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릴 적에 먹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고, 지금도 먹고 싶은 음식이 뭔 줄 아니? 바로 김치야. 지금도 11월이면 김장철이라고 하여 집집마다 김장을 많이들 하지. 너희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외할머니 주도하에 이모들과 외삼촌네 식구까지 모두 모여서 150-200 포기 정도의 김장을 했었잖아. '고무 대야'라고 부르는 엄청나게 큰 그릇에 여러 재료들을 한데 모아 섞는데 양이 너무도 많아서 이모부들이 깨끗한 삽으로 양념을 섞어야 했어. 그때 엄마는 큰 이모랑 할머니가 절여놓은 배추들을 끝도 없이 물로 헹구는 작업을 맡았지. 그 모든 작업들 중 쉬운 건 하나 없었어. 그나마 외할머니가 모든 김장 재료들을 씻고 다듬고 손질해 놓을 걸 양념으로 만들고 버무리는 작업이었는데도 그렇게 힘이 들었지. 하~ 이 나라의 옛날 여자들이 진짜 존경스럽다.
10년 사이 예전만큼 김장을 하는 집들도 줄고, 형제들이 다 모여 한꺼번에 하는 김장들은 많이 사라졌지. 앞으로는 점점 할머니 세대들이 나이를 먹고 그 아래 세대인 엄마 세대가 할머니가 될 때쯤은 아마 이런 김장 문화는 그저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 같다. 한국 사람이 김치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그 과정들이 너무 어려워 그냥 입맛에 맞는 믿을 수 있는 가게나 업체를 찾아 사계절 조금씩 사 먹는 걸 선택할 것 같아. 그러면서 그러겠지만 말이야. 아~ 이 맛이 아닌데... 딱 입맛에 맞는 김치를 찾을 때까지 김치 유목민이 될지도 몰라.
얘들아~ 엄마 어릴 적에 먹었던 김치는 정말 특별했단다. 김치에 넣는 재료야 지금이랑 같아. 하지만 그때는 김치 냉장고가 없었으니 김치 독을 겨우내 땅에 묻어 두었어. 외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배추김치와 총각김치와 동치미 이렇게 3개의 큰 항아리를 묻었지. 그리고 김치 독 위에 집을 지어서 눈비를 막아주었어.
그렇게 힘들게 땅을 파고 집까지 지어 둔 김장독에 넣은 김치에서는 정말 신기한 맛이 났어. 그 김치에서는 정말 건강한 사이다 맛이 났단다. 달큼하고 시원할 뿐 아니라, 자연의 발효 솜씨로 탄산의 맛이 김치에서 났다니까! 먹어 본 적이 없는 너희들은 엄마의 기억이 왜곡되었거나 과장하는 거라 생각하겠지만 절대 아니야! 엄마가 그 김치를 아기 때부터 몇 년을 먹었는데 그걸 왜곡하고 과장하겠어.
출처: 고창 농원
외할머니가 식사 때마다 한 포기씩 꺼내와 배추 꼬다리 부분만 제거하고는 커다란 접시에 통으로 김치를 내고, 그 사이다 맛이 나는 김치랑 밥만 먹어도 그렇게 꿀맛 같을 수가 없었어. 고기를 곁들여 같이 먹을 때는 그때 그곳이 천국이 아닐까 싶다니까. 그리고 겨울철 간식인 고구마에 배추김치 역시 찰떡궁합이었지. 게다가 목이 멜 때는 탄산의 맛이 더 강한 동치미까지 들이키면 끝.
그러다 세상이 바뀌었어. 엄마가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할머니가 좀 편하게 김장을 하도록 이모들이 김치 냉장고를 떡하니 사다 놓은 뒤로부터 더 이상 저 김치 맛은 맛볼 수 없었지. 여러 김치 냉장고 회사들이 땅에 묻은 김장독 발효의 비밀을 풀어 비싸고 좋은 김치 냉장고들을 만들었다고 선전하더라만, 자연이 숙성시킨 그 김치의 맛은 지금도 절대 절대 따라오지 못하더라. 절대로!
그래서 엄마는 너희들이 아주 어렸을 때 아파트 1층에 아주 작은 정원이 제공되었던 곳에 살았을 적에 땅을 파고 혼자 독을 묻어볼까 잠깐 고민해 본 적도 있어. 물론 상상에 그쳤지. 엄마 기억 속에 있는 그 김치의 맛을 너희들이 맛보아야 하는데 말이야. 그러면 다른 김치를 맛없어서 못 먹겠다고 하는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엄마는 진짜 어릴 때 먹던 그 김치가 기준이 되어버려서 김치에 대한 입맛이 굉장히 까다로워졌거든. 너희들은 눈치 못 챘겠지만 엄마는 배추김치 같은 경우는 반찬으로는 잘 먹지 않고 주로 찌개나 볶음으로 했을 때나 먹는단다.
언젠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너희와 재료준비부터 시작해 땅에 김칫독을 묻고 발효시켜 먹는 그 경험을 해보고 싶은데 그건 엄마 욕심일까? 엄마가 머리로 계획하고 입으로 지시 감독하는 건 아주 잘하는 사람이니까. 어리고 생생한 너희들이 몸으로 좀 부지런히 움직이면 가능할 듯도 한데...... 어? 싫다고! 그냥 김치 안 먹겠다고? 어허 얘들아~ 뭐든 귀하고 좋은 건 얻기 힘든 거야. 하나하나 몸으로 겪어내야 얻어지기 때문이란 걸 알 때도 되었지 않았나? 얘들이 진짜 안 되겠네. 라떼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