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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Oct 22. 2023

14. 잘 놀다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

나 때는 말이야. 가지고 놀 장난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모든 아이들이 학원을 당연하게 다니지도 않아 시간이 아주 많았어. 매일매일을 아이들끼리 모여 놀 궁리를 하는 게 일상이었지.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 틈틈이 공기놀이나 딱지치기를 하고, 어떤 아이들은 교실 한 구석에서 말뚝박기 놀이를 하고, 너희들도 아는 술래잡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했어. 10분의 쉬는 시간은 그냥 앉아서 쉬는 게 아니라 놀거리를 찾아서 실컷 노는 시간이었지.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수업시간 사이사이 그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놀이 시간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아.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부'는 어른들의 관심 사지, 솔직하게 아이들의 관심사는 아닌 것 같구나.


엄마와 친구들은 학교 끝난 후에도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운동장에 남아서 땅과 돌멩이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다양한 버전의 놀이를 했지. 주로 땅에 선을 그어놓고 노는 놀이들이었는데, 그 유명한 오징어 삽 치기부터 삼팔선과 뼈다귀 그리고 땅따먹기라는 놀이도 있었어. 오로지 같이 편을 나눌 아이들만 있으면 가능한 놀이였어. 하교 후 운동장에 어둠이 깔리기 전까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놀다가 우리는 더 이상 사물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놀았어.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으니까. 


그렇게 놀다가도 그때 어른들은 왜 그렇게 많이 놀았냐고 야단치는 사람은 없었어. 온 힘을 다해 놀았으니 집에 가면 저녁밥을 먹자마자 곯아떨어지는 건 당연하고 그래서 숙제를 못해가는 날도 많았어. 엄마는 학교에 일찍 가서 부랴부랴 숙제를 해치우거나 친구의 것을 보고 베끼기도 했어. 적당히 중간중간 틀리게 베끼는 노하우로 베낀 것을 들킨 적은 없어. 뛰는 선생님 위에 나는 뺀질이 학생이 있는 법이니까.


<고무줄놀이> 출처- 충청일보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바로 고무줄놀이야. 검고 긴 고무줄을 같은 편의 두 아이가 양쪽으로 길게 늘여 잡고 서 있으면 반대편의 아이들이 단계마다 정해진 노래를 부르며 그 노래에 맞는 동작으로 줄을 넘는 놀이야. 고무줄놀이의 단계는 신체를 이용하여 점점 높이가 높아졌어. 1단계는 발목, 2단계는 무릎, 3.4단계는 허벅지와 허리 5단계와 6단계는 가슴과 목 그다음 7단계는 정수리 그리고 마지막 8단계는 팔을 쭉 뻗은 상태였던 걸로 기억해. 각 단계마다 정해진 그 노래 한곡이 다 끝날 때까지 곡에 맞춰 동작을 수행하면 통과! 동작을 하다가 틀리거나 고무줄에 걸리면 다른 편에게 차례를 넘겨줘야 했어.


엄마는 특히 마지막 8단계가 가장 짜릿했어. 8단계는 노래와 동작이 없어. 대신 상대편이 팔을 쭉 뻗어 키보다 높아진 줄을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넘어야 하는 거야. 상대의 키가 나보다 크면 굉장히 불리해지지. 내 키보다도 훨씬 높은 줄을 물구나무서기로 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그건 팀 중에 키가 가장 큰 아이들이 나서서 해결했는데 엄마는 나름 키도 크고 몸도 굉장히 유연한 편이라 늘 나서서 했고, 우리 팀을 승리로 이끌었어.


<말뚝 박기> 출처-실버아이뉴스


여자아이들이 가장 많이 했던 놀이가 고무줄놀이였다면 남자아이들은 말뚝박기를 진짜 많이들 하고 놀았던 것 같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댈 곳이 있으면 저걸 하더라고. 말이 되어 엎드린 아이들을 무너뜨리거나 모두 올라 탄 뒤에 맨 앞에 탄 아이와 기둥 역할을 한 아이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승패를 겨루는 놀이였는데 여자 아이들은 잘하지 않았어. 좀 거칠어서 다칠 수도 있는 놀이였고 여자들이 하기에는 점잖아 보이지 않아서인지 몰라. 그래서 여자 아이들은 주로 고무줄과 공기를 많이 했고, 남자아이들은 말뚝박기와 구슬치기와 딱지를 많이 했어. 성별 구분 없이 모든 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엄마 기억에는 남녀에 따라 선호하는 놀이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아.  


고무줄놀이가 여자 아이들에게, 말뚝 박기가 남자아이들의 '최애' 놀이였다면 자치기는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 모두 좋아했던 놀이였던 것 같아. 왜 자치기를 겨울에 주로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겨울에 주로 자치기를 하고 놀았어. 그래서 자치기는 썰매 타기와 함께 겨울에 가장 많이 하는 놀이였어. 역시 두 편으로 나누고 긴 막대기 하나와 손바닥만 한 길이의 막대기 하나면 놀 수 있는 놀이였지. 특별할 것 없는 놀이들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사계절 참 다채로운 놀이들 덕에 좀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심심하지는 않게 보냈던 것 같아. 


<자치기> 출처- 제민일보


엄마 어릴 적과 너희들 어릴 적을 비교해 봤을 때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놀이'인 것 같아. 엄마가 너희들을 키우고 아이들을 오래 가르치면서 알게 된 것은 아이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거였어. 아이란 존재는 눈뜨고 잠들 때까지 심심할 틈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고, 계속 재미를 찾아 호기심을 찾아 어슬렁거리지. 그래도 아무것도 할 게 없으면 할 걸 찾아서라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아이들에게는 상상력과 창의력이란 게 생기더라.


그런 아이들의 본질적인 특성을 지금의 어른인 엄마 세대는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크단다. 물론 너희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은 학원을 돌고 과도한 학습을 한 적은 없어 늘 한가했지만 대신 다른 아이들이 바쁘니 같이 놀 친구들이 부족했었잖아. 나 때는 밖에 나가면 이미 놀고 있는 아이들이 늘 있었고 거기에 '나도!'라고 외치기만 하면 금방 그 놀이에 스며들 수 있는 기회가 너희들에게는 거의 없었으니까. 너희들을 키우면서 그게 가장 안타깝더라. 친구랑 놀려면 학원을 가야 한다는 말이 우스개가 아니라 현실이었니까. 


어른보다도 바쁜 너희 세대 아이들에게는 스마트 폰이 가장 친한 친구처럼 보이더구나. 엄마는 스마트 폰을 '21세기 도깨비방망이'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지. 그래 진짜 스마트 폰은 도깨비방망이 같아. 모든 게 다 가능하니까. 과장이 아니고 정말 모든 게 다 가능해. 그러니 스마트 폰은 너희들의 모든 즐거움과 재미를 빨아들이는 것 같더라. 피곤하고 힘들수록 현실 세계에서 소통할 사람이 없을수록 더 몰두하기도 하고.


부모가 되니 부모 마음을 알 것도 같다만,
부모란 자기의 결핍으로 자식을 키우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전후 세대들은 삼시세끼 굶지 않은 일이 일생의 큰 일이어서 '식사하셨어요?' '밥 먹었니?'가 우리나라 고유 인사말이 되어 외국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잖아. 게다가 '잘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는 옛말도 있단다. 그만큼 먹는 일이 무척이나 중요한 시대였다는 거야. 모두 그 시대의 결핍이 담긴 말들인 것 같아. 


그래서 엄마 세대는 밥을 굶지 않았고, 자기가 학교 공부의 뜻이 있었다면 학교도 갈 만큼은 다 갔지. 하지만 우리는 친구들과의 추억은 많지만 부모와의 추억이 없어. 그래서 엄마 세대는 너희들의 모든 것을 관리 감독하려 드는 '통제'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래서 엄마 생각에 너희 세대의 결핍은 '자유로운 시간 그리고 놀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너희 세대 때 인사말이 이렇게 바뀌는 거지.


have a free day~!


엄마 어릴 적에는 부모와 함께 한 즐거웠던 추억도 없고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한 편은 아니어서, 너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너희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너무 기쁘단다. 엄마는 텅 비었던 마음의 공간들을 너희들 덕에 많이 채웠어. 너희들을 낳지 않았다면 몰랐을 많은 감정과 경험들을 했어.  고백건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너희를 낳고 키운 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 얘들아~ '잘 놀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는 말은 없지만 공부하는 틈틈이 엄마랑 같이도 놀고 따로도 열심히 잘~ 놀자! 


마침 오늘은 일요일. 

have a fre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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