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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Feb 26. 2024

자퇴생 S.K.Y 가다!

[자퇴생 혼공르포르타주 14화]

딸이 중3이었던 가을, 조카가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 가족은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에 신났고, 결혼식을 마치고 방탈출 카페에 가서 호기롭게 최고난이도를 선택했다가 방탈출에 실패했다. 그러고도 바로 집으로 오기 아쉬워 딸이 가보고 싶어하던 '샤대'를 가보았다. 주말이라 비교적 한산했지만 우리처럼 서울대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대 정문 앞 인증 사진이 일종의 '행운의 부적'이 되주길 바라며 딸아이의 사진을 몇장 남겼다. 흐린 날이라 사진이 우중충하게 나와서 부적으로 쓰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그래도 딸에게는 서울대 방문이 의미있어 보였다. 하도 넓디 넓어서 걸어서는 둘러보기도 힘든 서울대 캠퍼스를 보고와서는 대학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릴 수 있어서 좋아했다.



1년 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자신이 가장 가고 싶은 대학인 K대학을 방문했다. 고려대 아닌 'KAIST'를. 언젠가부터 딸과 우리 가족은 딸의 적성을 이공계라고 자연스럽게 정하게 되었다. 가장 흥미있고 잘하는 과목도 과학이며 그 중에 물리가 어렵긴하지만 흥미있고, 생명과학은 외울게 많지만 이해가 잘되어 저절로 외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물리과 생명과학과 관련된 과학분야라고 폭넓게 진로를 정해 놓은 상태다. 그리고 이공계의 상징인 카이스트를 가기위해 매일 애쓰는 중이다.


카이스트를 방문했을 때는 주말이기도 하고 유명오리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로 연못 주변은 북적였다. 넓은 평지에 자리잡은 세련되고 단정한 학교 건물들에 딸아이는 캠퍼스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신이 그곳 학생인양 설레여했다. 서울대를 방문했을때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선명하게 공부를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전 서울 갈일이 생겨 갔다가 이번에는 아빠의 모교인 Y대 연세대를 방문했다. 명문대라는 타이틀과 함께 연세대의 오래된 건축물들은 이미 유명하고 여러 매체를 통해 사진으로는 많이 봐온 터였다. 그래서 처음 가본 야외 공연장과 정문에서 쭉 뻗어진 통행로와 오래된 본관 건물은 익숙하고 익숙했다.


우리는 연대 캠퍼스를 거닐며 '건물이 예쁘긴 하네~' '봄이 되면 더 예쁘고, 저기서는 술을 마시기 좋겠네~' 라며 저녁에 무얼 먹을까를 의논했다. 딸은 생각보다 학교가 크지 않지만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건물이 꽤나 인상깊었나보다. 그리고 벗꽃이 피면 더 아름답다는 아빠의 말에 딸은 그래도 연대 학생이 되어 오기보단 다시 캔버스를 방문해서 벗꽃 피는 풍경 속을 거닐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SKY 입성은 대입 성공의 상징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판도가 좀 달라져서 대한민국 모든 의대 다음이 서울대가 되어 피라미드 구조가 바뀌었다. 감히 0.1%의대는 꿈꾸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내 아이가 SKY 정도는 가기를 꿈꾼다. 왜? 그래야 이 땅에서 '사람대접'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아마 부모들의 현실경험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뇌과학에 관심을 두던 딸 아이도 요즘 의대증원 2000명 얘기에 의대를 가서 정신의학을 공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의대병'이 딸에게도 전염됬는지 의대를 지원을 고려하고 있는 듯 하다. 성적이 나온다면 가고 싶다고 말하길래 단호하게 말해두었다.


"의대? 흠...네가 일단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다 치자. 하지만 어떤 직종이 얼마큼 유망하고 돈을 많이 버는가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어. 네가 하는 일은 너의 정체성과 삶을 만들어. 그러니 생각보다 '일'은 단순히 돈버는 일 그 이상으로 중요해. 물론 돈은 궁핍하지 않을 정도로 벌어야 해. 그건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 몰라. 그러니 네가 진로를 정할 때 딱 2가지를 생각해. 이걸 충분히 고려한 선택이라면 의대든 공대든 어느쪽이든 너의 선택을 존중해.


첫째,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할 수 있을만큼 그 공부와 일이 너에게 재미나 의미를 주는가. 

둘째, 네가 할 수 있는 일인가. "


중3가을 서울대 정문앞에서
학벌시대는 끝났다?


A.I 출현은 흡사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8세기 후반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진로 컨설팅을 하거나 동기부여 영상을 만드는 콘테츠에서 유행처럼 하는 말이 '학벌시대는 끝났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정말 대한민국도 그런 시대를 맞이할까? 정말 소망하는 바이지만 저 말을 믿고 성적따윈 내팽개치고, 학벌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에 안심하고 매진해도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멀리 내다보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당장 입시를 치뤄야할 고등학생과 부모들과 향후 10년 안에 입시를 치룰 사람들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듯 하다. 단기적으로 대한민국은 더욱 학벌에 몰두 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학교 공부나 입시는 '지옥'이다. 아이들을 지옥에 몰아놓고 견디라고 말한다. 물론 사람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 하기 싫은 일을 견디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고통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것의 대전제는 어른들이 제시하는 교육의 방향과 방법이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나라는 대전제가 틀렸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원하는 것을 하라고?


이 나라에서 이 말은 '희망고문'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너무도 식상하여 이젠 더 이상 감동도 교훈도 없는 말. 정작 아이들은 믿지 않는 어른들의 흔해 빠진 거짓말 중 하나가 된 느낌이다. 주로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좋은 학벌이 기반이 되어 성취를 이룬 뒤 한 말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그런 발언을 하고 그게 다른 사람들이 귀 기울려 듣는 이유와 그가 이미 성공한 사람인 이유에 학벌이 기반이 되었을 기능성이 높으며, 또 그가 '어느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무엇을 하든 학벌을 갖추면 프리미엄이 붙는다. 하물며 배우나 가수처럼 학벌과 무관한 일을 해도 그렇다. 그러니 다른 영역은 말해 무엇하는가?


(학벌은 기본)하고 싶은 것을 해
(인서울은 당연하고)원하는 것을 해


그래서 이 나라 중고등학생들의 생활은 정말 비정상적이다. 학교보다 학원 다니는 것을 더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이다.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당연히 학원을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만 이렇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믿지 않는다. 이 나라 어른들이 교육부가 학교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게 더 끔찍하다. 이 나라가 학교가 언제는 행복한 꿈동산이었냐마는 30년 전 내가 다니던 학교보다 지금의 학교가 더 지옥이다.


나는 그래서 내 아이든 학생들에게든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지도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를 가능성이 더 많고, 찾았다고 하더라도 요즘 아이들은 대략 뻥튀기 된 자존감으로 눈높이가 높아서 능력이상의 것들을 바라보고, 그것에 도전하는 기특함을 보이더라도 당연히 따라오는 수련과정의 고통을 감내한 끈기가 없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스스로 탐색할 시간을 주지도 않을 뿐 더러, 엉터리같은 입시 공부에 몰빵시키기 위해 달콤한 가스라이팅을 수시로 한터라 자기 객관화가 되어 있지 않고, 친절한 선생에게 전달받은 핵심만 가지고 공부한 터러 공부를 해나갈 기본적인 끈기를 기르지 못한 탓이다.


이래도 아이들에게 학벌이 필요없다고 할텐가? 아이들은 그것말고는 스무살 이후에 자신이 인생을 살아갈 실질적인 무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안다. 엉터리같은 교육과정과 점수를 따려고 젊고 싱싱한 에너지들을 소진해버렸다. 그래서 학벌이라는 갑옷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친절한 사교육선생이라는 줄을 놓으면 쓰러지고 마는 자신들을 스무살 이후엔 학벌이 지탱해줄거라 믿는 것이다.


인재들이 공대가 아닌 의대로 달려간다고 나라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기성세대들은 나라 걱정하여 진로를 정했다는 듯이. 그때도 돈 잘벌고 대우가 좋은 직업이 될 거란 기대로 진로를 정했다. 재수는 기본이고 N수가 되더라도 의대만 가면 '미리 의사'가 된것으로 생각하여 20대를 입시에 몰빵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인 이유, 즉 '의대 광풍'이 부는 이유가 달리 무엇이란 말인가? 머리 좋은 아이들이 의대만 가면 나라가 망한다고 말하는 어른들과 한편으로는 자기 식이 성적이 나온다 치면 은근슬쩍 의대가는 어떻겠냐고 부추기는 어른이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말과 행동의 불일치

대한민국의 망국병은 아이들의 스카이병이나 의대병이 아니라 이 나라 어른들의 '표리부동'함이 아닐런지.....


"아이들은 그저 사람대접을 원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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