한 노동의 연속'이다. 매일 매일 할일이 어김없이 쌓이고 해도 별다른 성취감을 얻기 힘들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들이 많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고수를 찾아가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하면 고수들은 잡일이나 집안일부터 시킨다. 그 이유가 무엇겠는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작은 일을 하는 태도를 보면 '싹수'가 보이기때문이다.


내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돕도록 한 것은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다. 나는 아이들이 하는 공부는 살아가면서 배워야할 여러가지 중 아주 협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 공간을 스스로 정리하고 먼지를 쓸고 닦고 화장실 변기와 욕조를 닦아보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개고 정리하는 과정을 당연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상의 일들을 하지 못하고도 성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능력들인가?


아니다. 이런 일상적인 노동은 하나씩 해보면서 배워가야 한다. 이런 것들을 누군가에 의탁하는 삶을 사는 한 독립된 인간은 절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딸과 아들에게 중학생이 된 이후로 집안일을 꾸준히 돕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그 노동의 댓가로 기본 용돈에 인센티브를 붙여 보상도 해준다.  나중에 아이들은 인센티브는 받지 않고 그냥 집안일을 하겠다고 했다. 기본 용돈만으로도 충분하고, 가족의 일원으로 밥값을 하겠다는 것이다.  


자퇴조건으로 글쓰기를 권유한 이유는 그저 다양한 책을 읽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공부시키기 위함이다. 단편적인 지식을 듣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은 공부의 기본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미숙한 생각들을 좋은 책을 읽으면서 성숙하게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란 것이 재료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매일 본능적인 일들만 하거나 또는 제한적인 내용만 반복하다보면 생각하는 능력이 없어진다.


 특히 난 아이가 잘못 된 관행이나 불의에 그저 '순응'하는 사람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성숙하게 완성해나가는 사람이 되어 부조리한 상황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길 원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들이 있으니 그것들의 중요함을 알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자퇴서 낸 이후 매주 일요일은 온종일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 시간을 갖는 중이다.

자퇴를 연습하던 여름방학부터 지금까지 딸은 매일 집안일을 돕고, 공부하다 지치면 일어나서 무반주 막춤을 추고, 수영이나 산책을 하고 와서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매주 책을 읽고 1편의 글쓰기를 하는 중이다. 그리고 얼마전부터는 쉬는 토요일에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겠다고 했다. 우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부터 도전하기로 했다. 재료를 사오고 손질하고 요리를 하는 과정을 통해 딸은 또 무엇을 알아가게 될까.


여튼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자퇴를 하고서 딸 아이의 눈밑의 짙은 다크써클이 없어졌다는 거다. 지치고 텅빈 눈동자는 하루하루 생기를 채워가며 반짝인다. 자퇴생 엄마인 나는 딸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오늘도 이렇게 말했다.


너의 열일곱은 엄마의 열일곱보다
훨씬 훌륭해.
잘하고 있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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