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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Oct 13. 2023

10.  김밥의 변신은 무죄!

조선일보 기사 일부

최근 신문에서 " 10점 만점에 10점 한국 김밥에 홀린 미국인들" " 미국에서 품절된 'K-김밥', 이유가 뭐길래?" 이런 제목의 기사들을 본 적이 있어. 여러 신문사에 실렸는데 광고인지는 몰라도 내용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어. 김밥 속에 고기류를 넣을 경우 통관이 까다로운 데다가 미국 시장에서 비건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우엉과 유부를 넣어 김밥을 만들었대. 김밥을 만든 뒤 영하 50도 냉동고에 넣어 급속 냉각을 시켜 전자레인지에 조금만 돌려도 갓 만든 것 같은 식감을 구현했다고 되어 있더라.


그런데 놀라운 건 냉동 김밥을 데워먹는데 저 반응이라는 거야. 자고로 김밥은 따뜻한 밥의 온기가 살짝 남을 때 바로 싸서 먹는 맛이 최고잖아. 그래서 저 업체에서는 최대한 그 맛을 구현하려고 애썼고 그것이 굉장히 성공했다고 하는 거잖아. 냉동된 것을 해동해서 먹는 데 저 반응이면 저들이 찐 김밥 맛을 본다면 기절할라나? 김밥이 일본 음식에 기원을 두고는 있지만 분명 한식으로 완벽히 정착하여 더 다양해지고 한국적인 느낌이 강해진만큼 이것이 일본이 원조라는 식의 말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엄마 어릴적에는 김밥하면 소풍이고, 소풍하면 김밥이었지.  소풍 가기 전날은  마음이 설레서 잠을 잘 못 자기도 했어. 평소에는 과자를 자주 먹지 못했는데 그날은 정말 이것저것 가방이 꽉 차게 과자를 사주었고, 소풍날이 되면 늘 새 옷을 사주셨거든. 사실 소풍날은 새 옷을 입고 가면 몸에 익숙하지 않아 불편했어. 그래도 예쁜 새 옷을 입고 좋아하는 과자와 김밥을 든든히 넣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나는 듯 경쾌하고 즐거웠단다. 그래서 엄마는 소풍날이 생일보다 더 즐거웠어.


엄마 어릴 적에는 소풍 장소에 도착하면 선생님들이 준비한 프로그램들로 하루를 보냈는데, 아이들의 장기자랑과 선생님들이 소풍 장소에 숨겨 놓은 보물찾기 놀이가 가장 기억에 남아. 보물 찾기에 성공을 하면 작은 상품도 주곤 했는데 그 상품보다 선생님들이 숨겨 놓은 장소를 추리하여 찾아내는 것 자체가 정말 두근두근 설레고 재밌었던 것 같아.


초등학교 내내 학교 근처로만 소풍 가다가 초등학교 6학년때는 드디어 졸업여행을 경주로 가게 되었어. 지금은 부모들과 여행 다니는 것이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이 되었지만 엄마 어릴 적에는 부모님들이 먹고사는 일로 바빠서 같이 여행 가는 일이 드물고 엄마 같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야. 그러니 엄마는 초등학교 내내 사는 곳을 벗어나 멀리 가본 기억이 별로 없었어. 그러니 초등학교 때의 수학여행은 더 인상깊게 남았을 법한데.... 이상하게도 저 사진 말고는 특별한 기억이 없네. 불국사 안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본 기억과 숙소의 밥이 진짜 생전 처음 맛보는 똥맛 같았다는 기억뿐. 그 이후 엄마는 경상도 음식은 아주 맛이 없다고 생각했고 중학교때 거제도로 수학여행을 갔을때 확신을 했지. 그리고 그 편견은 한동안 계속 되었단다.


나때는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소풍을 갔었고, 점심 도시락은 언제나 김밥이었어. 김밥은 지금과는 달리 소풍이나 수학여행 갈 때나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어. 외할머니가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준비하고 있으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고 어린 엄마는 그 고소한 냄새에 잠을 깼지. 그러면 부스스한 눈을 비비고 곧장 주방으로 가. 외할머니는 벌써 김밥을 거의 다 쌌고, 도시락에 가지런히 넣으려고 터지지 않도록 조심히 썰고 있었지. 그때 어린 엄마는 할머니 옆에서 마지막 남은 김밥 꼬다리를 주어 먹고는 했지. 너희들이 그때 그 맛을 알까? 엄마는 꼬다리 부분이 재료도 더 풍성해서 김밥에서 제일 맛있거든. 지금이야 김밥을 사계절 어느 때고 먹는 음식이었지만 나 때는 소풍 가는 날만 먹는 상징적인 음식이었다니까~ 누가 김밥을 소풍날만 먹어라 정한 것은 아닌데 그때는 그랬어.  


어릴 적 할머니가 싸준 김밥은 특히 더 고소하고 맛있었는데, 직접 농사지은 할머니의 참기름과 깨소금은 정말 특별했고 그래서 김밥도 덩달아 더 맛있었던 것 같아. 요즘 마트에서 파는 참기름으로는 그런 고소한 맛을 낼 수가 없어. 김밥의 마지막을 채우는 건 참기름이라고 엄마는 생각하거든. 그래서 가끔 옛날의 그 침기름 맛이 그리워 가격대가 높은 참기름을 사본 적이 있는데 그건 좀 낫더라만 향이 진하기는 한데 오래가지 못하고 맛도 깊지가 못했어.


남편표 소고기 김밥


그런 특별한 날만 먹던 음식이 흔하디 흔한 일상의 음식이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김밥천국'이 생기면서야. 굉장히 획기적인 가격인 1000원에 김밥 한 줄을 팔면서 전국적인 체인점이 생겼고, 그 가게를 따라 하는 유사한 가게들이 생겼어. 또한 그 이후 김밥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던 거야. 그러면서 김밥은 바쁜 한국인들이 손쉽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음식으로 바뀌었지.


그리고 이제는 집에서도 종종 해 먹는 집밥의 한 종류로 정착했고. 김밥이 아주 흔한 음식이 되었지만 엄마는 김밥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질리지도 않고 늘 맛있어. 만약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고살아야 한다면 그때 엄마는 김밥을 고를 것 같거든. 필수 영양소도 고루 갖춘 김밥은 속재료를 조금씩 바꾸면 매번 새롭게 먹을 수도 있으니까. 엄마는 개인적으로 기본 재료인 단무지, 햄, 계란, 당근과 시금치를 넣은 김밥을 좋아해. 우엉이나 맛살이나 어묵을 넣기도 하지만 굳이 김밥의 절대적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아. 그러니 김밥은 밥을 잘 지어 참기름과 깨소금과 소금 간을 적절히 하는 게 재료보다도 사실 더 중요해. 그러니 밥 간을 잘해서 간단히 기본 재료로 싸는 김밥이 개인적인 엄마 취향에는 가장 맛있더라고.


너희들도 알다시피 아빠는 김밥을 정말 맛있게 싸잖아. 엄마는 파는 김밥들보다도 아빠가 싼 김밥이 더 맛있더라. 비결은 아빠도 굉장히 좋아하는 음식인 데다 김밥의 간을 정말 잘 맞춰서 인 것 같아. 한 번은 아빠가 소고기 김밥을 쌌는데 말했듯이 기본 김밥을 좋아하는 엄마는 별 기대없이 하나를 입에 넣었어. 근데~너무 맛있는 거야.  '이건 팔아도 되는 맛이야!'라고 말했더니 아빠는 괜히 겸손한 척 '배가 고팠나보네' 하더라. 그게 바로 위에 있는 저 사진의 김밥인데 엄마는 그때 그 맛과 기분을 기억하고 싶어서 찍어둔 거란다. 김밥에 밥이 상당량 들어가서 많이 먹을 수는 없지만 먹을 수만 있다면 매 끼니마다 먹어도 질릴 것 같지 않더라고. 참~ 인상 깊은 김밥이었어!


여하튼 소풍 갈 때나 먹던 특별 음식이었던 김밥이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어 해외에서 잘 팔린다고 하니. 김밥의 변화가 참 재밌지? 이탈리아의 피자나 일본의 스시처럼 우리나라의 김밥도 세계적인 음식이 되어 김밥 천국이 되면 좋겠다. 그런 의미루다가 내일은 아빠한테 김밥을 싸달라하자~ 오이 말고 시금치 넣은 달큼한 김밥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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