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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Oct 19. 2023

13. 그 많던 '미친개'들은 어디로 갔을까?

초등학교 5학년때의 일이었을 거야. 화가 잔뜩 난 담임 선생님은 채점한 수학 시험지를 거칠게 잡아 쥐고는 교실문을 벌컥 열어젖혔어. 그때부터 아이들은 어리둥절하고 교실의 온도는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했지. 무슨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았고 아이들은 모두 긴장하여 숨죽이고 목젖으로 간신히 침을 꼴깍 삼키고만 있었어. 나 때는 '궤도'라고 불리던 벽에 거는 커다란 달력보다도 더 큰 시각화한 학습 자료가 거치대에 걸려 있었어. 컴퓨터가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사회나 과학처럼 시각 자료가 필요한 과목들은 궤도를 이용했지. 여하튼 성난 코뿔소 같은 모습을 한 선생님은 빠르게 교실을 둘러보더니 그 궤도 거치대의 아래를 지탱하던 가로목을 잡아 뽑는 거야. 허걱! 엄마는 소위 요즘 말로 뇌정지가 오더라고.


"80점 밑으로 다 나와!"


선생님은 2명을 제외하고 모두 앞으로 나오라고 했어. 그리고는 그 가로목을 잔뜩 움켜잡은 손으로 풀 스윙을 하면서 엎드린 아이들의 엉덩이와 허벅지 그 중간 어디쯤을 열대씩 내리치기 시작하는 거야. 엄마는 아직 맞지도 않았는데도 보는 것만 해도 너무 공포스러웠어. 드디어 엄마 차례가 되었고. 그 맞는 순간은 어땠는지 삭제되어 기억에 없어. 그리고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어.


너무 아프고 무서워 훌쩍이는 아이들에게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라는 거야. 그리고는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두 바퀴를 돌라는 거야. 열두 살의 엄마 눈에는 운동장이 정말 너무도 넓었는데 트랙을 따라 오리걸음을 하면서 눈물이 마구 떨어졌어. 그때는 선생님을 원망조차 하지 못했어. 당연히 맞는 우리가 잘못했다고만 생각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수학 시험 따위가 뭐라고~


그리고 어기적 거리며 집으로 돌아왔고 저녁이 되자 잘 걷지도 못하고 방을 기어 다녔어. 그런 엄마를 보고 외할머니는 바지를 내려보더니 깜짝 놀라더라. 늦은 밤이 되었을 때는 맞은 곳이 시퍼렇다 못해 거의 까맣게 피멍이 들어 있었어. 거기다 오리걸음까지 했으니 아예 걷지를 못했어. 그런데 아직도 선명한 외할머니의 말 한마디.


"그러게 시험을 좀 잘 보지 그랬어"


김홍도- 서당


그래 그때는 그랬어.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말이 사회적으로 공감을 사던 시대였어. 그런데 엄마의 경험은 그 스승들의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야. 나 때는 부모들이 학교 선생님들에게 자기 자식을 때려서라도 잘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던 시절이었고, 물론 집에서도 자식이 무언가를 잘못하면 매를 드는 것이 아주 당연시했던 시절이지. 아마도 부모님들은 김홍도의 '서당'에서처럼 아이를 때리고 마음 아파하는 훈장님의 모습을 생각했던 거겠지.


실제로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기도 하지. 일방적으로 다른 아이를 때리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상습적인 지각을 하고 과제를 해오지 않거나. 학교에서 소지하지 말라는 물건들을 가져오거나 위험한 행동들을 부추기거나.... 정말 다양한 아이들 속에서 학교는 언제든 사고가 나도 이상할 게 없는 공간이지. 그런 공간에서 교사는 엄격함을 유지하고 질서 유지를 위한 통제를 기본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엄마 어릴 적 그때의 그 체벌에는 그 어떤 교훈도 없었어. 아이들은 일시적으로 수학 시간에 열심히 듣고 공부하는 것처럼 보였지. 그리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리고 성적도 일시적으로는 올랐어. 다시는 그런 끔찍한 공포를 맛보고 싶지 않았거든. 그렇다고 엄마가 그 이후로 계속 수학을 더 좋아하고 잘하고 더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어. 결과적으로 아무런 교육적 효과가 없었다는 거야. 그저 일시적으로 선생님이 원하는 모습을 자신 앞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 밖에는. 그리고 선생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엄마는 그때의 그 체벌을 가장 끔찍한 학창 시절 기억으로 잊지 않고 있으니 말이야.


그 이후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면서 엄마는 5학년 담임보다도 더 한 '미친개'들을 만났어. 그저 매일 미친개들에게 맞는 아이들을 목격했어. 엄마는 그 사건 이후로 절대 '맞을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아무도 내편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 괜한 짓을 해서 맞으면 나만 손해였어. 그러니 최대한 눈밖에 나지 않는 행동을 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의 몽둥이에 굴복해 아부하거나 아양을 떠는 것은 굉장히 치욕스럽다고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경멸했지. 그냥 엄마의 목적은 '맞을 짓'만 안 하면 되는 거였지. 존경할 수 없는 어른들에게 칭찬이나 인정 따위를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지. 그렇게 엄마는 학창 시절 내내 적당히 '삐딱한 아이'였어.


그러다 그 삐딱함을 숨기지 못하고 고등학교 때 사건이 하나 터지는데,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문학 수업을 하필이면 무능력한 교사가 담당하는 거야. 그 교사는 나이도 많고 겉보기에는 점잖아 보였지만, 뻔뻔하게 자습서를 교과서 옆에 펼쳐놓고 읽듯이 수업을 하는 거야. 자기 해석을 가르치지 못할 바에는 적어도 적어도 수업 전에 자습서를 참고하고 보고 들어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 그래서 엄마는 손을 번쩍 들고 이렇게 말했지.


"선생님은 왜 자습서를 그대로 읽으시나요?"


그 뒤에 엄마는 교무실로 불려 갔고, 건방지다는 말과 함께 '귀싸대기'를 맞았어. 눈물이 핑 돌았지만 그 자리에서 울지는 않았어. 오기가 아니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울음이 안 나왔지. 그리고 그 교사는 자신을 모욕했다면서 엄마를 몰아붙였어. 교사는 그 어떤 행동을 해도 그림자도 밟히면 안 되고, 학생은 정당한 의구심도 교사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지루하고 쓸모없는 수업을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야 한다고? 교사의 저런 행동에도 학생은 일방적으로 절대적으로 교사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교사가 지켜야 할 수업에 대한 예의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면서!




엄마 어릴 적 거의 모든 교사들 손에는 열거하기도 힘든 다양한 종류의 '사랑의 매'가 들려져 있었지. 그저 평범하게 생긴 막대기부터, 원래 목적에서 창의적으로 변신한 다양한 길이의 당구채, 30-50센티미터 자와 나무 주걱, 드럼스틱과 장구채, 구둣주걱, 야구 방망이도 모자라 목공소에서 아예 매를 재단해 오는 정신 나간 교사까지. 우리는 교사들의 당구공이 되었다가 야구공이 되었다가 어쩔 땐 악기가 되곤 했지. 그래도 그건 어쩌면 잘 때리려는 성의가 있었는지 몰라.


매를 마련하는 수고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손이 그리고 그들의 발이 '사랑의 매'로 둔갑하여 우리를 향해 날아왔어. 귀싸대기는 기본이고, 아이들을 발로 밟는 정신 나간 교사들까지.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너무도 유연한 몸을 가졌던 체육교사 한 명은 공을 깔고 앉았다는 이유로 태권도 발차기 하듯 자신의 발로 아이 얼굴을 때리는 '발싸대기'를 올리는 진기명기를 선보이기도 했어.


물론 모두가 다 그런 식으로 때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어이없는 폭력장면을 보고도 말리는 교사들도 없었다는 거야. 그들에게 스승이나 선생님이란 호칭은 너무도 큰 사치이며, 교사라는 호칭도 아깝지. 그들은 합리적인 설명 대신에 교탁을 내리치는 것으로 대신했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애정이 담긴 설득 대신에 모진 매질을 해댔어. 엄마 어릴 적 교사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절대신'이었지.



그 시대에 학교를 다녔던 엄마 세대 중에는 아직도 요즘 아이들이 버릇이 없는 건 때리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무지한 사람들이 있더라. 한수 더 떠서 자신은 부모나 선생님이 많이 때려줘서 정신을 차렸고 잘 큰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어. 화가 난 엄마는 이렇게 비꼬아 줬어. 그럼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많이 많이 실컷 때려주라고. 심시세끼 따뜻한 밥대신 매를 들면 그럼 당신보다 더 훌륭하게 자랄 거 아니겠냐고.


그 시대를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교도 가정도 어린 우리에게 신체적, 정서적 폭력을 일상으로 저지르던 시절이었지. 그게 '가르침'이라는 선의로 포장되고, '사랑'이라고 가스라이팅하면서. 시대마다 문화나 가치관은 다를 수 있어.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분명 잘못된 교육방식이었어. 그건 '학대'가 분명했으니까.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관용과 사랑이지, 힘과 폭력이 아니야. 그리고 학교는, 교사는 부모와 함께 아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하지.


그나저나 그 많던 '미친개'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너희들은 그런 미친개를 만나지 않는 학교를 다니는 시절이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요즘은 거꾸로 교사들이 '미친개' 학부모들로 인해 곤욕을 치르나보더구나. 그 시절 그들은 스승도 선생님도 아니었고 교사도 아니었어. 그런 걸 보면 그 시절 '미친개'들이 한 역할 하나는 확실한 듯 보여.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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