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나의 첫 다이어트는 열 여덣 고2때였다. 그때 왜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는지 기억은 정확하게 나지는 않는데, 내가 좋아하던 남학생이 인사말처럼 '어? 너요즘 살이 찐거 같다'고 하던 말에 그만 걸려 넘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몇주를 내가 점심시간에 밥을 안먹고 있으니까, 담임 선생님이 와서 다정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밥 먹어~너 하나도 안 뚱뚱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사실 난 그때 전혀 뚱뚱하지는 않았다. 165Cm에 57kg 였으니까. 하지만 결국 난 그 아이에게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54Kg까지 빼고 멈췄던 기억이 난다.
난 왜 살면서 줄곧 날씬 해야한다고 생각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외모 품평을 많이 듣고 살았던 같다. 주로 후배든, 동기든, 동료든 나의 얼굴과 몸에 대한 평가질은 하는 사람들은 남자들이었다. 칭찬이든, 욕이든 많은 남자들은 아주 쉽게 여자 외모를 두고 품평회를 여는 습성이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나라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자신에 대한 외모 만족도가 정말 떨어진다. 실제로 우리나라 남성의 76%는 자신의 외모에 만족한다고 답하지만, 우리나라 여성의 67%는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뉴스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리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외모 만족도를 조사한 기사에서 우리나라는 최하위권을 차지했는데, 가장 만족도가 높은 남미 국가의 사람들은 76%가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34%만이 자신의 외모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단다. 아마도 상당수가 남성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평균적인 우리나라 여성들보다 키도 크고 가슴도 발달해서 정상체중에서 조금 더 살이 쪄도 엄청 덩치가 커보였다. 그것으로 대학때 '등발이 좋다'는 식의 놀림감이 되기도 하고, 언제 한번은 내 몸을 두고 남자 선후배들이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를 삼았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도 있었다. 그 얘기를 들었을때 난 수치심과 분노가 올라왔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들은 얘기라 그 술자리에 있던 남자 선후배, 동기들에게 따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실망과 동시에 내 몸에 대한 수치심에 상처로 남아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소심한 복수는 혼자 이 말을 내 뱉는 것뿐이었다.
"누굴 품평할만한 주제들도 못되면서!!"
반면에 교생실습기간에는 저녁 알바와 병행하느라 한달 사이 급격하게 살이 빠졌던적이 있었는데, 이때 역시 남자 동기와 선후배들은 내가 성형을 한거 같다며 이뻐졌다고 난리를 떨었다. 대학 때 역시 나는 전혀 뚱뚱한적은 없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그저 내 체중은 168에 57- 62kg으로 정상체중의 중간과 경계를 아슬하게 오갔을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마른 여자애들에 비해, 남자들의 높은 기준에 비해서는 언제나 뚱뚱했으니....지겨운 외모 품평을 듣고 싶지 않아 타인의 기준에 의해 다이어트를 해야하나 고민했고, 실제로 늘 다이어트를 했다.
그렇게 시작한 다이어트는 스무살 이후 반복되었고, 임신 기간을 뺀 내내 일평생 다이어트를 하고 살았거나 신경을 쓰고 살았던 것 같다. 어릴때는 왜 날씬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채 그게 보기 좋다는 이유로, 예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이유로, 궁극적으로 이성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각종 다이어트를 내 몸을 상대로 위험한 실험을 해왔던 것이다. 대체로 체중감량에 성공했지만 100%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더 살이 쪘다. 그럼 또 다이어트를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다시 찔때는 그 전 최고 몸무게를 갱신하는 식이다. 그러다 임신을 하고 잠시 다이어트 강박을 내려놓고 맘껏 먹자 76키로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맞이하게 된다. 이젠 정말 과체중이 된 것이다.
오늘의 한끼
오늘의 한끼는 귀리밥과 소고기 무국이다. 제철인 무를 넣은 무국은 가을과 겨울에 먹기 좋은 음식이다. 액젓과 새우젓으로 간을 한 소고기 무국은 두 그릇을 먹어도 살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귀리를 섞어 지은 밥은 식감과 포만감뿐 아니라 영양도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혈당수치를 천천히 올려준다고 해서 꾸준히 먹고 있다. 탄수화물을 너무 적게 먹으면 오후에 에너지가 딸리고 저녁 공복을 참기가 더 힘들어지기때문에 1일1식을 할때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지 않다. 대신 탄수화물을 먹는 순서를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으로 되도록이면 나중에 먹으려고 노력하고, 정제된 탄수화물이 아닌 좋은 탄수화물을 먹으려고 애쓴다.
옛날에는 다이어트 적을 지방이라고 여기더니, 요즘은 탄수화물이 다이어트의 적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나 역시 탄수화물을 거의 먹지 않는 다이어트를 반복했었다. 그리고 아주 쉽게 살을 뺐던 경험이 있다. 대신 하루 종일 피곤하고 기운이 없었으며 짜증이 몰려왔다. 특히 결혼을 하고 두번의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몸무게는 더 널을 뛰어 극과 극을 오고 갔는데, 그럼에도 오랫동안 다이어트를 반복하다보니 난 어느덧 살을 빼는데 도가 터 있었다.
탄수화물을 거의 먹지 않는 다이어트로 첫 임신 중 76Kg까지 나갔던 몸무게를 출산 후에는 57kg까지 감량했다. 그리고 두번째 출산 역시 1년6개월간 모유수유를 한 뒤, 그 이후 하루 한끼를 먹고 3개월에 55kg까지 감량했다. 살을 빼겠다고 마음 먹는게 힘들지, 마음만 먹으면 난 3-4개월만에 10Kg빼는 건 나한테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이후에는 신기하게도 보통의 식사를 두끼를 먹으면서도 5년간 몸무게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다이어트를 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때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아이의 육아에 소파에 누울 시간이 없을만큼 정말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가 낯가림이 심해 어린이집을 가지 않아서 둘을 혼자 육아를 전담하고 있었다. 매일 두 아이를 쫓아다니고 먹이고 놀아주고 씻기고 재우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많은 활동량으로 자동 체중조절이 되고 있었지만 정신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급기야 나는 육아 우울증으로 '프로작'을 처방받았고, 그 약을 먹자 마자 한달만에 기분은 나아졌지만 몸무게가 5kg이 늘어 있었다. 그냥 약만 먹을뿐이었고, 식생활은 이전과 똑 같았다. 그렇게 몸무게는 계속 늘어가 65kg가 되었다. 안되겠다는 생각에 1년 6개월 넘게 먹은 프로작을 의사와 상의없이 끊었다. 그리고 1년 6개월을 무작정 걸었다. 주5일 이상 매일 1시간 30분씩을 걷자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햇빛을 보고 걷는것만으로도 정신이 이렇게 건강해질 수 있다는 신기했다. 그런데 체중은 빠지지 않고 그대로인 것이 몹시 이상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좀 크자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공부방을 시작했고, 꼼짝없이 집안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하는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돌아다니는 것을 원래도 좋아하지 않아서 답답한 줄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아이들 돌봄에 들어가는 나의 노동시간도 줄고, 집안에서만 일을 하니 활동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러자 몸무게는 몇년을 걸쳐 야금야근 늘어 70kg을 육박했다. 70kg을 찍을때마다 다이어트를 했고, 대체로 10kg씩 감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20,30대와는 다르게 40대가 되자 점점 같은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해도 살이 잘 빠지지 않았고, 요요는 더 쉽게 더 많은 체중 증가로 왔다. 그리고 배고픔을 잘 참던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배고픔을 참는게 힘들어져서, 이제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잦은 다이어트를 줄곧 반복하고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는 시기에 좀 뺐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찌기를 반복하는 식이다.
'어라~! 이거 뭔가 잘 못 되고 있는거 같은데?'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나온 것에 대한 복기와 성찰이 필요하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넘어진데서 또 넘어지므로. 지나온 시간동안 내 몸에 내가 한 짓들을 생각해보았다. 딱 떠오르는 것이 '몸을 이해하지 못한 다이어트' '각종 카더라 다이어트'들이었다. 스무살 이후 해온 반복된 다이어트들이 스쳐지나갔다. 배고프고, 기운없고, 짜증나고, 음식을 갈망하며, 폭식을 했다가 다 토해버리고, 이번이 정말 마지막 다이어트라면서 이를 악물고 식욕을 참고 내 몸을 혹사했다.
'왜 여전히 체중계의 숫자에 그토록 집착하는거야?'
나 자신에게 정말 진지하게 물었다. 건강을 위해서? 거짓말!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잖아. 물론 거울 속 내 모습이 아름답게 비춰지면 기분이 좋고, 자기 만족감이 커진다. 하지만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근사하길 원하는 마음이 더 크지 않을까. 문제에 직면하기로 했다. 난 아픈 노인으로 살고 싶지도, 아픈 채로 죽고 싶지 않다. 운이 없어 생기는 병이야 어찌할 수 없겠지만 내가 병을 자초하지는 말아야 한다.
1일1식을 하면 당연히 살이 빠진다.그런데 문제는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식욕조절을 하기 너무 힘들어져 무작정 굶는 방식의 1일1식은 한달 이상 지속하기 힘들다. 그렇게 해서 체중을 줄여봤자 에너지는 딸리고, 몹시 짜증이 나며, 밤마다 배고픔에 고통스럽다. 그러다 입이터져 폭식을 하고는 한심한 인간이라 자책하며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우울해진다. 너무도 당연하게 한끼를 더 먹어도 체중은 원래대로 바로 돌아 올게 뻔하다. 몸도 망치고 정신도 망치는 이런 무모한 다이어트는 어느 나이대나 위험하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호르몸의 변화를 급격하게 겪는 40대엔 더 치명적이다.
다이어트의 본질은 건강한 삶이다.
체중감량은 따라오는 결과 중 하나다. 이걸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그 시작은 근본적인 생활 습관 및 식생활의 탈바꿈을 해야 하는 거였다. 일시적 체중 감량이 아닌 지속가능한 식이조절로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해선 정말 큰 결심이 필요했다.지속 가능하게 건강하게 1일1식을 하려면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했고, 사실 답을 찾고도 그 결심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몇가지 아니 수많은 음식들과 눈물 겨운 이별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