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릴 적 10월에는 행사가 유독 많았어. 나 때는 10월 1일 국군의 날도 공휴일이었으니까. 그날을 시작으로 10월 3일 개천절이 이어졌고, 10월 9일도 한글날로 공휴일이니까 그 사이에 가을 소풍이 있었고 가을 운동회도 했어. 어느 해는 음력 추석이 10월 첫 주에 겹치기도 해서 10월은 계절도 너무도 아름다운 데다가 먹거리도 풍성하며 즐거움이 늘 넘치는 그런 계절이었지.
엄마 어릴 적에는 우리들만의 축제가 아니었어. 특히 시골 초등학교에서의 가을 운동회는 여러 마을 사람이 모이는 축제와 같은 날이었는데 요즘처럼 아이들만 하는 체육대회와는 달랐단다. 그래서 엄마는 여전히 가을 운동회를 떠올리면 설레고 기분이 좋아져. 어쩌다 근처 초등학교 운동회 모습을 볼 때면 아이들 함성소리와 응원소리에 가슴이 같이 두근두근해.
마을 축제와 같은 운동회여서 우리는 굉장히 많은 공연들을 준비했어. 꼭두각시춤과 부채춤과 소고춤, 곤봉과 훌라후프 공연 그리고 마스게임과 단체 율동까지. 각 학년에 맞게 운동경기와 공연들을 나누어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그 준비 기간이 대략 한 달이 넘었던 것 같아. 아마 여름방학이 끝난 8월 말부터 운동회가 열리는 10월 초까지 운동회 준비공연을 위한 연습을 틈틈 하고, 운동 종목들을 연습했던 기억이 나.
선생님들과 우리는 아직 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는 마른 운동장에 모여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도록 동작들을 맞춰보곤 했어. 물론 그때는 숨이 턱까지 차고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친구들과 그늘에 쉬면서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신 후에는 그 힘든 몸과 마음이 말끔히 회복되는 느낌이었어. 그때는 어렸고 힘이 넘쳐흘렀으니까. 그렇게 어린 우리들은 진짜 열심히 운동회 준비와 연습을 했어. 진짜 억지로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던 같아. 힘들다고 투덜대는 없었고 그 모든 과정들이 즐거웠고 신났어.
만국기
드디어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 날 우리는 체육복과 청군 혹은 백군 띠를 머리에 두르고 학교에 왔지. 곧 많은 사람들로 채워질 잘 정돈된 운동장은 흰색 가루로 트랙들을 만들어 놓았고 하늘에는 만국기가 주렁주렁 달렸어. 교문 밖에는 먹을거리와 간단한 장난감을 파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가을 운동회는 더욱 마을 축제 같은 느낌이었지.
운동장에서는 선생님들께서 커다란 천막들을 펼치고 그 아래 커다란 탁자에는 상품들을 진열해 놓으셨어. 그리고 청군 백군이라고 적힌 점수 판이 놓였지. 선생님들이 분주히 운동회 준비를 하시는 중에 응원을 준비했지. 손수 만든 응원도구를 가져다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응원가와 율동들을 맞추어 보았어. 운동회가 열리기 전에 엄마는 친구들과 틈틈이 모여서 응원도구들을 직접 다 만들었거든. 피켓이나 응원수술 그리고 응원가를 정하고 그것에 맞는 율동을 직접 짜기도 했어. 그리고 그걸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하교 후 연습을 했지. 그리고 당일 날에는 누가 서로의 응원이 더 크고 멋진가를 겨루기도 했지. 응원상을 별도로 주었던 기억나. 그러니 혹시 운동경기에서는 지더라도 응원은 끝까지 목이 터져라 했던 것 같아.
운동회 준비를 위한 세팅이 되었을 때쯤 되면 학교는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까지 참석해 학교를 가득 채워. 우리는 더욱더 그 무엇이든 잘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긴장을 하게 되지. 부모님들은 학교 곳곳에 적당한 곳에 일단 돗자리를 펴고 잔뜩 싸 온 점심 도시락이 든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우리들의 경기와 공연들을 구경했어. 어떤 경기들이 있었더라? 오재미를 만들어 커다란 박을 터뜨리는 것으로 운동회 시작을 알리는 경기를 했던 같아. 청군 백군으로 나뉜 아이들은 각자의 커다란 박을 모래나 곡식을 넣어 만든 야구공만 한 주머니를 던져 박을 터뜨렸어. 빨리 박을 터뜨리는 팀이 이기는 경기인데 그 박을 터뜨리면 그 안에서 기다란 현수막 같은 것이 흘러내리고 가을을 찬양하고 운동회의 즐거운 시작을 알리는 글귀들이 적혀있었어.
그 뒤로 단체 경기들이 이어졌고, 그중에는 학부모도 참여하는 경기들이 있어서 더욱 재밌었지. 나 때는 어른들이 친근한 존재가 아니었어. 어렵거나 무서운 존재였지. 그런데 그날의 어른들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 정말 맘껏 웃고 응원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굉장히 친근한 사람들이 되더라고. 아마 어른들도 힘든 삶의 무게나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잠시 내려놓고, 그날만은 자녀들을 핑계 삼아 자신들의 유년으로 잠시 돌아가 동심을 풀어놓은 게 아닌가 싶어. 그래서 엄마는 그때 어른들의 표정이 정말 인상 깊었던 것 같아.
운동회 경기 중에 가장 중요한 경기는 단체 줄다리기와 남녀 계주 달리기지. 정말 신기한 건 단체 줄다리기 할 때 느꼈던 팽팽한 줄의 긴장감과 꺼칠하고 두꺼운 줄을 손이 까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은 채 힘껏 움켜잡았던 손의 힘은 정말 생생해. 그리고 팽팽하기만 하던 줄은 커다란 총소리가 나자마자 크게 출렁이더니 아주 서서히 어느 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신기하게도 그 줄에서는 이기고 싶은 모두의 간절함과 놓고 싶은 마음이어도 옆 친구의 힘찬 기압소리와 숨소리를 듣고는 같이 힘을 냈던 함께 한 마음이 모두 느껴진다는 거야. 그 투박하고 거칠기만 한 줄이 그 순간 마법같이 모두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더라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말이야. 그러면 진짜 모두의 힘이 하나로 모아져 합이 잘 맞아지고 그럴수록 팽팽했던 줄의 균형은 엄마 팀 쪽으로 기울어졌어.
그리고 운동회의 피날레인 계주! 달리기를 못하는 엄마는 당연히 계주 선수로는 뛰지 못했지만 정말 열렬히 응원을 했어. 예전 너희가 어릴 때 살던 아파트는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는 가을 운동회의 계주를 보게 되었어. 그냥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가고 눈과 귀가 저절로 보게 되더라고. 그렇게 낯 모르는 아이들의 계주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엄마는 어느새 뒤처진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더라고. 달려. 달리라고!! 포기하지 마!! 이러면서. 그리고 뒤처진 아이 팀 중에 특출한 달리기 선수가 등장하자 그 아이가 말도 안 되는 거리차를 좁히는 장면을 볼 때면 정말 이유는 모르겠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나도록 뭉클해지네? 그래 그거지!! 이러면서.
지금은 운동회 자체를 하지 않는 학교도 많아졌고, 하더라도 봄 체육대회를 학년별로 가볍게 열거나 크게 할 경우에는 위탁업체에 맡겨 행사를 진행하도록 한다고 하더구나. 우리는 언제부턴가 편리함을 얻고, 점점 진정한 배움과 삶의 추억들을 없애가는 선택하는 것 같아. 삶에 대해 배움에 대해 우리 한번 진지하게 성찰해 보고 변화해야 할 기로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마뿐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우리는 대체 무엇에 정신이 팔려 중요한 논의들을 자꾸 미루며 살고 있는 것일까?
엄마가 30년이 지난 그날의 운동회를 떠올리면 여전히 뭉클한 것은 승패를 떠나 그 과정을 정말 치열하게 즐겁게 몸으로 준비했기 때문인 것 같아. 대충 연습했더라면 무더위에 얼굴이 익도록 반복 반복 연습을 하지 않았더라면 매일 마시던 물이 유독 달고 시원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을 테지. 돈으로 응원도구들을 사고, 우리가 하나하나 응원가와 율동을 짜고 목 터져라 외치지 않았더라면 친구와의 협동이 뭔지 멋진 경쟁이 뭔지 몰랐을 것 같아.
그렇게 우리가 몸으로 부딪혀 겪어내며 준비했던 덕분에 운동회가 끝나고 승패가 결정돼도 어느 쪽이든 배움이 있었어. 이기면 승리의 달콤함을 한껏 즐겼고, 지더라도 우리는 패배를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씁쓸함을 금방 털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 가슴이 가득 무언가 차오르기를 반복하고 끝내는 가득 채워져 넘쳐흘렀던 어린 시절의 운동회. 하나하나 그렇게 쌓인 기억으로 다른 일들도 그만큼 열심히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그립다. 그런 설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